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력 수요만 급증한 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극장 관객 수는 8729만명으로, 지난해보다 21% 늘어났다. 2006년 이후 최고치다. 이상기류는 계속되고 있다. 7월 한달 동안 2095만5320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는데, 이는 연중 극장 최대 성수기인 8월의 평균 관객 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상반기 내내 점유율에 있어 엎치락뒤치락 호각세를 보였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는 연말까지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개봉예정작 중 36편의 영화를 추려 소개하면서, 굳이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로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다만 10여개의 키워드 아래 묶인 영화들을 일별하다 보면 달아오른 2012년 극장가의 열풍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본드 커밍순!
<007 스카이폴> 007 Skyfall 감독 샘 멘데스 / 출연 대니얼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나오미 해리스, 레이첼 와이즈 / 개봉 11월1일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출현한 제임스 본드는 여왕과 함께 하늘(sky)에서 떨어졌다(fall). 정말 <007 스카이폴>의 제목을 알리려는 의도였을까? 어쨌든 올해는 <007 살인번호>(Dr. No)가 개봉한 지 50주년을 맞은 해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 중에서도 <007 스카이폴>은 가장 화려한 기념식이다. 감독과 배우, 스탭의 구성만 봐도 그렇다.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의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았고, 주디 덴치와 하비에르 바르뎀 등 오스카가 상찬한 배우들과 두번 이상 오스카 후보에 오른 스텝들이 촬영, 각본,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
<007 스카이폴>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이야기는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의 비밀이 드러나는 한편, MI6이 붕괴 위기에 놓이고 제임스 본드가 이를 해결한다는 정도다. 샘 멘데스의 말에 따르면, <007 스카이폴>은 ‘클래식 본드’를 모토로 삼고 있다. 샘 멘데스는 “더이상 제임스 본드를 현실세계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007 스카이폴>이 <007 골드핑거>와 유사한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제임스 본드에게 온갖 첨단무기를 제공하는 Q가 등장하며, 숀 코너리가 <007 골드핑거>에서 탔던 애스톤 마틴도 등장한다. 톰 포드가 제작한 본드의 슈트마저 1960년대 라인의 매력을 뿜을 예정이다.
속편
복수의 양면성
<테이큰2> Taken2 감독 올리비에 메가턴 / 출연 리암 니슨, 팜케 얀센, 매기 그레이스 / 개봉 9월27일 <테이큰2>를 만들겠다는 제작자 뤽 베송의 말에 리암 니슨은 웃었다. “또 딸이 납치당하게 하려고? 미친 거 아냐?” 하지만 뤽 베송의 해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납치당하면 되지.” <테이큰2>에서 브라이언은 가족과 함께 이스탄불에서 휴가를 즐기던 도중 아내와 함께 납치된다. 극적으로 탈출한 브라이언은 또다시 복수를 다짐한다. <테이큰2> 또한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사투를 그린다. 다만 복수의 성격이 다르다. <테이큰>의 악당은 애지중지하는 딸을 성 노리개로 팔아버리려는 놈들이었다. 브라이언의 과격한 복수심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테이큰2>에서 브라이언과 그의 가족을 납치한 자는 알바니아의 갱스터다. 그는 요원 시절의 브라이언에게 부하와 아들을 잃었고,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암 니슨은 <테이큰2>가 “복수와 복수의 대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복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다. 외롭게 놓인 무덤과 가난한 농부들의 표정에서 복수로 인한 슬픔과 상처를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이큰>이 선사했던 액션의 쾌감을 저버릴 뤽 베송이 아니다. 첫 액션 신의 끝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추격전이 이어질 것이고, 브라이언은 전편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능력까지 드러낼 예정이다. 제작진은 리암 니슨의 남성적인 매력을 위해 검은 가죽 재킷을 입히기도 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액션 신은 대부분 이스탄불에 있는 전통 한증막에서 촬영됐다고. 리암 니슨은 “너무나 열정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뱀파이어 전쟁의 승자는?
