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프랑스 파리의 기차역, 12살 소년 휴고(에이사 버터필드)는 역사 내 커다란 시계탑을 혼자 관리하며 숨어 살고 있다. 휴고에겐 아버지(주드 로)와의 추억이 담긴 고장난 로봇인형만이 유일한 친구다. 로봇인형을 고치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휴고는 어느 날 인형 부품을 훔쳤다는 이유로 장난감 가게 주인 조르주(벤 킹슬리)에게 아버지의 수첩을 뺏기고 만다. 조르주 할아버지의 손녀딸 이자벨(크로 모레츠)의 도움으로 로봇인형의 설계도가 담긴 아버지의 수첩을 되찾으려는 휴고는 그 로봇인형이 조르주 할아버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을 보면서 기차가 달려온다며 난리법석이었던 사람들에게 그 장면은 3D영화의 ‘팝업 효과’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어쩌면 태생부터 3D의 잠재력을 안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히치콕 역시 당시의 기술력이 소화 가능했다면 <현기증>(1958)에서 줌인 트랙아웃 기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3D영화를 꿈꿨을 것이다. <휴고>의 실패한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조르주 멜리에스는 바로 그 영화의 ‘속성’에 대해 가장 근원적으로 탐구한 사람이었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를 영화화하면서 마틴 스코시즈는 영화 초창기의 ‘순수의 시대’로 여행을 떠난다. 로봇인형에 숨겨진 비밀이란 그 자체로 영화를 향한 순진무구한 열망과 애정이다. <휴고>는 제임스 카메론이나 조지 루카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등 동료 미국 감독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애정을 바친 3D영화에 대한 스코시즈식의 뒤늦은 애정고백이다. 또한 그것은 <분노의 주먹>(1980), <쿤둔>(1997), <에비에이터>(2005) 등 실존인물에 관한 영화를 압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던 스코시즈의 또 다른 전기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