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불량공주 모모코>부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파코와 마법 동화책>을 거쳐 <고백>에 이르기까지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양식적 특징과 화두들이 있다. 먼저 감독은 인과관계의 고리에 맞춰서 사건을 순차적으로 전개시키거나 순행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항상 결과가 먼저 제시되거나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시간을 거슬러 역추적해나가거나 앞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따라서 언급한 모든 영화들엔 등장인물들의 내레이션이 존재한다. <고백>에선 마나미의 살해사건이 일어난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과정들을 여러 시점에서 보여주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도 마츠코가 죽고 난 뒤 조카가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을 계기로 마츠코의 일생이 드러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도 동화책의 형식을 통해 오누키와 파코의 이야기가 들려지며 <불량공주 모모코>에서도 교통사고를 당한 모모코가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 시간을 되돌릴게요”라고 말하며 태어났던 시점까지 시간을 되돌리면서 영화를 시작한다. 이러한 이야기 속 이야기의 구조와 내레이터의 존재는 영화에서 단순히 일어난 것들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거리를 두면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까지 탐구하고 해석해낸다. 내레이터는 시간을 해독하고 시간성과 시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해명해낸다. <고백>은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내레이터의 역할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다양한 내레이터의 시점에서 상황을 보게 만든다. 영화에 논평을 가하는 내레이터들의 담론에 에워싸일 경우 우리는 내레이터들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고백>에서 진실과 거짓은 반전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다. 형식적으로 이러한 내레이터들에 대한 비신뢰성은 줄곧 현실에 거리를 두면서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타자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던 감독의 화두와 맞물려 있다.

기억은 인물을 지배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며 디제시스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감독의 성향은 양식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CF감독 출신답게 나카시마 데쓰야는 색깔에 민감하다. 그의 영화에서 현실의 색깔은 자기의 모습을 잃고 일그러지며 망원과 광각 렌즈를 통해 심도와 구도는 뭉개진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선 아예 조명기를 노출시켜버린다. <불량공주 모모코>에선 현실과 시간을 동결시켜버리는 프리즈 프레임이 많이 사용되며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선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보고 말을 하며 더 나아가 카메라에 얼굴을 비비고 뭉개버린다.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현실에 거리를 두며 현실을 비판하지만 그래도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는 좀더 나아가 우리 삶의 연극성을 강조한다. 겉으로 보이는 가면 뒤에 숨겨진 우리 삶의 진정한 모습을 찾으려는 연극성에 대한 강조는 <고백>에서도 이어진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무대에서 일어나는 긴 도입부와 강당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장면은 전형적인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영화의 색조는 온통 청회색으로 물들여져 있으며 가끔 삽입되는 하늘이나 꽃과 같은 자연물들만이 빨간색이나 노란색 같은 원색으로 인물들이 움직이는 청회색의 공간과 대비된다. 일관된 색조로 보여주는 그들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며 연극적인 공간이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던 감독은 <고백>에서 슬로 모션을 선보인다. 슬로 모션은 현실의 시간을 늘리며 연극적인 공간과 함께 시간에 대해서까지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길 요구한다. 거꾸로 가는 시계와 같은 직접적인 소도구 장치까지 이용한다.

사건을 먼저 보여주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은 결국 기억의 문제와 맞닿는다. 나카시마 데쓰야에게 기억은 중요한 화두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항상 오늘만을 살아가는 파코가 주인공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기억하지 말아주게. 쓰레기통 같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얘기하던 오누키는 파코에게 먼저 이름을 얘기하지만 파코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파코의 신체는 오누키의 손길을 기억한다. 영화의 중심 소재는 기억과 망각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영어 제목은 아예 ‘Memories of Matsuko’이다. 기억의 문제는 기록의 문제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확장된다. 나카시마 데쓰야 영화에서 글쓰기와 글읽기는 중요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집 앞 벽에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반복적으로 쓰며 아이돌 가수에게 편지를 쓴다. 옆집 젊은이는 온몸에 문신을 하고 남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몸에다 자기 이름을 새기며 마츠코의 아버지는 일기를 쓴다. TV에선 종이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직접적으로 나온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도 문신을 연상케 하는, 얼굴에 상처로 각인된 환자가 등장하며 파코는 매일 동화책을 읽는다. 영화는 “책만 없었다면 이 사람을 잊었을 건데”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백>은 기억의 변주곡이다. 서로 다른 기억들은 상충하며 연쇄를 일으키고 기억은 진실과 거짓의 이면에 자리잡아 인물을 지배한다. 슈야(니시 유키토)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인을 하며 유코(마쓰 다카코)의 현재는 죽은 딸의 기억이 지배한다. 나오키의 엄마는 나오키(후지와라 가오루)의 사진을 보며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라며 기억하지만 나오키는 자신의 어렸을 때 사진을 보고 “얘는 누구야?”라고 말한다. 나오키의 엄마는 기억을 기록하며 일기를 쓰고 슈야는 비디오카메라로 일기를 쓰며 미즈키는 노트북으로 편지를 쓴다. 나오키는 ‘죽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며 같은 반 아이들은 그 단어를 그대로 나오키에게 편지로 돌려준다.

주제와 어울리지 못하는 기법의 한계

이러한 기억의 문제와 기록의 편린들 그리고 언급한 내레이터와 디제시스적인 양식적 특성들을 통해서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체성과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다. 나카시마 데쓰야는 그의 작품들에서 모두 등장인물들의 일대기를 얘기한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를 쭉 보여주거나 개괄적으로 요약한다. 그것은 곧 기억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정체성의 문제에 맞닿을 수밖에 없다. 갓난아기였을 때의 나와 초등학생 때의 나, 20대와 30대의 나, 그리고 노년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계속 변화하는데 어떻게 똑같은 나라고 말하고 나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는가? 감독이 결국 얘기하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타자성이다. 그의 영화의 인물들이 타자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영화에 깊숙이 깔려 있는 타자성 때문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서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츠코가 아버지에게, 연인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한 과정이다. 조카인 슈는 인간의 가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뭘 해주었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 오누키가 자주 하는 말은 “네 놈이 나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열받아”이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분장과 의상으로 포장되어 있다. <고백>에서도 슈야는 어머니에게, 나오키는 슈야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버림받은 배신감으로 사건은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성은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풍자로 이어진다. <불량공주 모모코>에선 가짜 명품으로 둘러싸인 가짜 삶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며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선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와 약한 생물은 처참히 짓밟히는 것이 운명이고 죽어주는 편이 좋다며 사회의 시스템을 풍자한다. <고백>에서도 13살 어린아이들의 발육과 성장에 좋다는 우유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고백>은 해맑은 타자들의 얼굴로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타자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나를 만들며 동시간대에 무한히 펼쳐진 나의 기억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나들,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타자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 나카시마 데쓰야는 결국 우리가 사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고백>은 이러한 감독의 화두를 이어받는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모티브는 요코가 칠판에 쓰는 생명, 삶, 목숨이라는 명(命)이다.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공통으로 등장한다. 살인이라는 소재를 통해 산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화두를 반어적으로 던졌지만 성과는 의심스럽다. 주제와 잘 어울리던 양식적인 기법들도 <고백>에선 긴밀하게 조화되지 못한다. 주제와 표현이 극단으로 치우쳐 살인이라는 소재는 도구로 전락하고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붕 떠버린다. 언제나 조율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