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영화에 필요한 음악을 따로 만들고, 영화 상영 이후 공연에 쓰이는 음악은 동시녹음 소스라는 부산물을 가지고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다. 공연에 쓰일 음악에도 역시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느낌이 들어갈 거다. 이를테면 윤성호 감독은 말이 많고 언어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러니 공연에서 나올 음악도 그게 반영되지 않을까.

장영규는 장영규다. 장영규의 이름을 더이상 영화음악집단 ‘복숭아 프로젝트’나 밴드 ‘어어부프로젝트’와 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금 한국 영화음악의 최선전에 서 있는 영화음악가다. 그럼에도 장영규의 이름이 낯설다면 그가 작업한 리스트를 한번 되새겨보자. <미쓰 홍당무> <반칙왕> <여고괴담4: 목소리> <달콤한 인생> <복수는 나의 것>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어어부프로젝트’라는 이상한 밴드의 멤버였던 그가 <반칙왕> <해안선>의 O.S.T로 영화음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혹은 충무로는) 예상했다. 아방가르드한 실험음악가의 충무로 나들이라고. 물론 예상은 틀렸다.

지난 한해 무려 다섯편(<파주> <전우치> <십억> <거북이 달린다> <여배우들>)의 영화를 작업한 장영규는 오는 6월24일부터 26일까지 LIG아트홀에서 재미있는 공연을 하나 연다. 영화감독 윤성호, 박홍준과 함께하는 <영화음악∞음악영화>라는 공연이다. 장영규는 윤성호와 박홍준이 만든 단편영화의 음악을 만드는 동시에 그 영화들의 소스를 가지고 또 다른 즉흥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공연에서는 각 영화의 상영과 즉흥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대체 어떤 공연이 될지 상상이 안 간다고? 우리 역시 그렇다.

-<영화음악∞음악영화>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LIG아트홀의 제의로 앞으로 2년간 함께 작업하게 됐다. 뭘 한번 해볼까 고민하던 중에 <씨네21> 남다은 평론가를 만났는데, 영화와 만날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 남다은 평론가가 인디포럼과 연결을 시켜줬고 윤성호, 박홍준 감독을 만났다.

-윤성호, 박홍준 감독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인가.

=박홍준 감독과는 그가 한예종 다니던 시절 단편영화를 하면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윤성호 감독은 <은하해방전선>과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단편들을 보고 나서 처음 만났다. 영화를 보면서 수다쟁이일 것 같았는데 역시나…. (웃음)

-음악가보다는 두 감독이 더 막막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뭐, 선이 그어진 작업이 아니라 뭘 해도 괜찮은 작업이니까…. 인디포럼에서는 지금 당장 영화를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 두 감독을 붙여준 거다. 게다가 제작비도 LIG아트홀에서 지원하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기회였을 거다.

-보도자료를 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 장영규는 시놉시스라는 매개체만 통해 ‘우연’의 음악을 완성하고, 이후 영화제작에 들어간 감독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연’의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우연과 필연은 무슨 의미인가.

=그건… 뭐라도 보도자료에 써야 해서 쓴 거라 크게 중요한 건 아니고. (웃음) 일단은 두 감독과 영화를 작업하는 게 먼저였다. 일단 두 감독이 찍은 영화에 들어간 동시녹음 소스를 모두 받는다. 그걸로 샘플링을 해서 음악을 만든다. 그러니까 영화에는 영화에 필요한 음악을 따로 만들고, 영화 상영 이후 공연에 쓰이는 음악은 동시녹음 소스라는 부산물을 가지고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다. 공연에 쓰일 음악에도 역시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느낌이 들어갈 거다. 이를테면 윤성호 감독은 말이 많고 언어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러니 공연에서 나올 음악도 그게 반영되지 않을까.

-이미 만들어진 영화음악과 공연에서 나오게 될 음악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올 수도 있겠다.

=지금 공연음악은 해나가고 있는 과정인데, 공연은 사실 15분가량의 즉흥음악일 것 같다. 영화의 소스로 나, 달파란의 강기영, 또 다른 작곡가, 이렇게 세명이 각자 다른 음악을 만든 뒤 한 공간에서 공연을 통해 마구 뒤섞는 방식이 될 거다.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웃음) 재미있는 즉흥공연일 거다.

-이번 프로젝트 말고 보통 영화음악을 할 때도 시나리오나 감독과의 대화 같은 소스를 이용해서 미리 작업을 시작하지 않나.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고 느끼는 경우는 없었나.

