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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미스터 다아시로만 보이세요?
장영엽 2010-06-03

우리가 콜린 퍼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오만과 편견

‘미스터 다아시’ 콜린 퍼스가 <싱글맨>으로 돌아왔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오랜 동성 연인을 잃고 상심에 빠진 대학교수 조지 팔코너를 연기한다. 인생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자의 희로애락을 얼굴 표정만으로 나타내는 퍼스의 연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난다. 이에 매료된 평단은 앞다투어 그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베니스영화제는 콜린 퍼스에게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여했고, 영국의 아카데미라 부르는 BAFTA 역시 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겼다. 2009년 콜린 퍼스의 갑작스러운 비상에는 제인 오스틴과 <오만과 편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한 아이콘의 비장한 각오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까지 얼마나 콜린 퍼스를 오해했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얼마나 모질게 자신을 단련해왔는가. <싱글맨>의 개봉을 앞두고 네 가지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유추해보았다.

편견1. 콜린 퍼스는 실제로 미스터 다아시와 닮았다.

<오만과 편견>(1995, TV)

해명1. 인정한다. 어떤 사람이 대명사의 지위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콜린 퍼스가 1995년 <BBC> TV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피츠윌리엄 다아시로 출연한 이래, ‘미스터 다아시’란 이름은 15년 동안 한번도 콜린 퍼스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이는 퍼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TV영화 <포클랜드의 생과 사>(Tumbledown, 1988), 영화 <발몽>(1989),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2009) 등 따로 기억해야 할 작품이 있음에도 콜린 퍼스는 언제나 만인의 ‘미스터 다아시’였다. 빳빳한 구레나룻과 굳게 다문 입술, 융통성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제 여자에겐 영혼이라도 내줄 듯 충성스럽고 언제까지라도 제자리를 지킬 것만 같은 완고한 인상은 관객이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를 저지르도록 부추긴다. 캐릭터와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다. 여기엔 캐릭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또 다른 캐릭터를 재창조한 사람도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원작자 헬렌 필딩이다. 그녀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를 열렬히 지지했고, 그를 떠올리며 비슷한 이름의 캐릭터 ‘마크 다아시’를 만들어냈다. 2001년 퍼스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크 다아시로 돌아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인물은 현실에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게다가 내 나이 또래의 남자는(그는 올해로 50살이 되었다) 소설에서처럼 스물한살의 소녀에게 그렇게 실실대지 않는다.” 음, 정말 그런가? 여자 나이 스물한살이라면 묻지도 않고 달려갈 한 다스의 남자들이 눈에 선하지만…. 이 다아시다운 대답은 제쳐두고 콜린 퍼스의 진짜 해명을 듣기로 하자. “이 세상에 미스터 다아시 같은 사람이 있을까. 난 그처럼 자기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하는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콜린 퍼스는 캐릭터와 거리를 두면서도 ‘다아시’라는 명칭이 평생 스스로를 따라다닐 것임을 인정한다. “당장 아내부터 그렇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 미스터 다아시가 내 옆에 누워 있다니! (중략) 그건 당신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떨쳐낼 수 없는 학창 시절 별명 같은 거다.” 내키지 않지만,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인정해버리자는 쿨함. 미스터 다아시와 닮았다는 편견을 절반은 믿을 수밖에 없다.

편견2. 콜린 퍼스는 <싱글맨>의 동성애 연기가 부담스러웠다.

해명2. 사례 하나. <맘마미아!>(2008)에서 소피의 세 아빠 중 한명으로 출연한 콜린 퍼스는 영화의 말미에 게이임을 커밍아웃한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 주디 크레이머는 퍼스의 캐릭터를 위해 그리스 꽃청년의 품에 안긴 채 결말을 맞는 장면을 준비했지만, 편집과정에서 냉정하게 이 장면을 들어내야 했다. 여성 관객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싱글맨>(2010)

콜린 퍼스는 주요 작품에서 누군가의 연인이었고, 그 연인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오만과 편견>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다아시 캐릭터를 제외하더라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외국어를 배우는 <러브 액츄얼리>의 제이미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하녀와 사랑에 빠지는 화가 베르메르가 있었고, 부모님의 날선 시선에서 아내를 지키는 <이지 버츄>의 영국 신사 휘태커가 있었다. 많은 감독은 귀족적인 외모를 가진데다 전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로맨틱한 남성 캐릭터(미스터 다아시)를 별명으로 둔 남자를 기꺼이 여성 관객에게 바칠 준비가 되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톰 포드는 달랐다. 그는 이 지적이고 낭만적 이미지의 영국 신사에게서 동성 연인을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남겨진 남자의 공허함을 끌어내길 원했다. <싱글맨>에서 대학교수 조지 팔코너로 분한 콜린 퍼스가 그리워하는 건 과거이자, 연인이자, ‘남자’다. ‘전세계 수백만 여성의 연인’이라는 자신의 오랜 이미지를 벗어난다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나는 <싱글맨>을 촬영하는 도중에도 조지라는 캐릭터를 ‘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콜린 퍼스는 이 영화가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상실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어른의 감정’에 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이 연인을 이성애자 연인으로 교체한다 해도, 영화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콜린 퍼스는 말한다. “나는 내가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싱글맨> 속 조지의 대사처럼 퍼스는 자신이 어떤 요소에 집중하고 어떤 요소를 참고로 삼아야 할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널리 알려진 바는 아니지만, 콜린 퍼스는 꽤 여러 번 동성애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의 데뷔작은 루퍼트 에버렛과 함께 미청년 게이 커플로 출연했던 <어나더 컨트리>(1984)다. 2000년작 <릴레이티브 벨류스>에서 퍼스는 위트 넘치는 게이를 연기했으며, 앞서 언급한 <맘마미아!> 또한 직접적인 연기는 없었지만 설정 자체는 동성애자였다. 최근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퍼스가 맡은 헨리 워튼 경 또한 도리언에게 환락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미묘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하다.