<브레이킹 던 Part2> The Twilight Saga: Breaking Dawn - Part2 감독 빌 콘돈 /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테일러 로트너, 애슐리 그린 / 개봉 11월 영화 같은 현실은 없었다. <브레이킹 던 Part2>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신화를 마무리하려는 즈음, 주연배우인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 시리즈에 열광했던 팬들도 지금쯤은 두 남녀가 시사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배우들이 이별하건 말건, <브레이킹 던 Part2>는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친 시련을 맞은 사랑을 그릴 예정이다. 전편에서 에드워드와 결혼한 벨라는 딸 르네즈미를 낳았고, 제이콥은 아직 신생아인 르네즈미를 보자마자 그녀를 각인했다. 출산과정에서 죽음에 이른 벨라는 이제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제이콥이 르네즈미를 각인한 사실은 벨라를 충격에 빠뜨린다. 한편, 르네즈미를 위험한 ‘불멸의 아이’라고 판단한 볼투리가는 그녀를 빼앗기 위해 군대를 모은다. 빌 콘돈 감독은 “Part1과 2의 분위기가 매우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Part1이 매우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에 호러영화의 요소를 더한 것이라면, Part2는 뱀파이어들의 전쟁이 보여줄 액션에 모든 초점에 맞춰져 있다. 영화 속 뱀파이어들의 머릿수와 종류를 보면 그야말로 글로벌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제이콥의 성정을 봐서는 그와 르네즈미의 사랑도 만만치 않게 격렬할 듯 보인다
형님들의 복수혈전
<익스펜더블2> The Expendables II 감독 사이먼 웨스트 / 출연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장 클로드 반담, 척 노리스 / 개봉 9월 <익스펜더블>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자신을 비롯한 과거의 영웅에게 느끼는 연민의 영화였다. ‘소모품들’이란 제목부터 짠한 느낌이지 않았던가. 하드고어한 액션과 과도한 크기의 폭발마저도 헛헛한 농담으로 느껴진 게 사실이다. 전편에 비해 2편의 액션은 어디까지나 스펙터클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스탤론이 내려놓은 메가폰을 쥔 이는 <툼레이더>와 <콘에어>를 연출한 사이먼 웨스트다. 적의 규모도 달라졌다. 익스펜더블 멤버들은 간단한 의뢰를 받고 미션을 수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멤버 한명이 살해당한다. 복수를 결심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익스펜더블은, 자신들이 상대한 범죄자들이 핵무기를 보유한 거대 테러 집단임을 알게 된다. 고작 코카인을 재배하는 마약왕을 상대했던 전편과 비교할 때, 여러모로 몸집을 불린 셈이다. 반가운 얼굴도 늘었다. 1편에서 잠깐 얼굴을 비쳤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멤버로 가담하고, 장 클로드 반담과 척 노리스도 등장한다. 돌프 룬드그렌과 장 클로드 반담이 <유니버셜 솔저>를 추억하며 나누는 농담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전설은 계속된다
<레지던트 이블5: 최후의 심판 3D> Resident Evil: Retribution 감독 폴 W. S. 앤더슨 / 출연 밀라 요보비치, 미셸 로드리게즈, 리빙빙 / 개봉 9월13일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브렐라의 치명적인 T-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언데드가 지구를 장악한 상황,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는 엄브렐라의 비밀기지에서 깨어난다. 그가 마주하는 건 전편보다 더 강하고 악랄해진 악의 존재들이다. 도쿄와 뉴욕, 워싱턴, 모스크바 등 전세계를 넘나들며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앨리스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과거에 눈을 뜬다.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원작으로 한 <레지던트 이블5: 최후의 심판 3D>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빌려온 액션장면을 대거 삽입할 예정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머신건을 쏘아대며 쫓아오는 좀비들을 피해, 허머에 탄 주연 캐릭터들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폴 W. S. 앤더슨 감독은 이 장면에서 “허머 대신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게 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워낙 비싼 차라 어떤 영화에서도 추격전에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편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새로운 캐릭터다. 제작진은 원작 게임 팬의 의견을 청취해 레온 케네디, 아다 웡, 베리 버튼 등의 게임 속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소문에 따르면 특히 레온 케네디를 연기한 신인배우 조핸 어브가 게임 속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고 한다.
