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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나도 영화감독, 찍는대로 콸콸콸
김도훈 사진 최성열 2011-03-17

스마트폰, 진정한 ‘DIY 영화 시대’를 열다

홍경표 감독의 현장.

스마트폰은 우리 모두를 영화감독으로 만들 것인가? 잠깐. 이런 거창한 소리는 전에도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80년대 초에 소니가 가정용 캠코더를 상용화했을 때도 사람들은 저런 소리를 했다. 하지만 캠코더는 결혼식과 돌잔치 테이프만 잔뜩 만들어냈다. 1998년 칸영화제에서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도그마영화 <셀레브레이션>이 상영되자 모두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소니 PC-7 디지털캠코더로 찍은 <셀레브레이션>은 재능은 있으나 주머니는 가벼운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 듯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순간부터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영화의 민주화는 마침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성을 먼저 실행에 옮긴 건 재미있게도 스마트폰 기업들이다. KT는 지난해 10월에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을 통해 이준익, 정윤철, 봉만대 등 12명의 기성감독들과 함께 스마트폰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지난 2월에 개최된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에는 주부, 학생들이 만든 500여편의 영화들이 출품됐다. KT의 신병규 차장은 “많은 분들이 응모를 해서 놀랐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동영상의 화질이 발전했고, 사용자들의 생활이나 문화적인 부분에서 어떤 트렌드를 선도할 여지가 많다는 판단으로 영화제를 개최했다. 그런데 내부에서도 깜짝 놀랐다. 대중에게 이런 내재된 욕구들이 있었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내재된 욕구에 가장 거대한 불을 댕긴 건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아이폰4로 촬영한 단편 <파란만장>이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면서다. 박찬욱은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박찬욱이 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가히 예언 같은 증언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개념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스마트폰영화가 ‘쉽고’ 또 ‘싸다’는 것이다. <도둑고양이들>로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에서 플래티넘스마트상을 수상한 민병우 감독은 “장점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찍을 수 있다는 거다. 예전에 단편영화를 영화 촬영용 카메라로 찍었을 때는 예산이 몇 백만원은 들어가기 때문에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작비가 20만원밖에 안 들었다”고 말한다. 제2회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에서 갤럭시S로 만든 단편 <아이의 방>으로 벅스익스트림모바일상을 수상한 정율 감독은 “스마트폰영화의 장점은 세트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은 이유는 예산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카메라의 덩치가 크면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찍는 장면들이 꽤 많았는데 스마트폰으로 찍으니 확실히 수월했다.”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상상> 현장.

지난해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에 참여해 단편 <미니와 바이크맨>을 만든 정윤철 감독은 “DIY영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올모스트 DSLR 같은 어플을 이용하면 노출이나 포커스도 수동으로 잡으면서 찍을 수 있다. 단점은 포커스가 부드럽게 변하지 않고, 흔들림에 민감하다는 건데, 나는 망치로 자가 스테디캠을 만들어서 찍었다.” <아이의 방>의 정율 감독은 “용산전자상가에서 휴대폰용 광각렌즈를 사서 갤럭시S에 부착해서 촬영”했고, <도둑고양이들>의 민병우 감독 역시 “차량용 내비게이션의 받침대를 분리해서 아이폰을 고정하고, 아이폰 액세서리 중 게임용으로 출시된 핸드그립에 아이폰 카메라만한 구멍을 뚫어서 만든 장비”를 촬영에 사용했다. 아이폰영화의 특징은 아래에서 시작된 어떤 영상 운동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출자들은 스스로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서 영화를 찍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장편영화를 찍는 데는 여전히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새로운 기기를 실험하는 데 취미가 없다면야 굳이 스마트폰으로 장편을 찍어야 할 이유도 없다. 스마트폰 구입에는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거기서 기십만원만 더 보탠다면 풀HD(1920X1080)의 동영상을 지원하는 DSLR를 구입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은 캐논 DSLR 렌즈를 링 어댑터를 이용해 스마트폰에 설치했고, 흔들림을 막기 위한 각종 장비를 제작해서 사용했다. 제작비는 1억5천만원에 달했고 스탭도 80명이 넘었다. <파란만장>의 완성도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소리다.

정윤철 감독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선동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워드 프로세서가 발명됐다고 모두가 소설을 막 쓸 수 있는 건 아니었잖아. 타이핑 기계가 발명된 거지 소설 써주는 기계가 나왔던 건 아니니까.” 상업영화 감독이나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아이폰은 완전한 대안이 아니라 서브 카메라로서의 가능성에 가까운 기기다. 인디플러그의 고영재 대표 역시 “새로운 기기가 나왔다고 대중에게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이젠 거의 고루한 이야기”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촬영 도구의 경량화와 제작비 절감이라는 부분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인들은 스마트폰이 영화의 미래라고 말하는 건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디지털캠코더와 스마트폰의 다른 점은 놀라운 대중성이다. 스마트폰은 통신을 위한 대중 기기다. 카메라는 거기에 딸린 (기능이 뛰어난) 액세서리일 따름이다. 바로 그게 스마트폰 고유의 장점일 수도 있다. 굳이 디지털 기기를 구매해서 영상을 제작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는 만든 영화를 곧바로 대중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영화가 하나로 결합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정윤철 감독 역시 “100만원 이하의 DSLR도 있으니 굳이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찍을 필요는 없지만 늘 가지고 다닌다는 건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스마트폰은 우리 모두를 영화감독으로 만들 것인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모두가 박찬욱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새로운 세대라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게 틀림없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영화가 즐거운 놀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새로운 장난감이다. 우리는 장난감의 가치를 과소평과해서는 안된다.

독립영화 배급의 새 창구 될까?

안드로이드용 무료앱으로 개봉한 <까막섬의 비밀>

스마트폰은 독립영화 배급의 새로운 창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장기이식을 주제로 다룬 독립영화 <까막섬의 비밀>이 지난 2월18일부터 안드로이드용 무료 앱을 통해 공개됐다. 제작비 1억5천만원의 <까막섬의 비밀>을 감독한 남태웅 감독은 “정상적인 루트로는 개봉이 힘들어서 무료 앱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개발자 말로는 화면 아래에 바식으로 광고를 링크해서 수익을 얻는 방법도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무료 앱을 서비스하기로 생각했다.”

<까막섬의 비밀>은 개봉 방식을 고민하는 독립영화인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익창출을 제시하기는 아직 이르다. 인디플러그의 고영재 대표는 현재로서는 스마트폰 개봉이 독립영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무료 앱도 경비가 무료는 아니다. 유료로 서비스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사업자들과 논의를 해봐야 할 문제다. 만약 통신사 혹은 영진위에서 독립영화를 살리기 위해 네트워크 비용을 부담해줄 수 있다면야 우리도 당연히 스마트폰을 통한 배급을 해볼 수 있을 거다.”

아직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영화 오픈마켓은 없다. 제작자가 직접 다운로드 비용을 책정하거나 마음대로 업로드할 수도 없다. 고영재 대표는 “운영체제에 적합한 앱 개발, 앱을 운용하는 스토어와의 협의, 경제성”이라는 세 가지를 입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한다. 현재 KT쪽은 “영화를 찍은 뒤 후반작업까지 마무리하면 에디터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앱스토어에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 중이다. “웹툰을 올리듯이 자기 영화를 서비스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방법이나 비즈니스 모델적인 면에서는 계속 고민이 따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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