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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채로울수가
2011-10-06

BIFF 상영작으로 보는 2011 한국영화 지형도

<물고기>

“한국영화와 연관해서 올해 몇 가지 변화를 꾀했다. 무엇보다 그 외연을 확장시켰다. 파노라마 편수를 지난해 12편에서 15편으로 늘린 것이 그 첫 증거다. 선정작의 면면도 그렇다. 외연은 물론 내포된 것으로도, 파노라마라는 명칭에 함축돼 있는 다양성을 대거 확대시켰다. 이들을 한두개의 주제와 소재로 묶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들이 올해의 한국영화 대표작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그 다양성을 깊이 음미하기를 소망한다. 분명, 2011년 한국영화 지형도를 조망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담당 프로그래머로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어떤 방향성 내지 지향성이다. ‘외연의 확장’과 ‘내포의 확대’, ‘다양성 제고’, 이 세 가지가, 개막작 <오직 그대만>을 필두로 특별 상영작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에 이르는 총 34편-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는 ‘와이드 앵글’ 섹션은 제외- 의, 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한국영화들을 선정하며 역점을 둔 핵심 기치였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역시 마찬가지다.

“외연 및 내포의 확대, 다양성 제고 등은 지난해처럼 총 10편으로 이뤄진 비전부문에도 해당된다. 비전을 구성하며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뉴커런츠의 서브 섹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격 조건만 맞는다면 적잖은 영화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핵심 섹션에서 선보였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1억원도 채 안되는 저예산이면서도 100% 3D카메라로 촬영했다는 <물고기>를 비롯해 스타 연기자를 넘어 이젠 스타 감독으로 비상 중인 구혜선 감독의 <복숭아나무>에 이르기까지, 영화적 수준들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상기 세 방향·지향은 비전의 총 10편 가운데 2편이 3D영화이며 1편이 애니메이션이란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쯤 되면 기존의 ‘2D’, ‘실사영화’ 중심의 어떤 흐름에 대한 주목할 만한 도전으로 손색이 없다. 일찍이 BIFF의 한국영화가 이렇게 다채로운 적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D와 애니메이션, 흥행작과 신작 등 다양

<물고기>(3D)는 집 나가 무당이 됐다는 아내를 찾아나선 교수와 아내의 행방을 알아내 교수에게 전하는 흥신소 직원을 축으로 펼쳐지는 ‘트랜스 미스터리 드라마’다. 외연적으로만이 아니라 그 속내도 입체적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스토리 추동력 등 영화적 기량이나 3D 효과 등이 발군이다. 7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완성한, 뉴커런츠의 <동학, 수운 최제우>(감독 박영철) 등과 더불 어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2011 BIFF의 발견’이다.

추상록 감독의 <>(3D)도, “<물고기>와는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는, 또 하나의 야심적 3D영화”다. 케이블 TV용으로 기획·제작돼 지난해 10월 <레스트룸>이란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으며 전면적으로 탈바꿈해 올 BIFF에서 첫선을 보인다. 어느 시골 마을의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성 휴먼드라마다. 순제작비 3억5천만원이 투하됐는데, 90% 이상 3D카메라로 찍은 입체효과가 기대 이상이다. 이 두 저예산 3D 시도는, 기존의 2D에서 3D로 변환돼 갈라 섹션에서 첫 공개되는 <괴물 3D>와 더불어 한국 3D영화 담론의 새 지평을 열 공산이 크다.

<돼지의 왕>은 또 어떤가.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2011년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일궈낸 유의미한 성취. 1998년 이래 1인 작업 시스템으로 작업해왔다는 연상호 감독이 1억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빚어낸 성인용 잔혹스릴러다. 저예산이긴 해도 작화나 양익준, 김혜나, 김꽃비 등이 참여한 목소리 연기 등에서 수준급의 완성도를 구현해냈다. 이 얼마나 주목할 만한 시도인가.

