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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으로 겪게 되는 어린 소녀의 혼란 <유키와 니나>
이화정 2010-07-14

부모의 이혼으로 겪게 되는 어린 소녀의 혼란. <유키와 니나>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전작 <퍼펙트 커플>의 에필로그 같은 이야기다. 결혼 15년 만에 이혼 직전에 이른 부부를 통해 이별을 앞둔 인간들의 심리를 파헤친 그는 이제 <유키와 니나>를 통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원치 않았지만, 친구와 이별을 겪게 되고 환경의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10살 소녀의 내면을 따라가기로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결국 <듀오>나 <M/other>에서부터 그가 집요하게 고수해온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점까지 거슬러 연결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퍼펙트 커플>을 연출하던 2004년, 남자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던 프랑스 배우 이폴라트 지라르도가 이 영화의 공동연출로 참여했다. 오랜 연기자 생활에도 본업 외에 연출에 뜻을 두었던 배우가 이폴라트였다면, 현장에서 짜여진 시나리오 대신 배우들에게 상황만 알려준 뒤 즉흥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듀오>나 <H 스토리> 등을 통해 이미 스와 감독의 연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둘 모두가 그러니 제대로 짝을 만난 셈이다. 게다가 <퍼펙트 커플>의 연출 당시 일본 문화청과 프랑스 아르테 방송국의 지원제도로 프랑스 체류를 했던 스와 감독에게 프랑스 일본 합작 프로젝트는 영화를 만드는 데 지극히 손쉬운 접근 통로였음이 분명하다.

영화는 일본계 프랑스인인 소녀 유키에게 닥친 변화에서 시작된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아빠와 헤어질 것이라고 하며, 그래서 유키에게 함께 엄마의 고향인 일본으로 가야 한다고 전한다. 사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이라는 커다란 주제보다 유키에게 먼저 와닿는 현실적인 고민은 단짝 친구 니나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걸 막고자 아이들만의 궁리로 엄마와 아빠의 헝클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노력도 해본다. 그러나 부모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안 어느 날. 유키는 니나의 제안으로 낯선 곳을 향해 가출한다. 여행 중, 우연히 숲을 만난 유키는 이제 고민이 없는 숲에서 살겠노라 결심한다.

부모의 이혼 뒤 겪는 변화라는 점에서 꽤 또렷한 플롯이 전개되는 것 같지만, 사실 <유키와 니나>는 역시 스와 감독의 전작처럼 고정된 시나리오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목은 ‘유키와 니나’지만 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유키 한명에게로 모두 모아진다. ‘이혼’이라는 사건만을 던져준 뒤, 영화는 결국 유키의 결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즉흥적으로 따르기로 한 듯하다. 스와 감독은 자신에게 영화란 ‘사건 자체를 담기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란 말이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실천된다. 엄마의 이혼 선언 이후부터는 대체적으로 유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빼먹지 않고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전반부는 거의 대중적인 영화 방식에서 벗어난 프랑스 아트하우스영화의 색채를 띤다. 가출을 하기 전 유키가 겪게 되는 심리적 타격을 고스란히 옮겨놓는 이 과정은 스와 감독의 영화에서 보아온 잘 정돈된 미장센을 고수한다. <유키와 니나>의 흥밋거리는 이 절반의 과정이 전개된 이후다. 숲속을 자꾸만 헤집고 들어간 뒤 소녀 유키가 맞닥뜨리는 세상은 놀랍게도 현실이 아닌 판타지, 한편의 동화이자 신화의 재연이다. 비밀을 간직한 숲의 판타지는 마치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시킨다. 유키가 감내해야 하는 내면은 다른 장치없이 곧, 위험하고 불온하며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숲, 그 상징을 통해서 곧바로 대체된다. 덕분에 이런 플롯의 영화가 소녀들의 여린 감수성에 의지해, 해맑은 동심을 전해주는 오류를 피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강점이다. 이 과정에서 스와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는 지속된다. 심지어, 유키가 우연히 들른 일본 집에서 유키와 친구들의 놀이 시간을 연출한 롱테이크 장면은 불필요하게 길어 보일 지경이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비전문 배우 노에 삼피가 연기한 유키는 꽤 인상적이다. 아이의 눈망울을 좇는 영화들과 다른 촬영방식 때문에 얼핏 보면, 소녀에게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상실과 이별로 인한 심리의 변화를 드러내는 무심한 연기 방식은 <유키와 니나>의 두 감독들이 원했을 정확히 그 모습의 유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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