편견3. 콜린 퍼스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9)

해명3. 캐스팅 디렉터의 노트에서 콜린 퍼스의 이름을 찾는다면, 그는 영락없이 ‘전형적 영국인’ 항목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퍼스는 6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영국인이 연기해볼 만한 영국인 캐릭터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예를 들어 영국 남자의 수줍음이 보고 싶다면 <러브 액츄얼리>를, 악독한 영국 지주가 보고 싶다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영국인의 이중생활을 엿보고 싶다면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보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콜린 퍼스의 삶은 전형적인 영국인 생활과 거리가 멀다. 그는 태생부터 메트로폴리탄이 될 가능성이 짙었다. 퍼스의 어머니는 인도와 미국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인도에서 자랐으며, 조부모 중 세명은 선교사였다. 그는 조부모를 따라 네살까지 나이지리아에서 산 경험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캐나다 여자(<발몽>에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 맥 틸리)와 처음으로 결혼했으며, 그와 헤어진 뒤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듀서 리비아 저지올리와 재혼해 영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살고 있다. 콜린 퍼스는 전세계에 ‘영국다움’을 수출하는 남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영국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퍼스는 그에게 신사 지위를 부여한 영국 대륙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물색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캐릭터에 대한 갈망과 마찬가지로.

편견4. 콜린 퍼스는 작품 보는 눈이 없다.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2005)

해명4.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편견이다. 물론 퍼스에게는 로열텔레비전협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포클랜드의 생과 사>과 소설 <위험한 관계>를 영화화한 <발몽> 그리고 <오만과 편견>이라는 자랑스러운 출연작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 사이에는 배우의 선택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는 의심스러운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2005)의 처연한 홀아비 역할은 어떤가. <세인트 트리니안스>(2007)의 망가진 교육부 장관은? 퍼스의 이러한 선택에 평단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함께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동료들- 케네스 브래너, 루퍼트 에버렛, 대니얼 데이 루이스- 에 비해 콜린 퍼스는 그의 재능과 동떨어진 작품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인디펜던트>의 전 피처 에디터, 이사벨 로이드) 배우로서의 콜린 퍼스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으나,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작품을 물색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콜린 퍼스는 “나는 내가 어떤 특정한 캐릭터로 규정되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 그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어쩔 도리 없이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대꾸한다. 그에게는 작품의 불완전함보다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더 큰 듯하다. 콜린 퍼스는 이제껏 수없이 되풀이해왔을 ‘미스터 다아시’에 대한 질문에 영국 신사처럼 점잖게 응수해왔지만, 사실은 ‘다아시 이후’를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려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콜린 퍼스가 <싱글맨>을 선택한 이유 또한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증과 맞닿아 있다. 생각해보면 <싱글맨>은 퍼스와 같은 A급 배우가 쉽게 출연을 결정할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를 업으로 삼는 사람의 첫 영화였고, 21일 만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저예산영화에다 동성애 코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싱글맨>의 시나리오는 콜린 퍼스가 갈망하던 종류의 신선함을 담고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 보았을 때, 이 영화가 대사로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라 배우가 채워넣어야 할 빈 공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영화는 어떤 관습에도 따르지 않는 듯했다. <싱글맨>에 출연한다는 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는 말과 같았다.”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콜린 퍼스의 꿈은 이루어졌다. <싱글맨>에서 보는 이의 눈앞에는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한 낯선 이의 얼굴이 펼쳐진다. 연인의 죽음을 막 접한 남자가 얼굴 근육을 살짝 일그러뜨릴 때, 홀로 남겨져 동공 안이 텅 빈 남자가 무기력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볼 때, 우리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러브 액츄얼리> <오만과 편견>의 로맨틱한 연인과 전혀 다른 얼굴의 콜린 퍼스를 만나게 된다. 퍼스가 기다려온 것이 정말로 ‘미스터 다아시’ 이후의 어떤 캐릭터라면, 그는 <싱글맨>의 조지 팔코너로 새 얼굴을 얻었다.

1960년 9월10일 역사학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비교종교학 강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1984년 <어나더 컨트리>에서 루퍼트 에버렛의 연인이자 급진적 공산주의자 토미 주드 역으로 첫 영화 데뷔.

1988년 포클랜드 전쟁을 다룬 <포클랜드의 생과 사>에 출연해 로열텔레비전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1989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영화화한 <발몽>의 주연배우로 출연. 그는 이맘때부터 팀 로스, 게리 올드먼, 폴 맥건 등과 함께 전도유망한 영국의 청춘배우를 일컬은 ‘브릿 팩’(Brit Pack)으로 불렸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여배우 멕 틸리와 사랑에 빠져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1994년 멕 틸리와 헤어진 뒤 <BBC> TV드라마 <오만과 편견>에 함께 출연한 제니퍼 엘(리지 역)과 사랑에 빠졌다.

1995년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피츠윌리엄 다아시 역을 맡아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가 물에 젖어 달라붙은 백색의 셔츠를 입고 호수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은 여성 시청자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1997년 이탈리아 출신 영화제작자 리비아 지우지올리와 결혼.

2001년 <오만과 편견>을 현대식으로 각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마크 다아시로 출연. 이 영화의 대흥행으로 콜린 퍼스는 영국의 대표 배우로 자리잡았다.

2009년 제6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싱글맨>으로 볼피컵 남우주연상 수상.

2010년 2월 <싱글맨>으로 BAFTA 남우주연상 수상, 제8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름.

2010년 현재 <왕의 연설>(King’s Speech)에 조지 6세로 출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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