파노라마 섹션을 “<써니>(감독판)와 <최종병기 활> 같은 흥행 대작들에서부터 <키스>처럼 생짜 신예감독 8명이 뭉쳐 빚어낸 옴니버스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꾸몄다”는 데서도, 상기 세 방향성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를 비롯해 지금까지의 영화적 실험보다 한발 더 나아갔을 뿐 아니라 한층 더 자유로워진 홍상수의 <북촌방향>, 영화적 초심을 향한 김기덕의 외침으로 다가서는 <아멘>, ‘<타운> 3부작’에 이은 전규환의 파격멜로 <바라나시>, 그리고 이 땅의 60대 감독 중 가장 경쾌하며 자유분방한 행보를 펼치고 있는 박철수 감독이 후배 김태식 감독과 함께 ‘불륜’을 소재로 솔직 적나라하게 빚어낸 ‘릴레이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등도 그 방향성에 부응한다.

<동학, 수운 최제우>

장애나 다문화 모티브 다룬 작품 다수

혹시 주제나 소재에 의거해 올 BIFF의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 같은 걸 요약·제시할 수는 없는 걸까. 지난해 “‘폭력’에 대한 성찰”과 “삶의 이면에 대한 관심사”로 파노라마의 주요 특징을 뭉뚱그려 진단한 것처럼. 아무리 고심해봐도 그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편수에 구애받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일련의 변화 내지 흐름을 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장 유의미하게 다가서며 눈길을 끄는 건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장애 및 다문화 모티브를 다룬 영화들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당장 개막작의 여주인공 정화(한효주)가 실명 위기에 처한 장애우다. 실명은, <마스터클래스의 산책>의 이장호 감독 연출편 <실명>에서도 핵심 모티브다. 이장호 감독은 실제로 눈이 먼 친동생 이영호를 등장시켜 감동의 다큐-드라마를 선보인다. 실명만이 아니다. 올 BIFF에서 인기 화제작으로 부상할, <완득이>(오픈 시네마)의 아버지는 척추장애인이며, 완득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젊은 아저씨도 어딘가 모자라다. 게다가 어느 날 나타난 완득의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다. <달빛 길어올리기>의 효경(예지원)은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녀다. <핑크>의 상국(박현우)은 자폐아다. <복숭아나무>의 형제(조승우, 류덕환)는 샴쌍둥이다. <바비>의 아버지는 지적장애자다. <고지전>의 어린 병사(이제훈)는 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 <써니>의 한 여인(진희경)은 불치병을 앓다 죽는다. <최종병기 활>에서 청군의 명장(류승룡)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다문화를 다룬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그 함의는 크고 깊다. 완득의 엄마가 필리핀 여인이란 설정은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대 파격이다. <바라나시>에서 주인공의 부인이, 율법상 사랑해선 안될 아랍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남자를 찾아 인도 바라나시로 목숨 건 여행을 떠나며, 결국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설정 또한 일찍이 한국영화에서 목격한 적이 없었던 대파격이다.

위 사실보다 훨씬 더 의미있게 다가서는 건 장애나 다문화 모티브를 극화하는 시선이다. 한편도 예외없이 그 모티브들을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면서 동정적·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상적이며 일반적인 징후로, 건강하고 당당하게 그린다. <완득이>가 대표적이다. 사회의 표준적 시각에서 판단하면 죄다 ‘일탈적’ 인물들이지만 한결같이 열심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작심하고 하자면, 가족이나 사랑 등의 주제나 소재로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다만 그런 영화들이 적잖다. 총 34편 중 반 정도는 될 성싶다. 그들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진 않으련다. 너무나 식상해 뻔한 감이 없지 않아서다.

이젠 마쳐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이만하면 올 BIFF의 한국영화들에서 엿보이는 일련의 방향 내지 경향을 어렴풋이나마 피력한 게 아닐까 싶다. 올 BIFF의 한국영화들이 2011년의 한국영화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기회있을 때마다 말했듯, 그 다양성들을, 나아가 그 건강성을 다소나마 음미하길 바랄 뿐이다. 보잘것없으나마 이 진단이 2011년의 한국영화 지형도를 그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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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