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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추천작: 톡톡 신진-발칙한 녀석들
씨네21 취재팀 2011-10-06

아이러니. 현재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진 감독들의 관심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삶의 아이러니에 머물러 있다. 가난을 외치며 맥북만을 사용한다거나, 자신을 폭행하고 가둔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섹션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하수조에 빠진 여배우> The Woman in the Septic Tank

마를론 리베라 | 필리핀 | 2011년 | 90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영화란 본디 백조의 운명이다. 스크린에 투영된 한컷 한컷의 프레임은 곧 수면 아래의 발버둥에서 창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수조에 빠진 여배우>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발버둥이 어떤 목적을 향해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비루한 현실을 깨닫게 하거나, 아름다운 감동을 전하거나, 혹은 세계적인 명감독이 되거나.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이 모든 욕망이 겹쳤을 경우에 벌어질 법한 소동이다.

<하수조에 빠진 여배우>는 필리핀의 한 빈민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는 라면 한 봉지로 7명의 아이들이 한끼 식사를 때워야 하는 가족이 살고 있다. 생계를 꾸려야 하는 엄마는 딸의 몸을 씻긴 뒤 소아성애자인 백인 남성에게 매춘을 알선한다. 이 정도의 줄거리를 들은 영화 속의 누군가가 말한다. “오, 아름다워!”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이러한 비극적인 영화를 만들려는 독립영화 감독과 프로듀서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내세우는 목표는 단 하나. 국제영화제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영화가 이들의 야심을 꼬집는 방식은 먼저 그들의 예술과 실생활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난의 세계를 소재로 삼지만 머릿속에서만 영화를 찍고 있는 그들은 스타벅스에서 어떤 커피가 맛있는지를 따지고, 아이패드 충전기가 없다며 짜증을 내고, 맥북으로만 시나리오를 쓰려 한다. ‘가난’이란 소재가 어디까지나 성공을 위한 수단인 만큼 그들이 써가는 시나리오도 수상을 위한 방향으로 바뀐다. 매춘에 팔리던 딸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아들로 바뀐다. 국제영화제의 성격에 따라 장르 또한 바꿀 수 있는 이들은 애초에 사실적인 톤의 드라마로 구상된 영화를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극사실적인 영화로, 다시 할리우드의 스코어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영화로 변신시킨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는 감독과 제작자의 야심만 감당하는 게 아니다. 이들이 캐스팅하려 한 필리핀 최고의 여배우는 더이상의 성공이 무의미한 탓에 젊은이들의 독립영화를 이용해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으려 한다(실제 필리핀의 국민여배우인 유진 도밍고가 영화 속 영화의 엄마와 출연 제의를 받은 여배우로 1인2역을 한다). 말하자면 국제적 성공의 수단이 된 독립영화란 개념과 이를 쫓는 사람들의 좌충우돌 수난극인 셈. 또한 현재의 영화가 갖는 아이러니한 가치를 통해 씁쓸한 웃음을 전하는 한편,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수많은 영화들의 이면을 의심케 만드는 영화다.

<수면병> Sleeping Sickness

울리히 쾰러 |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 2011년 | 91분 | 월드 시네마 “외국의 원조가 아프리카 민주, 경제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교수의 강의를 듣던 프랑스 의학도는 이 말에 발끈하며 강의실을 나와버린다. 어려운 나라에 경제 원조를 하지 말자는 얘기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순진한 생각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수면병 평가담당자 자격으로 아프리카에 머문 4일 동안 무참하게 깨진다. <수면병>은 이렇듯 냉철한 시선으로 아프리카 경제 원조의 허상을 파헤치는 영화다. 의학도 알렉스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지수를 유발한다. 마중 나온다는 의사는 감감무소식이고, 보고서에 의하면 한달에 50명은 진찰받아야 할 병원에는 환자 한명과 모이를 쫓는 닭들만이 남아 있다. 마침내 만난 의사는 엉뚱하게도 수면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나무집을 지어주고 있다.

이 영화를 종종 지배하는 것은 암흑이다. 차 속에서 또는 숙소나 숲속에서, 모든 것이 까맣게 암전된 화면을 통해 감독은 섣불리 해결할 수 없는 아프리카 경제 원조 문제의 답답함과 암담함을 암시하려는 듯하다. 아프리카의 습기 가득한 풍경과 시스템에 대한 열패감으로 가득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조작> Manipulation

파스칼 베르도시 | 스위스, 독일 | 2010년 | 90분 | 월드 시네마 냉전 시대, 스위스는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유럽 국가였다. 스파이가 잠입하는 즉시 색출해 처벌하는 강력한 첩보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작>은 스위스 첩보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해리 윈드의 심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다른 나라 몰래 핵무기를 준비하고 있던 스위스의 1급 비밀이 소련의 신문에 새어나간다. 비상이 걸린 스위스 첩보국은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찾아내는데, 놀랍게도 그는 첩보국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왔던 조사원 해리 윈드다. 그가 진정 소련의 스파이라면 해리가 찾아냈던 수많은 스파이들의 정체는 오리무중에 빠진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라폴드가 해리의 심문을 맡아 진실을 밝혀내려 한다.

