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의 1/3은 유상섭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네21> 785호 인터뷰에서 나홍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법도 하다. <황해>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절실함은 대사 대신 몸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차가 바로 눈앞에서 충돌하는 듯한 느낌을 전했던 구남과 면가의 카체이싱 장면과 컨테이너 트럭이 전복되는 장면, 면가가 먹다 남은 소 족발로 사람을 내리치는 장면은 영화에 선혈같은 강렬함을 덧입혔다. <추격자>의 무술감독으로 나홍진 감독과 인연을 맺은 유상섭 무술감독(<해결사> <박쥐> <열혈남아> 무술 담당)은 성룡을 연모하다 스무살 때 <신팔도사나이>로 액션계에 입문한, 서울액션스쿨 출신 20년차 베테랑 스턴트맨이다. 그에게 <황해>는 처음으로 무술감독이란 직함을 위태롭게 한 작품인 동시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유상섭의 대표작”이 됐다.
-<황해>는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영화다. 기본 컨셉을 어떻게 잡았나. =미식축구를 생각했다. 보통 액션영화에는 합이 있잖나. 치고 피하고 때리고. 그런데 실제로 사람 몸이 부딪히면 그런 합이 필요없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힘을 70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30은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동작들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컨셉을 잡았다.
-나홍진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액션은 없었나. =사담인데, 나 감독은 현장에서 ‘대차게’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쓴다. 한마디로 정말 세게 해달란 얘기다. 화면에서 임팩트가 팍 느껴지게끔. 감독님이 그말 하면 우리 팀은 ‘아이고 아파라’ 하는 거지. (웃음) <황해> 카체이싱의 경우 시속 160km까지 차를 몰았다. 부산항 배에서 배우들이 떨어질 때, 감독님이 수영도 대차게 하라고 했다. (웃음) 살고자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화면에 보여야 한다고. 우리 애들(서울액션스쿨 후배들)이 차가운 물속에 있는데도 슈트가 덥다고 하더라.
-그렇게 ‘대차게’ 하다보면 위험한 상황도 오지 않나. =액션장면이 화면에선 굉장히 위험하게 보여야 하지만 배우들은 사고없이 안전하게 연기를 마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하지. 컨테이너 실린 트럭 운전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실제로 컨테이너 기사들 찾아다니며 물어보고 그랬다. 그런 고민 안 하고 준비 안 하면 수명이 짧아진다. 오래, 길게, 멋지게 계속 액션하려면 몸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한다.
-<황해>에서 새롭게 성취한 스턴트 장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자동차 액션 부분일 거다. 감독님이 실제 사고를 보는 듯한 화면이 영상에 담겨야 한다고 주문했고, 우리도 진짜로 차를 충돌시키자 결정을 내려서, 드라이버들이 안전장치를 두세배씩 더 했다. 차가 더 잘 부서지게끔 차를 ‘썰어’놓기도 하고, 차와 차가 부딪혔을 때 더 잘 튕겨나갈 수 있게 보조바퀴도 달고. 우리 팀이 평소에 잘 안 하던 방식을 시도해봤다. 확실히 <황해>를 하며 나도 팀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액션의 한축은 배우들이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무술감독으로서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의 액션을 어떻게 보나. =두분 다 감이 굉장히 좋다. 특히 김윤석 선배는 빈말이 아니라 무술감독 해도 될 것 같다. 면가가 먹다 남은 소 족발로 태원 일당을 처치하는 장면 있잖나. 우리는 액션, 하면 그냥 막 때렸을 텐데, 김윤석 선배는 상대방을 때리고 다시 쳐다보다가 ‘으으’ 하면 한대 더 때리더라. 확인사살하는 거지. 그 장면에서 면가의 잔인함을 정말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하정우씨는 부산항 배에서 1 대 20으로 싸울 때, 나에게 몽둥이로 얼굴을 맞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얼굴을 맞으면 무술하는 사람이니 다음 동작을 생각했을 텐데, 정우씨는 그렇게 맞으면 상대방을 못 보고 그냥 막무가내로 (도끼를) 휘두를 것 같다고 하더라.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더라. 무술하는 사람들이 액션, 힘, 임팩트를 추구한다면 배우들이 이렇게 연기적인 부분을 가미해줘 훨씬 더 거칠고 투박한 액션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럭에 실려가던 컨테이너가 쓰러지는 장면이 굉장했다. 매우 위험한 장면이라 직접 운전했다고 들었다. =차가 너무 크고,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컨테이너가 잘못 쓰러지면 자칫 대형사고가 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날 촬영이 금액으로는 한 2억원 된다고 들었다. 내가 스턴트맨을 한 게 올해로 20년째인데, 화면에 찍히는 건 차지만 실제 주인공은 나더라. 13대 카메라가 나를 찍는 현장에 있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번밖에 기회가 없었다. 실패하면 나는 정말로 무술감독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담배 다섯대를 연달아 피우고 출발했다. 다행히 생각 이상의 장면이 나왔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황해> 이후 어떤 작품을 준비하나. 앞으로 욕심나는 액션이 있다면. =이정향 감독의 <노바디 썸바디>(가제)와 황인호 감독의 <오싹한 연애>, 정재영씨 나오는 <카운트다운>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는 <아저씨> 같은 본 스타일 액션도 욕심이 나고, 동작 자체가 대사 같은 중국식의 화려하고 우아한 액션도 해보고 싶다. 한국에서 무술감독으로서 한 분야만 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다 잘하는 게, 제대로 하는 게 내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