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어디일까.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오래된 고성처럼 생겼다. 도대체 무슨 병을 낫게 하는 병원인지는 더 알기 어렵다. 장난기 넘치고 나사가 반쯤은 풀린 것 같은 의사 선생과 무서운 왈패 같은 간호사가 있는 이곳에 몇명의 환자들이 있다. 그들의 병명은 모르긴 해도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정신병의 유약한 남자(쓰마부키 사토시). 얼굴에 난 상처만으로도 과거를 짐작하게 되는 험악한 남자. <메종 드 히미코>에나 나올 법한 나이든 게이. 온몸에 항시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남자. 시도 때도 없이 농담으로 일관하는 장난기 많은 남자. 그리고 이제 이 병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한 사람과 가장 나이 어린 한 사람을 소개할 차례다. 자수성가하여 회사를 세우고 큰 돈을 벌었으나 몸이 쇠약해져 이곳으로 오게 된, 그 때문에 갑갑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성질을 부려 누구도 상대하려 들지 않는 괴팍한 노인 오누키(야쿠쇼 고지). 사고로 부모를 잃은 다음 기억상실증에 걸려 하루의 기억만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매일 같은 동화책 <개구리왕자와 가재마왕>을 읽는 불쌍한 소녀 파코(아야카 윌슨). 처음에는 파코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오누키였지만, 그는 파코의 착한 마음을 알게 되고 이 불쌍한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개구리왕자와 가재마왕>을 연극으로 만들어 상연하기로 마음먹고 병원 환자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씩 연극의 주·조연을 맡게 된다.
원작자 고토 히로히토는 “만약 죽더라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하루밖에 기억할 수 없는 소녀의 마음속에 남으려고 한 노인은 이 영화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라며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답게 따뜻한 조언을 보내고 있다. 그가 연극으로 만든 원작을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연출한 나카시마 데쓰야가 영화로 다시 만든 것이며 영화에서 환자들은 동명의 연극을 상연한다. 대배우 야쿠쇼 고지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머리 모양을 하고 별난 표정을 지어가며 못되고 심술궂은 늙은이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으며, 유망한 젊은 배우들, 쓰마부키 사토시, 쓰지야 안나(<불량공주 모모코>), 가세 료(<구구는 고양이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심지어 그들이 그들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분장을 한 다음 유쾌한 몸짓으로 화면을 뛰어 다니고 있다.
나카시마 데쓰야에게 극의 핍진성이나 정통적인 연기 방식은 관심거리가 아닌 것 같다. 그는 인물의 최소한의 배경과 결과를 정한 다음 나머지 것은 의상과 분장과 코믹한 액션으로 강조한다. 이번에는 좀더 대상 연령층이 낮아진 것 같지만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도 단단한 이야기나 정제된 어떤 연기와 연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일본의 동시대 영화를 대표하는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정작 그들이 그들인지 아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입히고 분장시킨 코스튬 플레이(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의상과 분장으로 자신을 전시하는 놀이)의 한 종류로 이 영화를 즐기는 건 가능하다. 또는 파코를 위한 연극을 준비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코믹한 연극을 한편 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영화 속 연극이 시작되는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부터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이 뒤섞이며 오간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에 애정이 많은 작품이며 연극을 영화로 찍기, 그것도 대책없이 밝은 방식으로 찍어서 밀어붙이기, 에 강조점이 있다. 아무것도 제어되는 것은 없다. 밝게 과장하고 유쾌하게 허풍떨어서 동화의 마음까지 닿아보는 것이 이 영화의 본령인 것 같다. 영화의 완성도는 전작인 <불량공주 모모코>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보다 나아간 것이 아니지만, 옷을 보고 인물을 구경하고 그림을 느끼고 노래를 듣다보면 정신없이 시끄러워도 귀여운 아이와 잠시 논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순진한 어른들과 아직 나빠지지 않은 아이들이 보면 좋아할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