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이 돌아왔다. 특별출연한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2007)를 제외하면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 이후 거의 5년 만의 영화현장 복귀다. 그것도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함께 호흡을 맞춘 거장 임권택 감독과 23년 만의 만남이다. 임권택 감독의 신작 <달빛 길어올리기>에서 그가 맡은 ‘지원’은 한지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으로, 극중 몸이 불편한 아내를 두고 있는 필용(박중훈)과 잠깐의 로맨스를 나누는 중년 여성이다. 강인한 여성 혹은 감내하기 힘든 운명을 등에 지고 가는 여성을 주로 연기했던 과거와 달리 지원은 강수연의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상을 표현하는 캐릭터다. ‘그간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등 다소 거창한 질문에 강수연의 대답은 역시 예상대로 시원했다.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어요, 항상 제자리에 있었어요.”
-사실 인터뷰 오는 길에 살짝 긴장했습니다. ‘배우 강수연’ 하면 ‘카리스마’부터 떠올라서요. =내가 불편하게 할 것 같아요? (웃음) 사람들이 어려워해요. 친해지면 안 그러는데…. 앞으로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영화는 봤어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는 어떠셨나요. =나는 좋아요. 남들이 어떻게 봤는가가 중요하죠.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 사람들이 설마 내 앞에서 안 좋다고 얘기하겠어요. 다들 좋다고 그러죠. (웃음) 관객과 영화 전문가들이 어떻게 봐줄지가 궁금하죠.
-이야기 자체가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서 일반 관객도 부담없이 볼 것 같아요. =<조선왕조실록>, 한지 복원사업, 이런 쪽으로 내용이 나가니까 사람들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임권택 감독님과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이후 23년 만의 만남입니다. =16살 때 <씨받이>(1986)로 처음 만났고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끝난 뒤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감독님과 계속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우리가 20여년 만에 작품을 같이 한 사실을 우리는 정말 몰랐어요.
-아무래도 항상 가까이 지내시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매년 국내외 영화제나 행사를 함께 다니는 등 1년 내내 거의 붙어 지내죠. 외국 여행도 계속 같이 다녔고. 말로만 ‘같이 해야 하는데’ 했지. 내가 할 만한 역할이 있는 작품은 감독님께서 안 하셨고. 뭐, 그러다가 <달빛 길어올리기>가 20여년 만이라고 하네.
-<달빛 길어올리기>는 어떻게 출연하시게 됐나요. =출연 제안을 받기 전부터 감독님께서 한지를 소재로 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어요. 한지가 소재라 많이 힘드시겠다, 잘되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고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스토리 구상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어느 날, 감독님께서 ‘만나자’고 하시더라고. 그 전날에도 만났고, 계속 만나고 있는데 ‘따로 만나자’고 하시기에 ‘무슨 일입니까’ 했죠. 그랬더니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집 앞의 카페에서 만났는데 ‘출연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아, 이런 걸 왜 따로 만나서 얘기해요. 그냥 전화나 문자로 안 하고.’ (웃음) 당연히 해야죠, 뭔데요, 라고 물었어요. ‘아직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안 나왔고 네가 할 만한 역할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하겠냐’고 하시기에 ‘감독님이 부르시면 카메오라도 출연해야지, 뭘 당연한 걸 물어보세요. 해야죠’라고 했어요. (웃음)
-아마도 감독님께서 ‘여배우’ 대우를 하시려고 그렇게 한 게 아닐까요. =감독님 성격이 그래요. 친한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하시고. ‘얘기를 좀 정확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만큼은 여배우를 섭외하는 것처럼 하셨어요. (웃음) 기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요. =우리 영화는 촬영 끝나는 날까지 시나리오가 없었어요. 한지에 관한 대략의 트리트먼트와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틀만 가지고 시작했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아주 러프한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매일 계속 바뀌었어요. 송길한 선생님께서 현장에 계시면서 카메라 돌아가는 내내 시나리오를 쓰셨어요.
-배우로서 감독님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즐거우셨겠습니다.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이 훨씬 커요. ‘내가 이걸 잘하고 있는 건가’ 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죠.
-출연을 제안받은 날, 캐릭터에 대한 다른 말씀은 없으시던가요. =네. 캐릭터도 없었어요. 그저 지원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고, 필용이는 꼭 있어야 하고, 그 정도만 말씀하셨어요. 그러고선 제게 한지에 관한 책을 주셨어요.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이면서) 이만큼이나. 촬영 전 6개월 동안 책만 읽었어요. 읽기 전에는 한지 하면 인사동에서 파는 창호지, 편지지, 편지봉투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찍으면서 한지의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살면서 이런 걸 몰랐구나, 하면서 말이죠. 우리 스탭들끼리 농담삼아 이런 말도 했어요. 베란다에서 닥나무 키워서 욕조에 물 담아서 한지를 한번 떠보고 싶다고. (웃음)
-지금의 ‘지원’이라는 캐릭터가 형성된 건 언제인가요. =촬영 들어가서 첫 트리트먼트가 나왔을 때예요.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낀 ‘지원’은 어떤 여자였나요.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다큐멘터리로는 성공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어렵고.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 하면 드세고 강한 이미지가 있는데 지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고. 여성적이고 부드럽고. 평범하게 살려고 결혼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평범한 동시에 비범한 여자죠. 그런데요.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을 보면 대개 지원 같아요. 남들이 보기엔 평범해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비범하죠.
