<응답하라 1997>은 1997년을 사는 소녀 시원이와 소년 윤제,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2012년에서 그 시절을 돌아보는 이 드라마는 1997년을 살았던 수많은 시원이와 윤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97>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1997년을 기억하면서 또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그 시절을 향해 자신만의 편지를 쓰는 중이다. 답장을 기대할 수 없는 그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 한장을 골라 여기에 공개한다. <응답하라 1997>의 연출자인 신원호 PD와의 대화도 담았다.
R에게
3년 정도 됐나? 어느 날 새벽에 한통의 문자를 받고는 이제 내 20대가 끝났구나 생각했었어. 너는 그 새벽에 예쁜 딸을 낳았다고 단체문자를 돌렸는데, 그게 하필 나한테도 온 거야. 안부를 묻지 않은 지가 4년이 넘은 때였지만, 막상 문자를 보니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심란했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답장을 보냈었어. “축하해. 산모나 아기나 모두 건강하기를.” 너도 참 너인 게 굳이 답장을 했더구나. “고마워. 너도 좋은 소식 있기를 바라.” 전할 만한 좋은 소식이 없어서 다시 3년이 지났네. 지금도 단체문자를 돌릴 만큼 좋은 소식은 없어. 단지 TV채널을 돌리다가 네 생각이 난 거야. 거리의 화가가 어떤 연인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평범한 장면이었어. 그런데 BGM으로 깔린 음악이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었던 거야. 이승환 3집. 오태석 작사·작곡. <Radio Heaven>과 <내 어머니>의 사이에 담겨 있던 10번 트랙. 그리고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너한테 주었던 노래. 그래, 사실 너한테만 준 건 아니었어. 그때는 너나 나나 19살이었잖아(다만 다른 사람 선물은 크롬 테이프에 녹음했지만, 너에게만은 비싼TDK 공테이프를 사서 선물했다는 건 알아주었으면 해). 어쨌든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응답하라 1997>이란 그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동안 19살이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어. 친구들과 그때에 대해 밤새워 수다를 떨었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야만 이 터지는 기억들이 잠잠해질 것 같아.
사실 이 드라마에 처음부터 공감했던 건 아니었어. 주인공인 시원이는 H.O.T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팬인데, 남자인 내가 그때 H.O.T나 젝스키스를 좋아했을 리 없잖아. 지금 나한테는 가끔 술 먹고 노래방에 가서 미친 척하고 춤추며 부르는 <행복>이나 <캔디>의 원저작자일 뿐이지. 내 기억에는 너도 그들에게 빠져 있지는 않았던 거 같아.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가요는 안듣는다”고 해서 좀 난감했었어. 그럼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으니,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샹송가수 이름을 말하기에 당황했었지. 그나마 내가 알 만한 가수들을 대준 게 스팅과 퍼프대디여서 나도 그 앨범들을 사서 들었던 생각이 나. 그러니 너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그 시절 팬들의 입급증이나 단체복, 토니가 타고 다녔다는 ‘포카리’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크게 반갑지는 않을 거야.
그때 우린 19살이었잖아
하지만 너도 이 드라마가 일부러 클로즈업하지 않고 무던하게 보여주는 소품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거야. 주인공 아이의 가방에서 무심코 나온 ‘NOW3’ 테이프와 하드보드지로 만든 필통, 아이들이 마시는 콤비콜라 같은 것. 그때의 나는 NOW3를 듣지 않았고 콤비콜라보다는 815콜라를 더 많이 마셨지만, 그런 사소한 소품들이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또 다른 것들을 떠올리게 하더라. 소품만이 아니라, <별은 내 가슴에> 같은 드라마나 이민성이 결승골을 넣었던 도쿄대첩 같은 경기들도 내가 그때 겪었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생각나게 했어. 도쿄대첩이 열렸던 1997년 9월의 어느 날, 당시 재수생이었던 나는 그 경기를 정독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봤었어. 수능이 100일도 안 남은 때였는데, 이민성의 결승골로 괜히 내 기분도 들떴던 거야. 친구와는 축구만 보고 다시 공부하자고 했지만, 축구를 보고 나는 네가 일하는 신촌의 카페에 갔었지(카페 이름이 I ♥ message였던가? 지금은 고깃집이 됐더라). 한국팀의 승리 덕분에 너도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에는 무덤덤하던 네가 그날은 과자도 갖다주고, 과일도 썰어다주었어. 드라마 속에서 애들이 영화 <접속>을 보는 장면에서도 네 생각이 나더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피카디리극장 앞 카페 말이야. 그 영화는 9월에 개봉했지만, 우리는 이미 1월에 거기서 만났잖아. 카페 이름이 ‘CCI’였던가? CCI가 뭔가 했더니, Coffee, Cake, Icecream의 준말이어서 어이없다고 웃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우리가 <접속>을 같이 봤던가? 아, 하이텔 영퀴방에서 잠수타고 대화하던 어떤 누나랑 같이 봤었구나.