=많다. (웃음) 작업 시작부터 촬영 전까지 시간이 많은 경우에는 감독들과 시나리오를 읽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미술 컨셉도 미리 들은 뒤 데모를 만든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범위 안에서 작업하겠다고 감독과 합의를 한다. 음악이란 게 열어두면 끝도 없이 넓어지니까 선을 정하는 거다. 그럼 감독도 미리 음악을 알고 촬영과 편집을 진행하게 되니까, 마지막에 음악을 영상에 넣으면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못하는 경우… 음악이 딴 데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말로는 다 동의가 됐는데 막상 붙여보니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선을 잘 긋고 들어간 영화는 뭐가 있나.

=<4인용 식탁>도 좋았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데모로 만든 곡이 끝까지 살아남아 영화에 잘 쓰인 경우다. 한국은 감독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감독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최근 작업한 작품이 <파주>와 <전우치>다. 하나는 아트영화, 하나는 상업적 블록버스터다. 시작부터 음악적인 접근을 다르게 설정하고 가나.

=그 접근이라는 게 사실… 시나리오만 봐도 읽힌다. (웃음)

-좀더 개인적인 애정이 들어가는 건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가.

=예전에는 그런 게 있었는데 요즘은 희미해졌다. 예전에는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호오가 있었지만, 이젠 잘 맞는 감독을 만나는 게 역시…. (웃음)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감독들은 수정할 일도 없이 이야기가 잘 통하고,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도 내가 만드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별 이야기가 없었고. (웃음) <파주>의 경우는 노선을 한번 바꿨다. 처음 <파주>의 영상을 보고 진지한 영화로 접근했다. 그런데 제작사인 명필름은 좀더 정서적으로 관객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대중적인 한계가 그 정도라…. (웃음) 완성된 영화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몇개 있다. 인도 여행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파트로 찾아오는 장면의 음악도 영화와 잘 맞았던 것 같고. 처음 의도했던 음악보다는 대중적으로 바뀐 게 사실인데, 그렇게 조율했던 게 영화적으로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완성한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좀더 나갔어야 했다고 생각한 영화는 없나

=조민호 감독과 작업한 영화들. (웃음) 조민호 감독은 평소에 술도 잘 먹고 노는 친구다. 그러다가 <강적>을 함께하게 됐는데… 너무 많이 부딪치는 거다. 다르게 갔으면 싶은 게 많았는데 조민호 감독이 끝까지 고집을…. (웃음) 영화는 감독이 딱 잡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진다.

-요즘 조민호 감독과의 사이는 어떤가.

=사이는 여전히 좋다. 그래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강적>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요구를 너무 해서 다 들어주다보니 음악이 산으로 가더라. <십억> 때는 예전처럼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조금 더 우겼다. 다음에 같이 하면 좀더 우겨야지. (웃음)

-이때 사진 촬영을 하던 손홍주 사진부장이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제 딸이 영화음악가가 되고 싶다는데 그럼 작곡과를 가는 게 좋을까요?”

=작곡과를 가는 게 제일 좋다. 기초가 있으면 역시 끝까지 버티기가 좋으니까. 지금 영화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작곡과 안 나온 사람이 많은데 원래 관심도 있고 작곡과도 나온 사람이 가장 오래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감독님도 작곡과 나왔나

=중국어 전공했다. (웃음)

-대체 왜 중국어를….

=86년 대학 들어갈 땐 음악을 취미로 하다가 갈 수 있는 과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은 가야 했고, 특별히 가고 싶은 과는 없었고, 그래서 부모님이 정해주신 과로 그냥 들어갔다. 앞으로 유망해질 과라고 하셔서. (웃음) 중·고등학생 때부터 밴드를 했는데 대학 가서는 공부를 한번 해볼까 싶었다. 1년 중국어 공부하니까 영 안 맞더라.

-그래도 중국어는 할 줄 아나.

=집 찾고 밥 먹는 정도. (웃음) 올해 상하이 갔다가 술에 취해 택시타고 낯선 장소를 찾아가는데, 술 마시니까 중국어가 술술 나오더라. 평소에는 거의 못하는데. (웃음)

-‘복숭아 프로젝트’는 요즘 어떤가. ‘복숭아’라는 이름으로 영화음악 섭외가 들어오나.

=다들 자주 만난다. 근데 영화사가 ‘이번에는 복숭아와 함께 작업하겠어!’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감독이 나든 달파란이든 방준석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반에는 넷이 같이 작업하곤 했는데 그런 공동작업이 효율이 좀 별로더라. 어떤 영화는 네 가지 색깔이 들어가는 게 과잉일 때도 있고. 그래서 둘씩 짝지어서 작업하는 게 결과가 좋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편이다. 나는 주로 달파란과 방준석은 이병훈과.

-그런 콤비네이션은 음악적 죽이 잘 맞기 때문인가

=꼭 그런 건 아니고. 애초에 그렇게 짝을 지어서 작업을 하다보니 시간 조율상 계속 그렇게 갈 수밖에 없게 되어서. (웃음)

-단편이라도 직접 영화를 만들어서 음악을 자유롭게 입혀보고 싶은 욕심이 날 때는 없나.

