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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카빌] 불운을 극복한 사나이
김도훈 2011-11-07

<신들의 전쟁> 헨리 카빌

이 불행한 남자를 보라. 헨리 카빌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운 나쁜 배우였다. 심지어 영국 영화지 <엠파이어>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불운한 배우”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그가 얼마나 운이 나쁜가 하면… 잠깐. 그가 운이 좋건 나쁘건 간에 대체 헨리 카빌이라는 배우가 어떤 작자냐고? 그는 11월10일 개봉하는 타셈 싱 감독의 그리스 신화 블록버스터 <신들의 전쟁>의 주연이자, 잭 스나이더가 촬영 중인 새로운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 역할을 맡은 배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운이 좋은 신인배우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헨리 카빌은 지금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햇감자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불운한 배우였는지를 먼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헨리 카빌의 팬이라면 손수건을 준비하시라.

영국 출신인 헨리 카빌은 케빈 레이놀스가 연출한 2002년작 <몬테 크리스토>로 데뷔했다. 에드몽 당테스도 아니고 페르낭 몬데고도 아닌 조연으로 말이다. 카빌은 이후 영국영화 <아이 캡처 더 캐슬>(2003)에서 헨리 토머스의 뒤에서 조연을, <트리스탄 & 이졸데>(2006)에서는 제임스 프랑코의 곁에서 조연을, <스타더스트>(2007)에서는 찰리 콕스 아래서 조연을 맡았다. 비디오로 직행한 <헬레이저8: 헬월드>는 또 어떤가. 근사한 외모로도 거의 5~6년간을 무명으로 허덕여야 했으니 이만하면 운이 나쁜 게 확실하긴 하지 않은가. 물론 기회는 찾아왔다. 그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Showtime> 채널에서 방영된 TV시리즈 <튜더스>에서 찰스 브랜든 역할을 맡으며 TV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카빌은 “이 드라마로 겨우 미국인들이 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덕분에 나는 좀더 팔릴 만한 배우가 되었다.”

팔릴 만한 배우라. 맞는 말이다. <튜더스>가 끝내주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할리우드는 헨리 카빌을 데려오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불운의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감독 맥지에 의해 새로운 슈퍼맨으로 캐스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맥지를 밀어내고 들어온 브라이언 싱어는 헨리 카빌을 밀어내고 브랜든 라우스를 슈퍼맨으로 기용해 <수퍼맨 리턴즈>를 만들었다. 희망은 남아 있었다. <트와일라잇>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는 에드워드 컬렌 역으로 카빌을 간절히 원하고 지지했다. 정작 기회는 로버트 패틴슨에게 돌아갔다. 카빌이 10대 에드워드를 연기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인다는 이유였다. 패틴슨과의 악연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헨리 카빌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세드릭 역할로도 물망에 올랐으나 결과적으로 역할은 패틴슨에게 돌아갔고, 카빌의 불운은 패틴슨의 성공 발판이 됐다. 그게 전부냐고? 카빌은 <007 카지노 로얄>의 가장 강력한 제임스 본드 후보이기도 했다. 마틴 캠벨은 헨리 카빌을 강력하게 밀었으나 좀더 나이 지긋한 제임스 본드를 원했던 제작사는 대니얼 크레이그를 낙점했다. 그게 전부냐고? 심지어 헨리 카빌은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 역할을 마지막 순간에 크리스천 베일에게 뺏겼다. 이만하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불운한 배우’ 타이틀을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신들의 전쟁>

이 모든 불운한 소문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고 헨리 카빌은 말한다. “<트와일라잇> 소문은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대본을 받은 적이 없다. 스테파니 메이어가 나를 좋아하긴 했지만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배트맨 비긴즈>? 이야기가 오간 적은 있다만 스크린 테스트는 한 적 없다. <슈퍼맨>? 맞다. 나에게 온 역할이었다. 제임스 본드? 맞다. 나는 정말로 그 역할을 거의 할 뻔했다.” 말인즉 대부분의 소문이 진실이라는 거다. 하지만 인생은 전화위복의 연속이다. 지금 헨리 카빌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운 좋은 배우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프로젝트들을 한번 떠올려보라. <신들의 전쟁>과 새로운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이 개봉하면 아마도 헨리 카빌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수백만달러를 계좌에 입금하며 모셔갈 배우가 될 게 틀림없다. 슈퍼맨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이미지에 짓눌려 다른 역할을 좀처럼 할 수 없다는 징크스가 있긴 하다만, 다행히 헨리 카빌이 브랜든 라우스와 달리 순진한 신참은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슈퍼맨은 위대한 역할이다. 앞으로 맡게 될 어떤 다른 역할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타입 캐스팅이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 내가 얼마나 잘해내는지에 달려 있다. 타입 캐스팅의 두려움에 갇혀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맨 오브 스틸>은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타셈 싱의 <신들의 전쟁>으로 이 새로운 스타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신들의 전쟁>은 그리스 테세우스 신화에 느슨하게 기반을 둔 영화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헨리 카빌은 거인족 왕 히페리온(미키 루크)을 물리치고 에피루스의 활과 그리스를 구하라는 제우스(루크 에반스)의 명을 받은 영웅 테세우스를 연기한다. 그는 프리다 핀토와 스티븐 도프를 양옆에 끼고 완벽하게 세팅된 블루 스크린 앞에서 <300> 스타일의 복근으로 <300> 스타일의 액션을 펼치게 된다. 헨리 카빌은 테세우스 역할을 이렇게 설명한다. “테세우스는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동시에 사회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지적인 남자다.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도리어 질문을 던지는, 그런 남자 말이다.” 지적인 것도 좋긴 하다만, 헨리 카빌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300>으로 스타 자리에 오른 제라드 버틀러의 전례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하루 14시간 운동을 통해 배에 새겨놓은 에이트팩(“감독이 저에게 에이트팩을 만들라더군요. 식스팩이 아니라 에이트팩”)이라면 헨리 카빌의 이름이 관객 두뇌 속에 조각처럼 새겨질 건 보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감독 타셈 싱은 <신들의 전쟁>을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파이트 클럽>을 만났을 때”라고 설명한다. 이걸 달리 말하자면 극도로 유미주의적인 손길로 헨리 카빌의 육체를 스크린에 전시할 거란 소리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조그마한 섬에서 태어났고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군인이 됐을 것”이라 말하는 이 칠전팔기의 스타는 오랜 불운의 구렁텅이를 딛고 마침내 정상 직전에 도달했다. 그것도 그리스 신화의 영웅과 전설적인 슈퍼히어로를 연기할 수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만으로 말이다. 그가 오랜 불운을 반면교사삼아 공손하고 겸손하게 성공을 자축하리라 예상한다면, 당신은 틀렸다. 헨리 카빌이 두 블록버스터 대작의 개런티로 처음 산 물건은 애스턴 마틴의 스포츠카다. “에라이 좋아. 그냥 나를 위해 한판 질러보자고… 라는 마음으로 구입했다”는 말을 들어보라. 어쩌면 우리는 스티브 매퀸의 재림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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