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재료는 확신과 속도였다. 콘티가 마무리되면 촬영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촬영이 끝나면 편집도 완성된다. 과연 <이끼>에서도 그랬을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끼>를 촬영하는 동안 강우석 감독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촬영장에 가기를 두려워했으며 매일 밤 술기운에 기대 잠들었다고 한다. 강우석 감독과 함께했던 스탭들도 말했다. 우리 감독님이 달라졌어요.
정선영 프로듀서/ <강철중: 공공의 적1-1> <한반도> <공공의 적2> <실미도> <이끼> 현장에서는 유독 안경을 자주 쓰시더라. 성질이 급해 가끔 안경을 주위에 던지는 통에 목에 걸 수 있도록 안경줄을 해드렸는데, 결국 그마저도 5번이나 끊어졌다. (웃음) 입버릇처럼 한 말은 “머리 아프다. 두통약 없냐?”였다. 온전하게 잔 적도 없고 두통약을 장복했다. 원래 촬영을 하든 하지 않든 밤에는 일을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계속 콘티와 원작 만화를 붙잡고 있었다. 콘티를 짜는 모습이 가장 신기했다. 거의 일필휘지로 콘티를 구성했었는데, 이번에는 해국이 처음 마을에 들어가는 장면만 5번을 수정했다. ‘레디 고!’를 외치는 순간까지 재고의 연속이었다.
안태준 조감독/ <강철중: 공공의 적1-1> <강철중: 공공의 적1-1>(이하 <강철중>)을 찍을 때는 감독이 아닌 듯한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이끼> 때는 현장을 피하려고 하시더라. (웃음) 스탭들이 보기에는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었다. <강철중> 때는 주로 한 말이 이거 맞다, 이거다, 이렇게 가면 된다, 야, 그거 아니야, 이거야였다. <이끼> 때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우리가 써서 결과물을 뽑아내면 “야, 이거 아니다”라면서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또 그에 따라 일주일 정도 작업을 해놓으면 “이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런 게 반복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지금 촬영 중인 <글러브>에서는 예전의 기운으로 돌아오신 것 같다. 아직 최종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지만, 무조건 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시다.
이태훈 미술감독/ <강철중: 공공의 적1-1> <한반도> <공공의 적2> <강철중>이나 <공공의 적2> 때는 세트가 70~80% 정도 완성됐을 때 들어가서 촬영하셨다. 이번에는 마을이 80% 정도 완성됐을 때 일일이 동선을 짚으셨다. 전작보다 미술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많이 늘렸다. <이끼>의 다음 작품인 <글러브>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유독 많이 늙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깨에는 <이끼>가 있는 듯 보인다. 유선씨를 영지라 부르고, (정)재영이 형이 인상을 쓰자 “이장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글러브>는 미술 면에서 <이끼>만큼 많은 주문을 하셨다. 주인공 상만의 숙소에서 야구장이 보이고 마당은 넓어야 하고, 복도는 길어야 한다는 등등. 구체적인 주문들을 지키기 위해 나도 고민하는 중이다.
고임표 편집기사/ <강철중: 공공의 적1-1> <한반도> <공공의 적2> <실미도> <공공의 적> 강우석 감독은 워낙 빠른 편집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예전에는 내가 나름 빠르게 편집을 해놓으면, 편집실에 와서 더 잘랐다. 이번에는 호흡을 길게 주는 편집을 했더니, 호흡이 짧다고 그러더라. 내가 2초만 더 늘리겠다고 하면, 3초를 붙이라는 식이었다. 편집실에 오는 횟수가 상당히 늘어난 것도 다른 점이다. 전작 같으면 와서 보고 몇 군데 수정할 것만 이야기해서 고치고 나면 끝이었다. 이번에는 계속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고 또 수정했다. 그만큼 <이끼>는 다양한 버전을 갖고 있다. 거의 2시간50분에서, 55분, 다시 40분으로 갔다가 또 45분, 그리고 다시 35분. 고민이 많았던 만큼 다른 화법의 강우석표 영화가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