=달파란도 그렇고, 주변에서는 자기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들 한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랬는데…. (웃음) 이번에 인디포럼영화제에 가서 영화들을 보면서 짧은 단편이라면 가능도 하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더라.

-이제 곧 들어가는 영화음악은 뭐가 있나

=현재 촬영 중인 나홍진 감독의 <황해>, 신인 송예섭 감독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 그리고 공동으로 음악작업을 하는 스릴러영화 <헤드>가 있다.

--<황해>는 영화를 좀 봤나. 아니면 소스라도

=못 봤다. 절대로 소스를 밖으로 안 돌린다더라.

-기자들도 현장에 절대 못 오게 하더라. 그래도 감독은 만났을 텐데, 음악적인 요구가 뭐였나.

=감독을… 십분밖에 못 만났다. 시나리오 읽고 어땠냐기에 액션도 많은 영화지만 결국 영화에서 끌고 나가야 하는 건 정서인데, 음악 역시 정서를 가져갈 수 있는 음악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액션장르로서의 음악보다는 그게 좋겠다고 했더니 감독도 그렇게 생각한다더라. 대화는 그렇게 십분 만에 끝났다. (웃음)

-영화에서 끌고 나가야 할 정서라니, <황해>는 어떤 정서인가

=액션이 굉장히 많고 또 센 영화다. 그런데 그게 주가 아닌 것 같더라. 그렇게 포장하면 영화의 색깔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현장을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계속 뭔가가 잘 안 맞더라. 옌볜 촬영 때는 도착하자마자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그냥 오고, 얼마 전엔 안산에 서 촬영한다기에 가봤더니 그날은 촬영취소. (웃음)

-현장을 그렇게 종종 가는 편인가

=별로 안 좋아한다. 가면 할 일도 없고 몸둘 바도 모르겠다. 다들 열심히 작업 중인데 모니터만 보고 앉아 있기도 그렇고, 또 앉아 있다가 배우들 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웃음) 사실 현장에 가는 게 작업에 크게 도움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편집본을 보면 느낌이 오는데 현장에 가면 감이 안 온다. 이렇게 힘들 게 불합리적으로 일을 하는구나, 힘들겠다, 뭐 이런 생각만 들고. (웃음) 그래도 현장에 가보기는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감독이 오라기에 중국에도 갔다. 악기를 다 싸와서 중국에서 작업을 하라기에 컴퓨터까지 싸들고 사막으로 갔는데… 현장엔 못 나가고 호텔방에 처박혀서 영상 넘겨주면 작업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김지운 감독이 좀 불안했던지 현지에서 바로 음악적인 느낌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 호텔방에서 작업한 음악이 영화에 다 들어갔다.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정말 천재적인 삽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아니라 감독이 꽂혀서…. (웃음) 잘 어울리긴 하는데 <킬 빌>이 연상되니까 나는 반대했다. 그런데 <킬 빌>과는 들어간 장면의 느낌도 다르고 화면하고도 아주 잘 맞고, 사실 김지운 감독이 그 노래를 틀어놓고 편집하는 바람에 빼려도 뺄 수가…. (웃음)

-어어부프로젝트의 앨범은 대체 언제쯤 나올 예정인가. 2집 나온 게 이미 10년이 다 돼간다.

=이곳 LIG아트홀에서 10월13일과 14일에 새 앨범 발매 공연을 한다. 그때 나올 거다. 그동안 백현진도 바쁘고 나도 바빠서 해야 한다 하면서도, 그런데 또 의뢰받은 영화음악이 우선순위라 뒷전으로 밀리고 밀리다가, 올해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작업하러 중국에 갔다 왔다.

-계속 중국에 가는 걸 보니 중국과 인연이 많다. 중국어과 출신이라 말도 통할 테고

=거기 옌볜이어서 다 한국말 한다. (웃음)

-그런가…. 하여간 어떤 음악이 나올지 궁금하다. 지난 앨범과의 틈이 하도 길어서

=부담 아닌 부담이 조금 있긴 하다. 게다가 똑같은 곡을 몇년째 공연하다보니 너무 지겨워서 못해먹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난 앨범과 바뀌긴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드럼, 기타, 베이스, 이런 밴드 음악은 아닐 것 같다.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웃음)

-어어부 프로젝트 2집 이후 상업적인 영화음악가로 성공했고, 또 보컬인 백현진도 어어부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솔로앨범을 냈다. 시간에 따른 두 사람의 변화가 새 앨범에도 영향을 줄까.

=우선은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다른 게 뭐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조금 달라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