<조작>은 이야기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정통파 드라마다. 타이핑 소리가 끊일 날이 없고, 서류 더미 가득한 무채색의 조사실이 이 영화의 유일한 배경이지만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심문에 노련한 용의자와 산전수전 다 겪은 조사관의 기싸움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담에 빗대 진실을 털어놓는 해리 윈드의 마지막 고백장면은 첩보물 팬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야타스토> Yatasto

에르메스 파랄루엘로 | 아르헨티나 | 2011년 | 98분 | 월드 시네마 사회적 리얼리즘에 있어서 지금 중남미를 뛰어넘는 대륙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중남미야말로 유럽영화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흡수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적 변동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마지막 대륙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81년생 젊은 아르헨티나 감독 에르메스 파랄루엘로의 <야타스토>는 중남미의 사회적 리얼리즘영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10대 소년인 리카르도, 베보, 파타는 아르헨티나 대도시 코르도바 외곽의 빈민촌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빈병 등을 팔아 먹고사는 ‘카레로’들이다. 그들은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매일매일 도심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구걸하고 쓰레기를 모은다.

<야타스토>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선 영화다(어디까지가 의도된 장면이고 어디까지가 다큐멘터리인지 알아낼 수 없을 정도다).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인 파랄루엘로는 빈민의 삶을 정치적인 구호로 치장할 생각이 전혀 없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빈민들은 쓸모없는 인간들이다. 그 속에서 소년들은 이르게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리스본 빈민촌을 무대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지워나갔던 페드로 코스타의 폰타이냐스 연작이 떠오른다.

<미츠코, 출산하다> Mitsuko Delivers

이시이 유야 | 일본 | 2011년 | 109분 | 아시아영화의 창 임신 9개월의 미츠코는 가진 게 없다. 아이 아빠는 행방불명이고, 돈은 없고, 도와줄 이웃도 없다. 그녀의 앞날을 가르쳐주는 건 구름뿐이다. 어느 날 미츠코는 15년 전 살았던 빈민촌으로 향한다. 마을의 수장인 할머니 키요의 집에서 머물게 된 미츠코는 어린 시절 자신을 짝사랑했던 요이치와 그의 삼촌인 지로를 만나고, 어린 시절 키요 할머니가 가르쳐준 그대로 ‘쿨’한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영위하는 ‘쿨’의 규칙은 남들에게 주는 밥을 아까워하지 말 것,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할 것, 고민이 생기면 잠시 낮잠을 잘 것 등이다.

일본의 기대주인 이시야 유야 감독의 <미츠코, 출산하다>는 현재 일본사회에 가장 필요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경제공황이 만들어낸 실업자의 풍경을 끌어안은 영화는 여기에 원전폭발로 상처 입은 일본 사람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듯 보인다. 영화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곳이 후쿠시마라는 점도 눈에 띄지만 이 마을이 전쟁 당시 유일하게 원폭 피해가 없었고 그 때문에 재개발될 수 없었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니카 리이사가 연기하는 미츠코의 팔자걸음 또한 사랑스럽다.

<럭키> Lucky

아비 루트라 |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 2011년 | 100분 | 월드 시네마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가족인데”란 생각이 들겠지만 때로는 남보다 못한 게 바로 가족이다. 영화 <럭키>는 누군가 내다버린 소년과 할머니의 새로운 가족구성기다. 엄마가 죽자 홀로 남겨진 럭키는 도시에 사는 삼촌을 찾아간다. 그러나 삼촌은 어린 럭키의 양육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엄마가 삼촌에게 남긴 빨간색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럭키는 삼촌의 집에서 쫓겨난다. 엄마가 남긴 테이프를 듣고 싶었던 럭키는 옆집 인도할머니의 집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발견하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게에서 몰래 물을 떠다준다. 하지만 경계심 많은 할머니는 럭키를 집에 들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아를 돌봐주면 시청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럭키를 자신의 집에 들이고 럭키는 소원하던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된다. 첫 등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삼촌은 럭키를 되찾아가기 위해 행패를 부리고 럭키는 다시 삼촌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 후반부는 인도 할머니와 럭키의 여행기에 가깝다. 럭키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택시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세대와 나라, 가족애까지 초월한 우정을 발견할 수 있다.

<자비의 7계명> Seven Acts of Mercy

지안루카 데 세리오, 마시밀리아노 데 세리오 | 이탈리아, 루마니아 | 2011년 | 103분 | 월드 시네마 병든 자를 돌볼 것, 굶주린 자를 먹일 것, 집 없는 자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것,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줄 것…. <자비의 7계명>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의 1607년 역작이다. 400여년이 지나 카라바조의 후예인 이탈리아 감독 데 세리오 형제가 <자비의 7계명>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발칙하게도 이들은 카라바조의 7계명을 영화에 큼직한 타이포그래피로 박아넣으면서도 계명과 함께 제시되는 상황을 비틀고 뒤집는다. 집 없는 자에게 누군가 선의로 안식처를 제공하기 전에, 집 없는 자가 강제로 약자의 집을 점거하는 식이다.

제 몸 하나 부지하기도 힘든 불법이민자 루미니티와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 안토니오가 주인공이다. 루미니티는 노인을 희생양 삼아 포박하고 그의 집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는다. 그러나 외골수에 의지할 곳 없다는 점이 닮은 두 사람은 인질과 포획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점차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기묘한 동거를 다룬 이 작품은 삶의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자비가 반드시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겐 해가 되는 행동도 반드시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수수께끼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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