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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구?
정재혁 2010-09-09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도쿄도 미타카시에 위치한 지브리 뮤지엄

2006년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스튜디오 지브리 사내 시사.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를 보던 중간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극장을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건 안돼요.”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과 함께 세계 3대 판타지로 꼽히는 대작 <게드전기>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해 제작 초기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결과에 실망한 듯했다. 한참을 침묵했고, 조심스레 입을 열고는 “불편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정면을 마주하고 있지 않아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은 개봉 이후 미지근한 원작의 변형, 불균질한 만듦새라는 혹평을 들었다.

2010년 6월 지브리의 또 다른 사내 시사. 이번엔 미야자키 하야오가 웃었다. 7월 공개할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를 사원과 함께 본 뒤 그는 연출을 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손을 번쩍 들고 “잘해냈네요”라고 말했다.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때와 상반된 모습이었다. “제가 생각했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잘 이끌어냈어요.” <마루 밑 아리에티>는 7월17일 개봉해 4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8월24일 현재 극장 관객 500만을 돌파했다. 배급사인 도호는 흥행수익 목표를 100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외하고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성적이다.

고령화 가족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다수 감독의 작품을 골고루 제작하는 보통의 스튜디오와 달리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다 이사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만드는 스튜디오라 자연스레 따라붙은 질문이었다. 특히 1995년 지브리가 신인 곤도 요시후미를 내세워 <귀를 기울이면>을 발표했을 땐 곤도 요시후미가 지브리의 2세대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이 56살. 다카하다 이사오는 62살이었다. 급할 건 없었지만 곤도 요시후미가 확실히 자리를 잡아준다면 이상적인 스튜디오의 조직을 꾸릴 수 있는 계기였다. 하지만 이 후계자 이야기는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가 나올 때까지도 지루하게 이어진다. 곤도 요시후미는 1996년 갑작스런 동맥류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다 이사오 외의 감독이 연출한 장편애니메이션은 딱 3편이다. 곤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과 2002년 모리타 히로유키의 <고양이의 보은>. 그리고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2006년작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지브리에서 차기작을 만들지 못했다. 곤도 요시후미는 안타깝게 세상을 떴고, 모리타 히로유키는 지브리를 나와 TV 애니메이션계를 돌았으며,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이후 그저 조용했다. 그러니 후계자 이야기가 잦아들지 않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반복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선언도 이를 부추겼다. 2010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이 70살. 스튜디오 지브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제 역할은 한정돼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순 있지만 나지 않는 싹을 억지로 꺼낼 순 없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후배 양성에 대한 고민을 수차례 털어놨다. “선배와 후배가 3각 구도를 이뤄야 이상적인데 지금의 지브리는 그저 고령화되어 늘어졌다”고 했다. 1984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해 26년. 2세대라 할 감독이 한명도 없다는 게 그로서도 마음의 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조바심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하는 후배 양성은 천재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재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바른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더 힘을 썼다. 1989년 스탭 전원을 정사원으로 고용한 일은 그 시작이다. 작품별로 스탭이 모이고 해체되는 기존 제작 시스템을 뒤엎고 스튜디오 지브리는 월급 20만엔의 정규직으로 사원을 채용했다. 당시 대기업 평균 월급은 16만엔 수준. “편안하게 여유를 갖고 작업하지 못한다면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없어요.” 후배 양성을 위한 밑거름 작업이었다.

<고양이의 보은>

<귀를 기울이면>

2세대 신인감독보다 스튜디오 역량 강화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최적의 공장으로 꾸민다. 매년 정기채용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통 외주를 주는 미술과 촬영도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게 별도 팀을 꾸렸다. 이를 위해 1992년 스튜디오를 도쿄도 고가네이시로 확장 이전했다. 이로서 지브리에선 더빙 작업을 제외한 애니메이션의 모든 과정이 가능해졌다. 2010년부터는 도요타자동차의 후원으로 ‘니시(西)지브리’도 운영한다. 정기채용과 별도로 애니메이터를 뽑아 일정기간 연수를 진행하는 계획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후계자 찾기보다 스튜디오 지브리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지브리의 복지후생 제도는 일본의 어느 기업보다 잘 갖춰져 있는 걸로 유명하다. 스튜디오에는 직원들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배 양성이 인재 찾기가 아닌 공장 잘 돌리기임이 확연이 드러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관이 큰 병풍을 치고 있고, 섬세하고 조밀한 그림이 그 안을 채운다. 40년 넘게 그가 쌓아올린 공적이 새로운 이야기의 틀로 유려하게 재연되는 느낌이다. 신인 감독의 새로움 대신 스튜디오 지브리의 역량이 화려하게 빛난다. “감독에게 초점이 있었다기보다 스탭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거죠.”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말 그대로다. 연출을 맡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역시 10년 넘게 지브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스탭이다. 요네바야시 감독도 “미술은 내가 모르니까 미술감독에게, 색은 색채 담당 스탭에게 맡겼다”고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30년 넘게 가꿔온 지브리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후계자 대신 훌륭한 공장이 있었던 셈이다.

일본 언론은 <마루 밑 아리에티>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100억엔의 수익을 기록할 지브리 영화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흥행 추위로 본다면 기정사실에 다름없다. 그리고 이 숫자를 바탕으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바라보기도 한다. 작품 내적으로도 미야자키의 세계관을 계승하며 개성을 드러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울 것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반복이란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를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도시오도 인정한다. 미야자키가 <마루 밑의 아리에티>를 신인 감독에게 맡긴 건 “두근거림을 갖고 임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이미 제 안에서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는 연출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미야자키의 철학이기도 하지만, 뒤집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익숙한 세계를 대신 그려줄 신인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침표를 위한 저축

2009년.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든 스탭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했다. 주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중장기 계획. 그는 이 자리에서 3년간 두편의 영화를 신인 감독에게 연출시키겠다고 했다. 탄탄하게 일궈온 스튜디오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기획은 물론 본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색채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3년간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의 세계를 맴맴 돌지 모른다. 물론 그 안에서 새로운 재능이 태어날 수도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로선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도시오는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서도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병풍. 이는 스튜디오 지브리 후계자 문제의 가장 큰 가로막이다. 꽤 많은 지브리 애니메이터가 미야자키의 연출 제안을 받고 한달이 안돼 손을 뗐다. “다들 장에 탈이 나서 입원을 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도 “두번 다시 연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위해 만든 곳이에요.” 스즈키 도시오의 말처럼 스튜디오 지브리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다. 후계자? 애초에 성립이 안되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 말에 의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두 신인 감독의 작품을 완성한 뒤 자신의 마지막 영화를 만들 거라고 했다. 그는 <벼랑 위의 포뇨>를 마치고 “마침표를 찍어버린 작품”이라 했고, “앞으로 더 나아간 작품을 한다면 엔터테인먼트로서 성립이 불가한 게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즉 신인 감독의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저축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차기작이 나온 다음 스튜디오 지브리는 끝나는 걸까. 스즈키 도시오는 오히려 끝나야 맞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30년 정도 생각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나도 그가 남긴 공장은 건재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번의 마침표를 찍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사이. 그때가 지브리의 수확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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