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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길과 가지 않은 길 <두 개의 선>

제목 ‘두 개의 선’은 임신을 알려주는 테스터기의 두줄 선을 의미하는 것이자, 우리가 가는 길과 가지 않은 길을 상징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두개의 선 사이에서 방황하다 선택하고, 안도하거나 후회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영원히 평행선으로 존재할 것 같던 두개의 선이 교차하기도 하고 때론 하나의 선이 되기도 한다는 삶의 비의(秘意)를 깨달으면서 나이를 먹는다. <두 개의 선>은 결혼, 출산 문제로 첨예하게 갈등하는 20, 30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솔직한 다큐멘터리다. 기혼, 미혼이라는 구분을 거부하고 비혼(非婚)을 선택한 29살 다큐멘터리 감독 지민은 임신 테스트를 할 때마다 “이번만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이라고 기도한다. 지민은 10년째 사귄 철과 동거하고 있지만 결혼제도에 거부감을 느끼고 보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희곡을 전공한 시간강사 철은 지민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결혼제도를 고민하고 지양된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는 같다.

동거 2년 만에 지민이 임신을 하자 둘은 예상치 못했던 혹독한 현실과 마주치게 되고 영화는 이들이 겪는 정신적, 경제적 문제를 세세히 담아낸다. 첫 단계로, 임신 테스터기에 두줄이 나타났을 때 지민과 철은 당황한다. 두개의 선을 확인하고 지민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 이런”이라고 반응한다. 아이가 생기자 두 사람이 지켜오던 가치관은 시험대에 오른다. 결혼식이나 혼인신고 없이 아이를 낳겠다는 두 사람의 결정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지민의 친구들은 결혼, 아이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자들이고, 철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이를 두고 있는 30대 중반의 가장들인데 이들은 모두 “결혼하고 애를 가져야지”라고 말한다. 노동운동을 했던 상당히 진보적인 지민의 부모도 엄마 성을 따른 혼외자식으로 아이가 자라는 데 대해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2011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영화상을 받은 <두 개의 선>은 철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민과 철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고집스럽게 보일 만큼 자신의 가치관을 주장하던 주인공들은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자신이 믿었던 것들에 대해 회의하고 자책하고 그러면서 다시 다짐한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이상을 안고 태어나자 엄마로서 지민 감독은 죄책감을 느끼고 아빠로서 철은 가장의 역할을 상기한다. 아이라는 제3의 독립된 개체는 부모를 나약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만드는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한다. 지민과 철이 불같은 투쟁의지로 요지부동한 태도를 보였다면 영화가 이토록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오히려 영화는 두개의 선 중 하나를 선택해도 외골수의 삶을 살기는 힘들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끊임없이 두개의 선을 고민하고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고 때론 수정하는 것밖에는 달리 정도가 없지 않을까.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종이인형과 여성 뮤지션 소희의 음악은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지민과 철의 연애사, 가족사 등을 유쾌하게 설명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종이인형 애니메이션은 둘의 사연을 경제적으로 요약해준다. 지민이 철에게 끌리게 된 순간과 철이 택시에서 지민에게 키스당하고 청교도적인 삶을 포기하는 첫 만남을 표현한 장면들은 미소가 절로 떠오르게 한다. 마찬가지로 지민과 철의 성장 과정과 상처도 애니메이션의 도움으로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상업적인 멜로드라마가 제도권의 영역 안에서 결혼, 성, 육아 문제를 고민한다면 다큐멘터리인 <두 개의 선>이나 경순 감독의 <쇼킹 패밀리>(2008)는 독립영화의 전복적인 사고와 형식적 실험으로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여성감독들의 진솔한 자기 이야기는 어떤 픽션보다 구체적이다. 제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할 때 현실에 발목이 잡히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질문을 던지는 힘, 이것이 이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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