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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 연기의 새로운 스타 탄생

마이클 파스빈더

<프로메테우스>

알고 보면 그다지 젊지도 않고, 큰 키에 비해 비율도 그저 그렇고, 이마도 까지기 시작한 아저씨라고…. 그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 애써 투덜거려 본들 마이클 파스빈더의 뇌쇄미를 당해낼 재간은 없다. 어리광 부리느라 정신없는 돌연변이들 사이에서 슬픈 눈빛 레이저를 마구 발사해대는 그(<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자신이 얼마나 망가질지 모르는 채 자기기만적 태도로 한 여자를 향해 돌진하는 그(<데인저러스 메소드>), 짧은 금발머리를 빗어 넘기며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한 장면을 따라하는 모습이 딱 어른의 몸을 한 소년의 그(<프로메테우스>)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제력은 풀어진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이 세편을 포함해 지난 20개월간 6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36살에 할리우드 감독들이 가장 탐하는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어디 숨어 있다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작은 물줄기가 흘러 큰 강이 되리라.”(The big things have small beginnings.) <프로메테우스>에 인용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이 대사는 파스빈더의 연기경력에도 고스란히 대입된다. 그가 런던 연기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친 것이 2001년. 영국 <ITV>의 <하트 앤드 본즈>로 신고식을 마치고 같은 해 미국 <HBO>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덥석 이름을 올렸으나,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크고 작은 규모의 드라마와 TV영화를 전전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런 그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0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말론 브랜도의 젊은 날을 닮았네

영광의 시대는 세개의 손가락 끝에서 비롯됐다. 파스빈더의 ‘미친 존재감’이 감지된 첫 번째 월드와이드릴리즈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2009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었다. 나치로 위장한 영국군 내 영화비평가 아치 히콕스 중위는 스카치 세잔을 영국식으로 세는 바람에 신분을 발각당해 두 신 만에 은막 뒤로 사라졌지만, 파스빈더는 생존했다. 20분이 넘어가는 신의 긴장을 능란하게 지탱하며 세 손가락 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그를, 매의 눈을 가진 감독들이 놓칠 리 없었다. 물론 타란티노를 포함해 누구보다 한발 앞서 그에게 침을 발라둔 감독이 있었으니, 바로 <헝거>와 <셰임>의 스티브 매퀸이다.

파스빈더의 ‘포텐’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롱테이크면 충분했다. 이 단순한 요령을 간파한 매퀸은 파스빈더에게 “배우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이루어준” 감독이 됐다. 그의 2008년작 <헝거>는 단식투쟁을 하다 죽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영웅 바비 샌즈의 마지막 나날을 다룬 영화다. 매퀸은 그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신부에게 자신이 단식투쟁을 결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을 무려 17분짜리로 만들었는데, 파스빈더는 그 시간을 기술적 연기를 넘어 맨몸과 담배 몇 개비로 버텨냈다. 타란티노가 그를 배우로서 신뢰하게 된 것도 그 장면 덕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헝거>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라는 두 다리를 건너 그는 할리우드의 중원에 안착할 수 있었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파스빈더에게 2011년은 기념비적 해다. 제일 먼저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을 확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상업적이라고 말해지는 영화에서 비로소 자기만의 색을 발하기 시작했다. 강철 같은 외피를 지녔으나 알고 보면 속은 단단히 망가진 매그니토는 관객의 마음을 이름대로 ‘자석’처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능력을 경험한 초능력자의 가장 밑바닥까지 잠수해 내려가는 파스빈더의 하강술도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하강술은 <피쉬 탱크>(2009)에서 불륜 상대의 딸에게까지 욕정을 느꼈던 사내 코너와 전작 <제인 에어>(2011)에서 광인이 된 부인과 헤어지지 못해 지옥 속에 살아가는 영주 로체스터에게서 일찍이 발견된 것이었으며, 이후 <데인저러스 메소드>와 <셰임> <프로메테우스>을 거치며 더욱 정교해졌다.

많은 평자들이 파스빈더를 ‘말론 브랜도’에 비유한다. 브랜도의 ‘훈훈’했던 젊은 날에 비교했대도 맞는 말이지만, 메소드 연기론에 대한 지적이라면 더욱 맞는 말이다. 그는 어떤 역을 맡든 대본을 300번 이상 독파하고 캐릭터에 관한 전기(傳記)를 쓴다. 그중 ‘전기’요법은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융처럼 역사적 인물과 만났을 때 높은 효율을 발휘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그가 연기한 융의 30대는 융의 삶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했다. 융과 사비나의 관계 또한 특수하고도 일반적인 어느 연인의 심리적 몰락의 역사로 다가왔다. 크로넨버그는 특정 인물의 특정 시기를 연기할 때도 보편적 감정을 아우르는 그를 “폭넓은 배우”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는데, 과연 그렇다.

<헝거>

“올해 오스카는 그의 벽난로 위에 놓여야 했다”

파스빈더의 메소드 연기가 가장 짜릿하게 다가오는 영화는 단연 <프로메테우스>다(세상에 어느 배우가 안드로이드에 메소드적 접근법을 사용하겠는가). 그는 대본과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하인>(1963) 등 참고작품들을 토대로, 전기에 준하는 데이빗의 작동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 과정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기계적 자동성을 획득한 데이빗은 당장 구매버튼을 누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를 닮은 안드로이드라면 순진하게 인간의 목적에만 복무할 리 없다. 그는 매뉴얼에 “데이빗의 목적은 단지 주입된 것인가, 아니면 그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줄 알게 됐는가”와 같은 질문도 포함시켰다. 결국 “인간은 왜 나를 만들었나요?”라고 묻고 마는 데이빗의 (자기)파괴성은 프로메테우스호를 격추시키는 데 이른다.

<셰임>에서도 아름다운 추락은 계속된다. 섹스 중독자로 분한 그는 고독한 도시인들의 몽롱한 정신세계에 겁없이 몸을 던진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의 자존심도 지켜낸다. 그 점을 포착한 샤를리즈 테론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뉘앙스를 미묘하고 유연하게 조절하는 데 있어 지나침이 없다. 균형이 뭔지 아는 거다. 진짜 인생이 뭔지 알고, 가식적인 삶은 모르는 거다. 결론적으로, 올해 오스카는 그의 벽난로 위에 놓여야 했다.” 비록 오스카는 그를 외면했지만 우리는 외면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안온한 일상 속에도 깊은 나락이 있어 발이 푹푹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배우는 드물다. 그 목록의 끄트머리에 이 남자를 추가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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