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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그들은 작은 성인이었다

90년대 이후 달라진 할리우드 아역배우의 법칙

<레옹>(1994)의 내털리 포트먼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로 성장해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법칙이 있다. 사실 이건 법칙이 아니다. “~는 어렵다”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푸는 문장이 어떻게 법칙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법칙’의 예외는 예상외로 찾기 쉽다. 내털리 우드, 주디 갤런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키 루니, 조디 포스터가 빠진 할리우드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그들의 존재감과 경력은 단순한 예외로 칠 만큼 만만치가 않다. 살아남을 수 있는 아역들은 살아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의 관문을 거치면서 살아남지 못한 배우들 역시 기억한다. 셜리 템플은 30년대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배우였지만, 성인배우의 경력은 결코 아역배우 시절에 견줄 수 없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의 마거릿 오브라이언의 경력은 더 초라하다. 열성팬이 아닌 사람 중 12살 이후의 오브라이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자 아역의 경우는 더 초라하다. 미키 루니를 제외한다면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의 남자 아역 중 성인이 된 뒤로도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배우는 누가 있는가? 로디 맥도웰? 물론 맥도웰은 살아남았고 죽기 전까지 할리우드의 성격파 배우로 알찬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들은 여전히 성공한 쪽이다. 템플은 배우로서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정치가, 외교가로서 꾸준히 활동했고, 이전 경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마거릿 오브라이언 역시 여전히 활동 중이다. 로디 맥도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역배우의 역사는 대부분 실패자들의 역사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성인이 된 뒤 조역배우에 머문 저스틴 헨리도 이 세계에서는 준수한 편이다. 한동안 마약 중독자가 되어 인생을 잡치다가 할리우드의 동네북으로 아예 자기 이미지를 바꾸어버린 <파트리지 패밀리>의 대니 보나두치도 그 정도면 괜찮다. 적어도 그들은 바비 드리스콜, 게리 콜먼, 브래드 렌프로, 코리 하임처럼 인생을 종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반짝했던 명성을 잃고 비참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 전직 아역배우들의 리스트는 예상외로 길다.

내털리 포트먼, 크리스천 베일을 보라

그런데 이 상황이 변한 걸까? 세월이 바뀌면서 더 많은 아역배우들이 살아남기 시작한 걸까? 분명 최근 할리우드에는 성공적인 아역배우 출신 성인배우들이 많다. 내털리 포트먼, 크리스천 베일, 커스틴 던스트, 크리스티나 리치, 안나 파킨, 제이미 벨, 스칼렛 요한슨 같은 배우들을 보라. 그들은 심지어 조디 포스터도 한동안 겪었던 과도기의 고생을 거의 겪지 않고 성인배우로 진입해버린 것 같다. 내털리 포트먼과 크리스천 베일이 <블랙 스완>과 <파이터>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올해는 마치 이 새로운 경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경력은 선배들의 것과 무엇이 달랐는가? 자세히 보면 차이가 보인다. 재능의 차이는 아니다. 환경의 차이다. 성공적으로 성인배우로 전환한 배우들 중 전형적인 ‘아역배우’ 연기로 스타가 된 배우는 거의 없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클라우디아, <레옹>의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의 타이틀 롤, <피아노>의 플로라, <태양의 제국>의 짐을 보라. 이들 중 우리가 아역배우 하면 떠올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는 없다. 어린이용 영화나 가족영화도 드물다. 이들은 모두 성인 동료들과 견주어도 이상할 게 없는 캐릭터이거나 오히려 그들을 능가한다. 이전의 아역배우들에게 1차적인 장애가 되었던 ‘아역배우 이미지’는 시작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작은 성인이다.

이런 복잡한 역할은 배우 선정 역시 어느 정도 바꾸어놓는다. 이들은 일반적인 할리우드의 어린 배우 지망생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기 때문에, 오디션을 통해 뽑은 배우들은 할리우드의 평균과 그리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포트먼과 파킨은 모두 할리우드 쇼비즈 세계 바깥 출신이며 그 뒤로도 쇼비즈 세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자라왔다. 반대로 리치와 던스트는 노련하게 할리우드의 시스템 안에 자신을 맞춘 작은 프로페셔널들이었다. 이들은 경력 초기부터 어린 배우들의 경력을 망쳐놓을 수 있는 유혹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과 자기 통제력이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외모가 자연스럽게 성인으로 이어진 장점도 있다. 뛰어난 아역배우였지만 성인이 되면서 외모가 핸디캡이 되어버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를 보라(주로 남자배우들이 이 함정에 빠진다. 성공한 아역 출신 성인배우들이 여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성장을 통한 이미지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것이다. 이것은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법칙’으로 아직은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로 성장해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보다 더 견고하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커스틴 던스트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 따윈 없어

이들로 인해 할리우드 아역배우의 법칙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할리우드는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곳이며, 성공하거나 실패한 수많은 아역 출신 배우들이 이 함정에 빠진다. 특히 ‘전형적인 아역배우’이미지의 배우들은 그렇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린제이 로한을 보라! 그렇다면 괴상한 하부 규칙이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옹>이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아역배우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영화를 많이 맡은 배우일수록 프로페셔널한 성인으로서 안정된 삶과 경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으며, <페어런트 트랩>처럼 건전한 가족영화에 출연한 배우일수록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절대법칙은 못 된다. 어렸을 때는 만만치 않은 작은 프로페셔널이었지만 십대의 과도기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브래드 렌프로와 미샤 바튼을 보라. 물론 바튼은 렌프로와 달리 아직 기회가 있다. 젊은 나이에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거다.

할리우드에는 포트먼과 던스트의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아역배우들이 있다. 아마 다코타와 엘르 패닝 자매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전설의 ‘힛 걸’인 크로 모레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모두 영화에서 스스로의 나이를 뛰어넘은 연기를 보인 적 있고 사생활 관리도 훌륭하다. 이들은 로한보다는 던스트나 포트먼에 가깝다. 만약 이들이 모범적인 경력을 보여준다면 그 영향은 할리우드 내부에서도 조금 커질 것이며 앞으로 나올 아역배우 후배들의 환경에도 어느 정도 도움은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이들은 모두 예외적인 영화에서 예외적인 연기를 한 예외적인 배우들이다. 평범한 배우들은 대부분 평범한 삶을 따른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그 평범한 삶은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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