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선택, 행복을 물들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 삶의 비극이다.한국에 있어도 독일이 그립고 독일에 있어도 한국이 그립다!
1970년대 초 간호사로 이역만리 독일로 떠났던 세 명의 여성이 황혼이 되어 독일인 남편과 고국으로 돌아온다. 남해의 한 마을에 “독일마을”이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정착 생활을 시작하지만 30여 년의 시간은 자신이 태어난 모국이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을 만든다.
그들에게는 삶의 공간이지만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세를 타서 본의 아니게 평온한 삶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이들. 제2의 고향이었고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독일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지 않고 타일 지붕과 독일식 흰색 소시지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독일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문화적 균형을 이루며 한국에 적응하는 법을 차츰 배워간다.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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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다!
가족을 위해 또는 나의 미래를 위해 독일로 떠난 간호사들과 광부들은 30여 년을 독일에서 머물며 고국에 대한 향수에 시달렸다. 백발 노인이 된 지금 그들은 사무치는 그리움에 고향행을 결심한다. 30여 년을 마음에 담아두던 고향에 대한그리움의 노래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향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공감대 자극!
독일 고유의 장르 ‘향토 영화’가 한국 색을 입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 속에서 독일인들이 찾아 헤맨 것은 고향에 대한 이미지였고, 영화인들에 의해 ‘향토 영화’가 탄생했다. 고향에 대한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성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새롭게 태어난 ‘향토 영화’도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은 다시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독일에서 생활할 때는 그 곳이 낯설었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고향이 낯설다. 양국에서 이방인처럼 살아오던 그들이지만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고향을 만들었다. 30여 년의 문화 차이 속에 혼란과 독일 생활에 대한 그리움도 느껴지지만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이기에 노년의 삶을 이곳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 About Movie ]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그리움을 채우다
30여 년을 독일에 살면서 독일인과 같은 생활 방식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지만 항상 마음 깊은 곳에는 떠나온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안정된 삶, 새로운 가족들이 함께 있는 독일에 있으면서도 마음속 그리움은 큰 구멍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반겨주는 이 없어도 고향의 냄새와 풍경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면 그 허전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결국 그 그리움의 종착역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움의 종착역> 속 주인공 세 명의 한국 여성들은 눈물 어린 사연을 가지고 독일로 떠났지만 지금은 사랑스러운 남편과 노후를 즐길 일 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리움의 종착역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의 도착지는 ‘독일마을’이라 불리고 있는 남해의 외딴 시골 마을이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 마을은 과거 그녀들이 태어나 자라던 고향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허전했던 마음의 그리움을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곧 30여 년 동안 그녀들의 보금자리였던 제2의 고향 독일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게 된다.
떠나온 독일에 대한 향수와 도착한 그리운 마음의 종착역 사이에서 그녀들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원래 고향과 독일을 함께 품을 수 있도록 남해에 독일을 옮겨다 놓은 독일 마을로 정착하면서 두 고향의 교집합을 이뤄냈다. 반겨주는 이도 없는 고향에서 한국어보다 독일어를 더 편하게 쓰게 된 자신들의 모습이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도 고향의 품은 따뜻했다.
종착역에서의 새 삶을 산다는 것은…
고국으로 돌아온 세 명의 한국 여성의 곁에는 든든한 독일 신사 세 명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그리움을 채워주기 위해 그들은 그녀들이 했던 것처럼 마음 속 그리움을 담기로 했다. 실제 그들의 결정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70년을 살아왔던 고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 나라로 이민 오겠다는 결심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은 실행에 옮겼고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노후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종착역에서 새 삶을 산다는 것은 이들 주인공 부부들에게 인생 말년의 도전과도 같다. 안락한 독일의 생활을 뒤로하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집을 숨이 차오르게 다녀야 하고, 노인 복지와 의료 보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 곳에 남은 인생을 투자한다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만으로는 도전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이들 부부는 종착역의 새 삶 속에 적응해 가며 한국의 남해에 독일 마을을 지어 양국에 대한 마음 속 그리움을 다시금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남해의 독일마을
2003년 한국의 섬 남해에 독일마을이 만들어졌다. 독일마을은 간호사와 광부로 60년대와 70년대에 독일에 건너가서 30년 이상을 살다가 돌아온 이들을 위해 새롭게 계획된 곳이다. 그들은 새로운 터전에 독일형식으로 집을 짓고 한국의 섬 남해에 독일마을을 건립해 정착을 하였다
독일마을의 아이디어는 지방의 한 정치인에 의해서 탄생되었다. 그의 형제가 독일에서 간호사와 광부로 일하면서 독일에 살았었다. 그리고 그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힘써 달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남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골지역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 인구가 점차 감소하게 되어 점차적으로 황폐한 마을이 되어갔다. 농부들은 더 이상 중국의 값싼 농산품의 수입과 경쟁할 수가 없었고 미국의 대형 농장에 맞서 싸울 수도 없었다. 농민들의 쇠약은 마을의 파멸의 원인이 되어갔다.
