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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국이 필요해 <컨트롤러>
김도훈 2011-03-02

필립 K. 딕은 로맨스의 꿈을 꾸는가? 그럴 리가. 조지 놀피 감독은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믿은 모양이다. 필립 K. 딕 원작 영화들(<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은 정체성 혼란과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시니컬한 어조로 풀어내면서 원작에 어느 정도는 경배를 바쳐왔다. <컨트롤러>는 원작에서 ‘조정국’이라는 소재만을 가져온 로맨스영화다.

<컨트롤러>의 핵심은 ‘조정국’이다. 이들은 전세계 인간들의 삶을 조정하며 미래를 정해진 공식대로 흐르게 만드는 존재들로서, 중절모를 쓴 모양새가 필립 말로 소설의 주인공들 같지만 종교적으로는 ‘천사’에 가깝다. 조정국이 가장 공들여 조정하고 있는 인간은 잘나가는 뉴욕주 정치가 데이빗(맷 데이먼)이다. 그런데 장차 미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데이빗이 계획에도 없던 현대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데이빗이 엘리스와 사랑에 빠지면 정치를 그만둘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정국 직원들은 둘을 떼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본 얼티메이텀>과 <오션스 트웰브>의 각본가 출신인 조지 놀피는 소소한 디테일이 어떻게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한국의 공무원 집단처럼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조정국 직원들과 조정국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요리조리 통제에서 빠져나갈 틈을 찾는 데이빗의 대결은 꽤 흥겹다. 다만 ‘자유의지’와 ‘운명론’의 대결을 다룬 로맨스로 굴러가던 영화는 굳이 액션스릴러 장르의 클리셰를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자유의지(혹은 할리우드영화의 운명론)에 의해 급격하게 다리가 풀린다. <컨트롤러>는 원작과 각색 사이, 장르와 장르 사이를 통제하는 조정국이 필요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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