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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올해도 영화산업과 따로 놀았군

아피차퐁에 황금종려상 안겨준 칸영화제 수상결과에 이의 제기

올해만큼 영화제와 영화산업간의 괴리가 크게 느껴진 적은 없다. 올해 유럽의 3대 영화제(베를린, 칸, 베니스) 중 베를린과 칸영화제의 최고상은 극장에 걸릴 일이 없는, 엘리트 감독이 만든 작은 규모의 영화에 돌아갔다.

지난 2월 베를린의 금곰상은 어린 소년과 양봉을 하는 그의 농부 아버지에 관한 지루하고 느린 영화인 터키 감독 세미 카플라노글루의 <허니>에 돌아갔다. 5월의 칸영화제는 황금종려상을 타이 감독 아핏차퐁 ‘조’ 위라세타쿤(‘조’는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애칭-편집자)의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에 넘겨주었다. 죽어가는 남자와 불교 스타일의 영혼의 환생을 그린, 달리 묘사할 길 없는 지루하고 느린 영화다.

칸에서 수상 소식이 발표될 때 위라세타쿤의 지지자들은 큰 환호성을 질렀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올해 칸의 경쟁부문 라인업이 약하기는 했지만, 특수한 관객층과 작은 규모의 지지자들만 좋아하는 (그나마 그 대부분이 칸에 와 있는 듯한)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최고상을 주어야할 만큼 약한 것은 아니었다(그의 전작으로는 <친애하는 당신> <열대병> <징후와 세기>가 있다). 심사위원 중 그 영화를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한 이는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스였다고 한다. 한편 가장 반대한 사람은 미국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와 심사위원장 팀 버튼이었다고 한다. 팀 버튼은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그 결정이 만장일치라고 하지 않았다.

칸영화제는 위라세타쿤을 ‘발견’하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는 2000년 밴쿠버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그 뒤 2002년의 두 번째 장편영화 <친애하는 당신>부터 그는 칸영화제에 ‘입양’됐다. 한편 칸영화제는 2003년 도쿄와 베를린에서 상영된 그의 싸구려 같은 상업 희극물인 <아이언 푸씨의 모험>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는 원래 올해 칸 경쟁작으로 선정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칸 감독주간에 초대됐다가 마지막에 가서 불가사의하게, 영화들이 더 필요했던 공식 경쟁부문으로 옮겨졌다. 전형적으로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는 유럽 국가- 영국, 독일, 스페인과 유러피안 제작 펀드- 가 투자했고, 이들은 수상 이후 며칠 동안 언론을 통해 수상을 자축했다. 먼저 네덜란드의 허버트 발스 펀드, 다음에는 독일 베를린영화제의 일부인 월드 시네마 펀드. 실제 영화에는 불가해하고 간략하게 언급된 현재 타이의 정치적 상황 덕분에 서구는 다시 한번 자국의 정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작은 아시아 영화감독의 지지자로 자처할 기회를 얻었다.

팀 버튼이 이끈 심사위원단이 내린 어이없는 결정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창동의 <>가 상을 받는다면 그건 시나리오상이 아니라 윤정희의 연기에 주어야 했다. 그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창동의 다른 시나리오처럼 전문적인 시나리오작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최고 남자배우상과 최고 감독상 같은 다른 수상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영화제는 최고 전성기의 영화제로 결코 기억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심사위원들의 결정은, 불행하게도, 아주 짧을지라도 영화사에 그 흔적을 남긴다.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올해 심사위원단의 결정은 칸의 위세를 더욱 축소시킬 뿐이다. 이것은 영화를 위해서나 영화산업을 위해서나 별로 좋을 게 없다. 같은 건물의 중심부에서 열린 필름마켓에서는 매시간 비현실적이 아닌 진짜 결정들이 내려졌다. 필름마켓은 영화제와는 완전히 딴세상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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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