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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길어올린 생지옥
김용언 2011-02-17

2010년 일본 최고 화제작 <고백>은 어떤 영화?

“여러분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를 추궁당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종업식 날, 중학교 선생 모리구치 유코(마쓰 다카코)는 언제나처럼 학생들에게 우유를 나눠준 다음 생기없는 목소리로 기나긴 고백을 시작한다. 그녀는 싱글맘이었고, 약혼자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와 헤어진 채 홀로 아이를 낳았다. 얼마 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던 어린 딸 마나미가 학교 수영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단순한 사고사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유코는 우연한 기회에 이것이 계획된 살인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 이 반 학생 중 마나미를 살해한 진범이 있음을 밝힌다. 그녀는 그들이 왜, 어떻게 마나미를 죽였는지 다 알고 있다. 다만 14살 이하 범죄자는 소년법에 의거해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은 채 ‘갱생’의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에, 경찰에 알리기보단 그녀 스스로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유코의 첫 번째 고백은 러닝타임 중 무려 30분을 차지하며 끝나고, 이후부터는 죄의식 없는 살인을 저지른 13살 중학생 슈야와 나오키, 슈야에게 호감을 느끼는 소녀 미즈키, 나오키 어머니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영화 <고백>은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마지막 장, 포와로가 범인의 정체를 폭로한 다음 범인의 고백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만으로 이뤄진 것 같은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범인이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가 중요한 영화다.

원작 소설의 느슨함을 영리하게 재배치

원작 소설과의 비교에서 영화는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나카시마 데쓰야의 <고백>은 매우 드물게, 원작보다 더 뛰어난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에는 모리구치 유코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독자들의 뺨을 갈기는 1장 ‘성직자’를 제외하고선, 이어지는 다른 인물들의 고백은 그만한 강도와 서늘함에서 다소 떨어진다. 마지막 6장 ‘전도자’에 이르러 유코가 다시 한번 등장했을 때야 “아아, 비로소”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심신을 긴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원작과 비교되는 지점은 각색과 촬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재배치하여 보여줄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말이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쓰여져 있는 단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이 부분은 거짓말인 게 아닌가’라든지 ‘이 인물은 계속 변명을 하고 있네’라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런 부분을 끝까지 파고들어 추리해나가면서 각본을 집필했습니다. 사실은 영화를 끝낸 지금도, 각 인물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결론은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론을 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원작을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써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독후감과 동일한 것을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이 느낄 수 있게 만들 작정입니다.”(나카시마 데쓰야)

하나 하나의 고백이 병렬식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중학생들의 목소리에 이르러선 다소 유치한 자기 반항으로 느슨해진 감이 있다. 하지만 영화 <고백>은 소설 <고백>에서 다소 약점일 수 있었던 지점을 영리하게 재배치한다. 이를테면 영화에선 유코의 고백 이후 미즈키와 나오키 어머니의 고백이 뒤섞이며 진행된다. 인정욕구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슈야에게 연민을 느끼는 미즈키와 이 끔찍한 상황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 ‘착한 아들이 나쁜 친구 슈야에게 꾀임을 당했다’며 외면하는 나오키 어머지는 두 어린 살인범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연민과 범죄 이면을 보고자 하는 다른 시선을 대변하게 된다. 슈야의 고백 편에서는, 허영기 많은 소년의 장광설을 소설보다 축소한 반면 이 가련하고 추악한 영혼의 냉기를 훨씬 강화한다. 그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소리 높여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인용하며 ‘죄와 구원’을 역설하고는, 마이크에서 살짝 물러서 “농담이야”라며 소리죽여 웃는다.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거꾸로 가는 시계’라는 조악한 발명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뛰어나게 형상화된다. 이 부분을 슈야의 지루한 독백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촬영 역시 만족스럽다. <불량공주 모모코>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처럼 화려하고 컬러풀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해서, 거의 청회색에 가까운 색조로만 뒤덮은 우울한 화면이라고 해서 “나카시마 데쓰야가 달라졌다”라고 말할 순 없다. 어떤 면에서 그는 <고백>에서 더 한층 화려한 촬영을 선보인다. 측면 혹은 정면 클로즈업 위주로, 마치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나긴 독백이 이어지지만 실상 아무도 그 독백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방식으로 지독히 고독하게 찍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인물들 각자의 1인극을 보는 것처럼 꼼짝없이 그들의 시선에 포박된다. 주제가로 쓰인 라디오헤드의 <Last Flowers>가 되풀이하는 가사처럼. “and if I’m gonna talk/ I just want to talk/ please don’t interrupt/ just sit back and listen…”

잔인한 아이들 vs 냉혹한 어른의 시선

소설과 영화 양쪽 모두 충격적인 지점은 어떻게 13살 아이가 살인을 저지른단 말인가, 라는 점에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아이와 어른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상관없다. 먼저 거리낌없이 아이들의 잔인함을 폭로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교실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하든 아무런 관심이 없고, 혹은 그들이 말하는 바와 진심이 어긋나 있음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고 조롱한다(오카다 마사키가 연기하는 젊은 교사 베르테르의 수난).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아이들에게 맞먹는 잔인함으로 대등하게 ‘대결’하는 어른의 냉혹함을 응시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어른이 아이에게 그런 짓을!’이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목조르고 상처 입히며 배신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정확하게 말하면 마지막 대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코의 마지막 대사는 원작과 똑같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 한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터져나오는 그 한마디 때문에 부천국제영화제를 통해 <고백>을 먼저 접한 관객들 사이에선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게 나의 복수예요. 진짜 지옥. 그곳에서 갱생의 첫걸음이 시작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장난이야”. 그러니까 영화 속 유코는 소설 속 유코와 달리 폭탄을 설치하지 않은 것인가? 첫 번째 고백에서처럼 피를 섞지 않은 우유를 마신 걸 뻔히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척하며 아이들에게 심정적 고문을 가했던 것처럼 마지막에도 슈야를 지옥에 떨어뜨리기 위해 그의 단 하나의 약점에 육박해들어간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까?”라는 질문 앞에 그녀가 결국 굴복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유코의 ‘장난’은 바로 그 앞의 대사, “지옥에서 갱생의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다”를 뒤집는 말일 수도 있다. 너의 지옥에서도 부활은 불가능하다는 무시무시한 선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는 너와 함께 치욕스런 영혼을 내보였으니 나와 함께 지옥불에 떨어지자는 아귀 같은 속삭임. 소설 <고백>이 “법이 용서해도, 난 용서할 수 없다”는 사적 복수담의 쓰디쓴 쾌감을 선사한다면 영화 <고백>은 그렇게 거듭하여 관객에게 질문한다.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까?”

영화 <고백>이 소설 <고백>에 비해 등장인물 모두에게 최소한의 연민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인간성이 있음을, 그들 모두 ‘인간’임을 잊지 않도록 주의깊게 배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논조로 보건대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논란은 더욱 차가운 복수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쪽으로 본다면 영화 <고백>의 결론은 일본영화의 경계를 넘어서 2010년에 나왔던 동시대 세계영화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게 어둡고 비관적이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지금, 이 영화를 통해 지옥을 보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을 <고백>이 아니라 <지옥>이라 붙여도 옳았다. 한국에선 3월 중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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