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인 1963년의 일본 요코하마. 열여섯살 여고생 마츠자키 우미(나가사와 마사미)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하숙집 코쿠리코를 경영한다. 그녀의 일과는 선원으로 일하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매일 아침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이 찾아온다. 우미는 학생신문 편집장 카자마 슌(오카다 준이치)을 도와 오래된 동아리 건물 철거 반대 운동에 참가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어쩌면 슌과 우미의 아버지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지들의 과거, 2차대전과 한국전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과거를 알아야만 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3년은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꽤 중요한 키워드다. 1963년은 일본이 고도성장 시대로 돌입하기 직전이다. 영화에 삽입된 당대의 히트곡인 사카모토 규의 <위를 향해 걷자>(上を向いてあるこう)의 가사처럼 일본은 오로지 위를 보며 걷고 있었다. 각본을 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도는 거의 명확하다. 90년대 내내 “살아라!”라고 외치던 그는 완벽하게 정체된 지금 일본사회를 향해 “과거로부터 배우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건 하야오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직접적으로 과거를 회고하는 이 영화의 연출을 아들인 고로에게 맡겼다는 사실이다. 고로의 전작인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지브리 팬들이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야오가 직접적으로 아들을 지휘한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과거를 회고하며 지브리의 미래를 예고하는 썩 괜찮은 예고편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와 <코쿠리코 언덕에서> 이후의 지브리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