그러나 세계화의 결과는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색되었다. 독일에서 은퇴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지역민이 유입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건설된 “독일 마을”은 지역 관광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인의 생각이었다.
남해에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의 호기심은 독일의 건물들과 정원 그리고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들의 정원에 무차별한 카메라 세례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 뒤에 숨은 이야기
1960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동안 독일에서는 간호사와 광부의 근로자 수가 점자 감소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고 경제적인 지원국을 찾고 있었지만 당시 군사정권은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빠른 경제적 발전을 위해 계약을 체결하여 경제발전의 대가로 한국의 노동자를 파견하기로 약속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만 명의 간호사와 팔 천명의 광부들이 독일에 파견되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독일에 정착하였고 일부는 독일인과 결혼하여 현지에 남았다. 그들이 독일의 첫 이민 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평범하게 독일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몇몇은 자신들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독일인 남편들과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돌아온 새로운 고향은, 한국의 풍경을 배경으로 건립된 독일마을 이란 곳이었고 자신들의 두 고향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 Production Note ]
조성형 감독이 전하는 그리움의 종착역
<그리움의 종착역>을 하게 된 이유
2005년에 첫 장편 기록영화 <풀 메탈 빌리지>를 만들면서 독일 온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촬영 중 만난 독일 시골마을 사람들에게서 어릴 적 고향 부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독일 사회의 변방에서 항상 낯설어 하는 이방인의 삶을 살다가 시골 사람들의 따뜻하고 끈끈한 정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자, 갑자기 고향에 온 거 같았다. 게다가 영화가 극장에서 대성공을 하면서부터는 차별 받는 외국인이 아니라 각광받는 "한국 출신 여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간 독일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하도 힘들고 바쁘게 살다 보니 향수병에 시달린 여유도 본인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독일 언론들이 한국 감독, 한국 감독 하면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또, 드디어 독일 사회가 나를 정말로 받아 들이구나, 독일이 이제 내 보금자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러다가 내 옛 고향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이상하게 내 고향,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생겨났고 정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골목길도 보고 싶고 바다 내음도 그립고 갈매기 소리도 듣고 싶고...
“집에 가야겠다”는 결정이 이 영화를 만드는 결정으로 발전되었다.
향수병에 시달리는 영화감독이 향수를 달랠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고향 방문이었다. 거장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모티프로 한 4 계절을 영화를 만들겠다며 독일 영화 진흥금을 받아 한국을 방문해 가며 <그리움의 종착역>을 만들게 되었다.
또 다른 동기는 재독 동포사회의 1 세대를 이루는 간호원과 광부들의 삶을 독일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60, 70년대에 한국에서도 많은 인력이 독일로 온 것을 잘 모르고 있다. 독일 사회에서 조용히 살고 계신 우리 교포님들이 극장에서나마 완전한 주인공이 되어 관심의 초점이 한번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독일 사회는 이미 이민 사회가 되어 이주자들이 아주 많다. 태어난 나라에서 삶을 마감하기보다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향은 무엇인가, 옛 고향과 새 고향의 두 개의 고향을 가질 수는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이 영화를 통해 천착해 보고 싶었다.
국내 상영에 대한 감회에 대하여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너무도 자랑스러워하신다. 영화제에 초청 받은 것 만으로도 영광인데 개막작으로 선정되어서 엄청난 효도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독일로 훌쩍 떠난 딸을 걱정하셨는데, 그 딸이 영화까지 한다고 하니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그런데 ‘G20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그리움의 종착역>이 선정되었다고 하니 굉장히 기뻐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국내상영을 계기로 한국과 힘들고 꼬인 관계를 좀 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1985년 대학교에 입학해 데모가 한창이던 신촌에서 대학을 다녀서 가장 예민한 시절을 데모의 중심 공간에서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토록 힘들게 대학을 다닌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다양성과 선택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집단성과 획일성에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데모에 참가하든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든지 양자택일 밖에 없었다. 나라와 사회를 생각하며 동시에 자신의 꿈도 키워가며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리움의 종착역> 주인공인 우춘자씨처럼 이를 악 물고 열심히 살아오다, 이제 영화가 한국에서도 상영을 하게 되었으니 금의환향하는 격이 된 것 같다 감개무량하다.
[ Character & Cast ]
<그리움의 종착역>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년의 세 부부.
한국에서 파독 간호사로 간 ‘우춘자’, ‘ 영숙 타이스’, ‘우자 슈트라우스 킴’이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와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독일에서의 생활 등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또, 그녀들을 따라 노년에 평생을 살아 온 독일을 떠나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생활하는 독일인 ‘빌리 엥엘프리트’, ‘아르민 타이스’, ‘루트비히 슈트라우스 킴’의 한국 적응기와 솔직한 독일 마을 생활기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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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조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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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주)에스와이코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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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에스와이코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