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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독일에서 고향을 노래하다

‘향토영화’로 독일 사로잡은 조성형 감독의 <그리움의 종착역>

<그리움의 종착역>

2006년 혜성처럼 나타나 독일영화계를 술렁거리게 한 감독이 있다. 그는 데뷔작 <풀 메탈 빌리지>로 헤센영화상 등 독일의 각종 영화상을 휩쓸더니, 2007년에는 독일 신인 감독 등용문인 막스 오퓔스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막스 오퓔스상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여성 수상, 그것도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상이었다. “유머가 넘치면서도 다층적이며, 우리도 모르는 전형적인 독일의 한 면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으며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 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재독 영화감독인 조성형이다. 그는 1990년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로 유학 와 영화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영화감독이 되기 전엔 뮤직비디오 편집 일을 했었다.

“20년 가까이 살아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독일에서 고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조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주저없이 ‘향토영화’(Heimatfilm)라 부른다. ‘향토영화’는 독일의 고유한 장르 중 하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아가 넘쳐나는 폐허 속에서 독일인들이 찾아 헤맨 건 고향의 이미지였고, ‘향토영화’ 역시 고향의 이미지를 간절히 원하는 영화인들에 의해 탄생했다. 특히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향토영화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 속에 ‘가족, 우애, 사랑, 시골 공동체’를 주제로 망가지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그가 자신의 영화를 ‘향토영화’라 부르는 데에는 지난 역사의 과오 때문에 고향과 독일인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껄끄러워하는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향을 아끼지 않으면 이방인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조성형의 데뷔작인 <풀 메탈 빌리지>의 무대는 평화롭고 전원적인 북독 시골 마을 바켄이다. 인구 1800명의 작은 시골엔 매년 여름 세계 각국의 헤비메탈 팬 6만명이 다녀간다. 카메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문화가 부딪치는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반어적인 시각으로 중첩해서 보여준다.

2009년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조성형의 최근작 <그리움의 종착역>(Endstation der Sehnsuchte)은 한국 남해에 조성된 독일 마을에 사는 세쌍의 한독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로, 독일 내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독일 유력 일간지인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기이한 상황에도 조성형 감독은 차분히 대응한다. 또 <풀 메탈 빌리지>에서처럼 편견없는 태도가 돋보인다. 조성형은 아마 영화 속 여인들의 이중 실향의 원인을 고찰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심금을 울리는 부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결국 내 이야기

조성형 감독 인터뷰

-<그리움의 종착역>에 대한 독일인의 반응은 어떤가. =한국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이 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화 자체는 매우 재밌다. 관객도 보면서 많이 웃는다. <풀 메탈 빌리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슬픈 마음이 들지 않는데, <그리움의 종착역>은 보고 나면 마음이 슬퍼지고 가슴 뭉클해지는 그런 부분이 있다. 우는 사람들도 더러 있고 오락성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 중심이라 독일인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두 영화 중 어떤 영화에 더 애착이 가는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풀 메탈 빌리지>는 첫 번째 영화라서 특별하고, 두 번째 영화도 마찬가지로 정이 간다. 그런데 첫 번째 영화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했던지를 두 번째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됐다. 첫 영화는 19만 관객을 모았다. 다큐멘터리영화인데다, 독일 내 예술영화가 5만 관객을 모으면 성공인 것을 감안할 때 대단한 출발이었다. 두 번째 영화는 관객이 1만명 들었다. 그래도 <그리움의 종착역>은 내게는 아주 특별하다. 내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하는 거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 간호사로 독일에 온 뒤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사회에 잘 적응해서 사신 분들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고향에 대한 개인적인 탐구를 할 수 있었던 영화다.

-영화를 통해 고향에 대한 답을 얻었는가. =<풀 메탈 빌리지>에서 깨달은 것은 내게 새로운 고향은 독일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독일이 낯설고 독일인이 정겹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켄에 갔을 땐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줬다. 순박하고 정겨운 사람들 때문에 진짜 고향처럼 느껴졌다. 독일인들은 원래 나치 범죄의 과거 때문에 자신이 독일 사람이라는 것을 힘겹게 생각지 않나.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때가 안 묻은 사람들이어서 좋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나. =동독과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이르면 내년에 선보일 것 같다. 더 자세한 것은 밝히기 어렵다. 내가 미신을 좀 믿는 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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