-단순히 한지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그린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필용과 지원의 멜로 라인이 재미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중년의 섹스, 중년의 사랑을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어렵잖아요.
-필용과 지원을 관객이 어떻게 바라보길 원하셨나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우리가 사랑을 했건 뭘 했건 간에 그건 일상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극중 필용(박중훈)과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은데 배우 강수연이 실제로 술 마시면 저런 느낌이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술 좋아해요. 우리나라 중년의 놀이문화가 술문화잖아요. 어쩌면 감독님도 그런 생각으로 찍으셨는지도 몰라요. 촬영 초반인 5, 6회차 때 감독님께서 따로 불러서 ‘네가 절대로 예쁘게 찍히면 안된다. 큰일났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어려워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렇다고 못생기게 보이도록 ‘흑칠’하고 그러라는 게 아니니까…. 나이 먹은 여자의 아주 깊이있는 모습을 요구하신 건데, 극중 그 여자(지원)의 인생, 생각, 고민을 구구절절하게 펼칠 수 있는 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적인 모습에서 툭툭 묻어나야 하는 거라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렇게 고민하니 답이 나오던가요.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어요. 오버하는 건 쉬워요. 그건 내지르기만 하면 되니까.
-극중 지원의 집에서 필용과 와인을 마시다가 갑자기 섹스하는 신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화면 중앙에 있는 한지 다큐멘터리를 봐야 할지, 화면 아래쪽에 있는 섹스신을 봐야 할지…. =그 장면은 감독님과 함께 거의 한달 동안 토론했어요. 흔히 섹스신 하면 다 벗고 야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들 하는데, 감독님께서는 그 장면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섹스처럼 보이기를 원하셨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러니까 섹스를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그러는 거야. (웃음)
-오히려 많이 안 보여줘서 더 야하달까요. 상상이 된달까요. =오. 더 야하더라고. 그런데 되게 신경질나더라고. 도대체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웃음)
-그 장면 찍을 때 어떤 아이디어를 내셨나요. =우리(필용과 지원)는 (화면에서) 거의 안 보이잖아. 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소리를 과하지 않게 ‘쪽쪽쪽쪽’ 하는 소리가…. 그런데 TV에서 아주 중요한, 앞뒤 신과 연결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섹스신이) 길면 지루하고 짧으면 묻힐 수가 있어서 얼마만큼 과하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가가 중요했어요. 저로서는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임권택 감독님을 비롯해 <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1987), <됴화>(1987)에서 함께한 박중훈씨 등 오랜 동료들과 함께해서 현장이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감독과 상대 배우와 친해지는 거예요. 그래야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노력이 필요없었어요. 워낙 편한 사이였거든요. 사석에서도 절친한 친구들이고. 너무너무 편했어요. 촬영 첫날부터 마치 이 영화를 몇년째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실 <달빛 길어올리기>는 거의 5년 만의 영화 복귀작입니다. 매년 적어도 한편 이상씩 작업하셨던 1980, 90년대와 달리 어느 순간 출연하는 시간의 간격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출연작이 가장 많았어요. 그때 어린이 드라마, 연극, 청춘영화 등 정말 많이 출연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서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뒤부터 영화만 출연하고 다른 건 다 거절했어요. 그때 세운 철칙이 ‘따블’(동시 출연)은 안 하겠다, 였어요. 드라마 <여인천하>(2001) 때까지 그렇게 살았어요. 나는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해요. 뭐든지, 그러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이제는 작품 수보다 ‘나한테 맞는 작품을 해야겠다’는 거예요. 나한테 맞는 작품이 없으면 안 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생활한 지 꽤 오래됐어요.
-‘배우 강수연’에 관련된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과거 이야기가 늘 빠지지 않아요. =데뷔한 지 10년 미만의 배우가 아니잖아. 기자들이 나에 대한 정보, 선입견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강수연 하면 강하다’는 얘기부터 나오지. 강하겠지, 오래 했으니까. (웃음) 사실 다 아는 얘긴데…. 강수연의 현재나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으니까 속상해요.
-일상적인 모습이 궁금해요. =항상 똑같아요. 게으른 걸 좋아해요, 또 그렇게 살고 싶고. 집에서 잘 놀고, 항상 추리닝 차림으로 있고. 며칠씩 시간날 때는 여행 다니고.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포털 사이트의 강수연 인물정보에서 별명이 ‘독종’으로 뜨던데 언제 붙은 별명인가요. =현장 스탭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얘는 안 재워도, 안 먹여도 어린 나이에 잘 견디니까.’
-그런 이미지를 과감하게 뒤집으면 재미있겠어요. 이를테면 ‘천방지축 강수연’처럼. =그럼, 이제 그런 걸 해야죠. 나는 그걸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어요. 그게 제 숙제예요.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할머니 강수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어요. 데뷔 뒤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면 배우로서 시대를 잘 타고난 것 같아요. 10대 때 10대 연기를 했는데, 그때는 어린이영화가 붐이던 시절이었어요. 청소년기도 마찬가지고. 20, 30대 때도 그랬고, 40대에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50, 60대, 그때는 시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보니까 앞으로 최소한 4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어리다고, 모른다고 봐주고 준비없이 한 것도 많았어요. 그러나 앞으로의 40년은 준비없이 할 순 없어요. 봐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이제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살아야겠어요. 그 점에서 앞으로의 40년이 훨씬 더 힘들고 중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