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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그의 몸이 말하는 게임의 규칙

유해진을 보면 늘 기운생동하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나온 대다수의 영화에서, <트럭>이나 <죽이고 싶은>과 같은 주연작을 빼면, 그는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을 맡고 있는데, 상대 배우의 기운을 훔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운을 내뿜는 균형의 추를 절묘하게 맞춘다. 상대에게 눌리지 않지만 과하게 내지르지 않는 기운으로 그는 캐릭터에 입체적인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그를 기억하게 한 첫 번째 영화 <공공의 적>에서 그가 맡은 칼잡이 양아치 캐릭터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체안치실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앞에 놓고 일장연설하며 시범을 보이는 장면, 게다가 슥 장난으로 강철중의 배에 칼을 대는 시늉으로 강철중의 혼을 빼놓는 모습은 우리가 전형으로 가두는 악인의 모습에서 빠져나오는 인간의 입체적 면모를 절묘하게 보여주었다.

테크니컬한 배우의 연기는 잠깐 신선할지 몰라도 좀 질리게 마련이다. 유해진은 테크닉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질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타짜>에서 조승우의 곁에서 드라마를 운반하는 그는 쉴새없이 떠드는 수다로 관객을 압도하는 캐릭터였는데 그 가쁜 호흡을 소화해내는 것이 대단한 테크닉의 기초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면서도 전혀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하여 그는 수시로 덮쳐오는 기운으로 관객을 좌지우지하면서도 유해진이라는 개인을 드러내지 않는 보호색을 오랫동안 가꾸어왔다. <전우치>에서 그가 강동원의 옆에서 촐랑대는 캐릭터로 나올 때도 그는 전형적인 코믹 릴리프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듯 굴면서도 이 초현실적인 판타지에 거의 유일하게 인간적인 온기를 입히고 드라마 전체의 색을 따뜻하게 달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나온 <이끼>에서 그가 이장의 수하로 나와 곧잘 쉰소리를 할 때 객석에선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 생각보다 관객이 그를 매우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독특한 외모는 어느 쪽으로도 고정되지 않는 나름의 개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도 알았다. 류승완의 수작으로 일컬어지는 <부당거래>에서 그는 고군분투하는 황정민 캐릭터 옆에서 느물거리며 악의 형상이 무엇인지, 모든 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의 여유와 치밀함을 외부로 발산하는 멋을 보여줬다. 유해진은 앞으로도 자기만의 눈빛을 갖고 있는 단독자와 코믹 릴리프와 악인의 형상을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장면

<이끼> & <부당거래> <이끼>에서 유해진이 연기하는 김덕천은 권력자의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였던 초조와 불안을 외부 사람들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산하고 만다. 영화의 중반 흐름을 고조시키는 이 장면에서 유해진은 드물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한 호흡으로 화면을 장악하는데 이게 기교로만 지탱됐다면 완성된 영화에서만큼 관객을 습격하는 느낌은 주지 못했을 것이다. 스크린으로 보존된 기운이 객석에도 전달된다는 것은 대단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부당거래>에서 최철기 형사에게 한강변 다리 아래서 유도기술로 당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유해진이 연기한 개발업자 장석구는 표면상으로 최철기에게 당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압도하고 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몸으로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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