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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부산영화제에 임하는 나의 자세
문석 2011-09-26

구스 반 산트, 아키 카우리스마키, 라스 폰 트리에, 난니 모레티, 다르덴 형제, 알렉산더 소쿠로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노 시온, 가와세 나오미, 미이케 다카시, 진가신, 두기봉, 이와이 순지, 하라다 마사토…. 거장 혹은 명장이라 불러 마땅할 감독들의 이름들을 죽 늘어놓으니 한숨이 절로 난다. 이들의 영화를 곧 열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벌떡거리게 하지만 결국 볼 수는 없을 거란 예감이 짙게 들기 때문이다. 늘 그랬다. 부산영화제는 늘 일하기 위해 갔지 순수한 관객 입장으로 가본 적은 21세기 들어 아예 없다. 당연히 거장들의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일단 이들 영화는 프레스 예매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예매 사이트를 광클릭질해서든 재수가 좋아서든 티켓을 구한다 해도 인터뷰나 마감 시간과 항상 겹치곤 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본다 해서 졸도하거나 시름시름 앓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영화제란 공간에서 영화를 안 볼 수는 없는 일. 해운대에서 만나게 되는 상당수 영화인들은 ‘아니 여기에서 영화를 보세요?’라고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곤 하는데, 그건 밤새 술 마시고 다음날 오후에 일어나 해장하고 또 술 마실 준비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아무래도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럴 때 큰 도움이 되는 게 <씨네21> 또는 <씨네21> 부산영화제 데일리가 소개하는 추천작이다. 여기에는 거장들의 영화도 포함되지만 발견과 발굴의 의미를 가진 미지의 영화들도 꽤 많기에 참고하는 편이다. 한데 이 리스트를 참고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기에 덜 알려졌지만 쏠쏠한 또 다른 영화들을 수배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영화제란 어찌 보면 영화를 보는 곳이라기보단 애타게 영화를 찾아 헤매는 곳이라는 말이 더 적확한 듯도 하다. 1지망에서 2지망, 2지망에서 3, 4지망, 그리고 마침내 ‘티켓이 남은 아무거나’를 선택해야 하는 서글픔 속에서도 가끔은 놀라운 보석을 발견하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니… 우리,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도록 하자.

부산영화제가 그토록 갈망해왔던 전용관 영화의 전당은 이번 영화제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미리 그곳을 들렀던 김성훈 기자는 “정말 정말 크고 좋아요”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아직 공사가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할 모양이다. 하긴, 이젠 남포동까지 오가느라 스트레스받을 필요없고 멀티플렉스의 소란스러움 대신 전용관의 밀도 높은 분위기를 누릴 수 있는데 그쯤이야 뭐 대수겠는가. 벌써부터 영화의 전당에서 인증숏을 찍어 트위터에 올릴 수많은 관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용관을 비롯해 주요 상영관이 몰린 센텀시티가 다소 썰렁한 분위기긴 하지만 관객이 한데서 북적거리는 축제 분위기를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상영관, 백화점 식당가, 그랜드 호텔 뒤 오뎅집, 미포의 횟집,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든 여러분과 축제의 불꽃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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