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물이라는 장르의 신기함은 읽거나 보는 동안 내가 갖지 못했던 십대의 추억을 되살린다는 데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일은 학원물 설정과는 영 달라서, 대단한 로맨스나 공포는 경험할 일이 없었다. 귀밑 3cm 머리(방학이 끝나면 날라리들은 기른 머리를 유지하려고 가발을 썼다가 죽도록 맞았고), 성적과 비례해 불어나는 체중(어느 순간부터는 그나마 체중만 상승세를 지켰다만서도), 죽도록 불안한 미래(그때는 서른살이 되면 모든 게 다 정해져서 죽도록 권태로울 줄 알았더니 이게 뭐람)가 전부였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동시에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미칠 것 같던, 교복 입은 51명의 아이들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학원물을 읽다 보면 좋아하는 남자애를 보며 두근거리던 심정이나 화장실의 마지막 칸 닫힌 문을 보며 공포에 질리던 마음이 새삼 달아오른다. 그때 알았더라면, 경험했더라면 더 뜨겁게 풋풋했을 감정이지만 별볼일 없는 십대였던 나는 학원물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저럴 수 있었지.
만화 <너에게 닿기를>을 밤을 새워 보면서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되살렸다. 쿠로누마 사와코는 친구들에게 ‘사다코’로 불린다. 사와코는 친구들에게 어딘가 불길한 기운이 있다며 <링>의 귀신 이름대로 ‘사다코’라고 불리며 명실상부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사와코는 소심하기까지 해서 그런 자신을 어쩔 줄 모른다. 그냥 혼자 노는 데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카제하야 쇼타라는 사교성 좋은 남자애가 사와코라고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함께 어울려준다. “~해준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쇼타는 사와코를 좋아한다. 자신의 마음이 제대로 사와코에게 전해지기를 바랄 뿐. <사랑을 놓치다>의 명대사대로, “잘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 쇼타의 도움 덕에 사와코는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이 순진한 커플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귀여워 죽겠다. 왜 나는 저런 거 안 하고 되지도 않는 공부를 했을까 싶다. 변변한 스킨십은 고사하고 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간절히 빌며 그저 친절하게, 다정하게, 곁에 있어주려고 애쓰는 연애. <너에게 닿기를>을 보면서 혼자 낄낄거리고 얼굴 붉히고 꺅꺅거리다 보니 하나둘씩 생각이 난다. 내 청춘이라고 없던 일을 부풀려 회상하기도 하고, 있던 일을 축소해서 기억의 가장 구석자리에 처박아두기도 했지만 그때만 가능했던 두근거림. 연애에 대해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어른’들에게, 약속 없는 주말에 쌓아두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좋았지, 하는 닳고 닳은 어른의 감상이 될 수도 있지만 잊어버렸던 순정을 되살릴 기회도 된다. 오지랖 넓게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친구들과, 눈치 없게 끼어드는 부모님과, 어김없이 돌아오던 방학과, 밥이 타도록 뜸만 들이던 연애… 아아 애틋한지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려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