내가 지금 기억하는 것들이 모두 맞는지는 모르겠어. 확실한 건, 너와 나 사이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건 나뿐일 거라는 거야. 그리고 이 드라마가 사소하게 보여주는 그때의 것들이 나에게도 큰 그림보다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잔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거야. 그런데 온갖 기억들을 끄집어내다보니 궁금해진게 있었어. 나는 왜 <건축학개론>을 볼 때는 이러지 않았을까. 질문을 다시 하자면 왜 나는 <건축학개론>을 볼 때,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두 작품 사이에는 1, 2년가량의 시간차가 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라는 공간적차이가 있지만 되새기는 추억의 정서가 그리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 <응답하라 1997>이 그때의 소품과 음악들을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아. 생각을 거듭하다, 나는 이 차이가 정서의 온도에 있다고 결론내렸어. 영화에서 승민이가 납뜩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어. “나는 서연이만 행복하면 돼.” 영화를 같이 본 지금의 내 여자친구는 그 장면에서 이렇게 탄식했어. “어우, 병신….” 그 말을 들은 나는 나대로 그 당시 승민이처럼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내가 쪽팔렸어. 찌질했던 과거들이 떠올랐고, 너무 부끄러워서 오히려 스스로 기억을 닫으려 했던 것 같아.
사소한 소품들이 그때를 떠올리게 해
<건축학개론>이 그때의 나를 현시점에서 돌아보게 한다면, <응답하라 1997>은 아예 그 시절로 날아가도록 만드는 이야기야. 앞서 이야기했듯이 난 그때의 H.O.T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주인공 아이가 콘서트장 객석에서 혼자 빠져나와 <전사의 후예>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울컥했어. 몸이 으스러지도록 춤을 추면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인 이 아저씨도 그때의 소녀가 돼버린 것 같았어. 정작 나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때 내가 가지고 있었을 뜨거움을 느꼈다고 할까. H.O.T를 좋아하다가 젝스키스로 갈아타버린 탓에 친구와 멀어진 아이의 고백도 뜨겁게 들렸어. “내도 모르게 여섯개의 수정이 내 맘에 들어온 걸 우야겠노.”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대사이지만, 그 아이는 그렇게 진심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릴 적부터 형제처럼 지냈던 이성친구가 어느 날 안경을 벗은 탓에 사랑을 느꼈다는 남자주인공의 감정도 마찬가지겠지.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널 좋아했던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고등학교 동아리 대면식에서 우연히 네가 내 옆에 앉은 게 사실상 이유의 전부야. 대화는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날 이후로 네가 계속 생각났을 뿐이야. 그리고 한동안 그 이미지를 이겨낼 다른 대안이 없었던 거고.
19살이란 그렇게 감정이 몰아치는 나이였던 것 같아. 상대가 연예인이든, 노래든, 책이든, 영화든, 사람이든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만큼 뜨거웠던 때도 많았던 거지. 이렇게 생각하니 좀 슬프다. 이제 더 이상 뜨거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우연히 널 다시 만난다고 해도 설레지 않을 것 같아서. 그나마 지금은 2012년이지만, 다시 15년이 지나서 2027년에 30년 전의 음악을 듣는다면 내가 지금처럼 편지를 쓰고 싶을까? 어쩌면 지금은 너와 내가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몰라. 불과 몇년 뒤면 사람들은 또 다른 시대의 추억들을 끄집어낼 테니까. 물론 그 시절을 아무리 돌이키고 기억을 쏟아낸다고 해도 그 시절은 응답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나는 이렇게 편지를 쓰지만, 역시 너에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거야. 그런데… 그래도 어디선가 듣고는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