스핀오프
피터 잭슨의 귀환
<호빗: 뜻밖의 여정> The Hobbit: An Unexpected Journey 감독 피터 잭슨 / 출연 마틴 프리먼, 이안 매켈런, 리처드 아미티지, 케이트 블란쳇, 엘리야 우드 / 개봉 12월14일<호빗: 뜻밖의 여정>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리퀄이다. <호빗: 뜻밖의 여정>에 이어 2013년에는 <호빗: 데어 앤드 백 어게인>이 개봉할 예정. 1편은 프로도(엘리야 우드)의 삼촌 빌보(마틴 프리먼)에게 13명의 난쟁이들이 찾아와 용 스머그(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빼앗긴 고향과 보물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목 그대로 뜻밖의 여정에 오른 빌보의 모험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반지의 제왕>도 주야장천 걷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J. R. R. 톨킨의 <호빗> 자체가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던 터라, 피터 잭슨 또한 <반지의 제왕>보다는 에너지와 유머가 넘치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가 가장 걱정했던 건 13명의 난쟁이들에게 각각 어떤 개성을 부여할지였다고. 물론 <호빗: 뜻밖의 여정>을 기다리는 관객이 기대하는 건 3D로 경험할 중간계의 풍광일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보기는 했어도 그때는 2D였으니 말이다.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탄생
<본 레거시> The Bourne Legacy 감독 토니 길로이 / 출연 제레미 레너, 에드워드 노튼, 레이첼 와이즈 / 개봉 9월6일 “비슷하게 프로그램됐지만, 기술과 태도는 다르다.” 토니 길로이 감독이 설명한 제이슨 본과 애론 크로스의 차이다. “애론은 본에 버금가는 신체적 능력을 지녔지만, 본에 비해서는 감정적인 지능이 섞여 있는 인물이다. 본에게는 볼 수 없었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극중 애론 크로스(제레미 레너)는 제이슨 본이 훈련받았던 비밀 프로젝트 ‘트레드스톤’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요원이다. 하지만 제이슨 본에 의해 트레드스톤이 공론화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모든 요원과 스탭을 포함한 흔적을 없애버리려 한다. 정부의 수장인 바이어(에드워드 노튼)의 계획에 따라 한국, 미국, 필리핀 등에서 활동하던 요원들이 암살당하기 시작하고, 애론 크로스도 같은 처지에 놓인다. 애론은 역시 암살 위기에 처한 트레드스톤의 과학자 마르타(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과 달리 애론 크로스는 자신이 누군지, 어떤 위기에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액션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듯싶다. 전편의 시나리오를 쓴 토니 길로이 감독은 “그동안 무술감독인 댄 브로들리의 활약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액션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2013년 할리우드의 재탕과 삼탕
할리우드가 2013년에 내놓을 작품 가운데 오리지널은 거의 없다. 속편, 프리퀄, 스핀오프, 리메이크까지. 원작의 팬심을 기대하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슈퍼히어로 계열로는 <아이언맨3>와 슈퍼맨의 새로운 이야기인 <맨 오브 스틸>을 비롯해 <토르2> <울버린> <킥애스2: 볼즈 투 더 월> 등이 있다. 블록버스터 속편도 눈에 띄는 작품이 많다. <스타트렉2>가 다시 J. J. 에이브럼스의 연출로 돌아오고,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6편을 맞이해 아이맥스를 장착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캐리비안의 해적5> <툼레이더3> <지.아이.조2> <레드2>, 게다가 <다이하드5>도 있다. <행오버3>와 <무서운 영화5>도 나름 반가운 속편일 듯. 어쩌면 전설로 남는 게 좋을 걸작을 리메이크한 작품도 꽤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76년 <캐리>가 크로 모레츠를 주연으로 내세워 돌아오고, <로보캅> <이블데드>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이 리메이크되어 개봉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케이블 영화채널 운영진은 원작 영화의 방영권을 구입하느라 정신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