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편의 옴니버스 장편영화, 두편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한편의 장편영화, 연출을 맡은 마흔한명의 감독들. 숫자로 훑어본 ‘시선’ 시리즈의 역사다. 2003년 <여섯개의 시선>으로 출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가 벌써 여덟 번째 영화 <시선 너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강이관, 부지영, 김대승, 윤성현, 신동일 감독이 인권문제와 관객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가장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름은 세 번째 에피소드 <백문백답>을 연출한 김대승 감독이다. <가을로>(2006) 이후 오랜만에 신작을 공개한 김대승 감독은 성폭력 가해자인 회사 간부를 상대로 외롭게 맞서는 여성의 이야기를 차갑고도 강렬한 톤으로 그려낸다. 가해자가 경찰에 제출한 피해자와의 다정한 CCTV 장면, 여자의 우울증 병력과 대출 정보는 순식간에 피해자를 ‘꽃뱀’으로 둔갑시킨다. 이 에피소드의 ‘발견’은 배우 김현주의 불안정한 얼굴이다. 밝고 따뜻한 이미지로 인식되던 그녀에게서 날카롭고 신경증적인 모습을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주목할 만하다.
<파수꾼>으로 올해 가장 자주 불리는 이름이 된 윤성현 감독의 <바나나 쉐이크>에서는 그의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짐을 나르던 도중 귀중품을 슬쩍 하는데, 집주인 부부는 오히려 필리핀 출신의 이주노동자 직원을 의심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필리핀 노동자도 다른 귀중품을 훔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의 한판 소동극이 귀엽다.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 개>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한 소년과 탈북자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가 휘두른 야구 배트에 이빨 두개가 빠진 소년은 그 사건을 계기로 소녀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보상금 문제가 얽히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탈북자의 인권문제에 사춘기 소년소녀의 설익은 감성을 녹여낸 풋풋하고 아련한 작품이다. 신동일 감독의 <진실을 위하여>는 당대 최대 화두인 정보인권을 소재로 삼았다. 병원에서 큰돈을 도난당하고 아기까지 유산한 부부는 인터넷 카페에 부당함을 호소하지만, 병원쪽에서 산모의 낙태 전력을 들추자 악플 세례가 쏟아진다. <방문자> <반두비> 등을 통해 인물 속에 사회를 담아왔던 신동일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좀더 직설적인 화법으로 한국사회 속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문제를 제기한다. 부지영 감독의 <니마>는 사회적 약자인 두 여성의 만남을 다룬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모텔에서 일하게 된 정은은 그곳에서 몽골 이주여성노동자 니마를 만나 마음을 위로받는다. 먼지를 닦아내듯 동료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부드럽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인 니마의 매력에 기대고 있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새롭거나 신선한 시도는 드물지만 이야기와 인물의 결을 살린 안정적인 연출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