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다. 데뷔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가수의 두 번째 앨범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블록버스터 시리즈에도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 비평과 박스오피스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전편의 영광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다. <쥬라기 공원2>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정도가 이 비극적 징크스의 슬픈 사례라고 볼 만하다. 징크스를 무사통과한 사례로는 <스타워즈2: 제국의 역습>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많은 영화광들은 <에이리언2>와 <터미네이터2>를 거론하겠지만, 과연 <스크림>의 주인공들이 동의할까?

그렇다면 이 징크스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슈퍼히어로 시리즈에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탈출하는 방법은 샘 레이미가 시리즈의 최고 걸작 <스파이더 맨2>에서 제대로 제시한 바 있다. 화력은 더 강하게, 스토리와 캐릭터는 1편과 마찬가지로 간결하고 힘있게. 그러나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3>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나치게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킨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 <아이언맨2>도 <스파이더맨 3>의 전철을 밟는다. 더 많은 악당, 더 많은 조연, 더 많은 갈등, 더 많은 모든 것이 2시간 속에 꾸역꾸역 들어 있다.

<아이언맨2>는 전편에서 커밍아웃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방황기다. 스타크는 아이언맨 기술을 국가에 귀속시키라는 압박을 거부한 채 스타의 삶을 즐기며,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운영권마저 수석 비서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에게 넘겨버린다. 그러나 유명세는 적을 부르게 마련이다. 아이언맨 기술을 스타크 가문에 빼앗기고 죽어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러시아에서 찾아온 위플래시(미키 루크), 위플래시를 이용해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넘어서려는 해머 인더스트리의 CEO 저스틴 해머(샘 록웰)가 셀레브리티 삶의 공황에 시달리는 스타크를 공격한다. 게다가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새로운 비서는 알고 보니 러시아 스파이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다.

존 파브로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를 잘 아는 감독이다. 그가 잘할 수 있는 건 오랜 코미디 배우로 다져온 유머감각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다. 부족한 건 거대한 블록버스터의 액션 시퀀스를 연출하는 능력이다. 전편 <아이언맨>은 파브로의 장점이 부족함을 상쇄한 경우였다. 사실 <아이언맨>의 액션장면은 별거 없었다(제프 브리지스와 벌이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를 기억이나 하시는 분?). 낯선 영웅 아이언맨을 배트맨에 필적하는 이름으로 키워낸 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건들거리는 매력을 제대로 활용한 영화의 유머감각 덕분이었다. 엄청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2>의 액션장면 역시 힘이 좀 부족한 편이다. 모나코 F1 그랑프리 시퀀스는 위플래시라는 캐릭터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는 인공적인 무대에서 깜깜한 밤에 벌어지는 탓에 시각적 괴력이 떨어진다. 훤한 대낮에 수많은 인파와 도시의 구조물을 적절히 이용하는 최근 블록버스터 액션 시퀀스의 경향과는 완벽하게 반대로, 좀 구식이다.

<아이언맨2>의 이야기는 부족한 액션을 감싸안을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캐릭터가 지나치게 많다. 워머신으로 변신하는 제임스 로드(돈 치들), 페퍼 포츠와 (존 파브로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경호원 해피 호건까지, 수많은 조연마저 저마다의 ‘순간’들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니 정작 강렬해야 할 악당 위플래시의 파괴력이 의아할 정도로 줄어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게다가 마블 코믹스가 집단 슈퍼히어로 영화 <어벤저스>의 제작을 홍보하기 위해 삽입한 블랙 위도우와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는 이야기에 제대로 끼어들지 못하고 겉돈다.

다행인 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거다. 술에 취한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쭉쭉빵빵 금발들과 파티를 벌이던 중 슈트 속에 오줌을 싸며 부르르 떠는 순간, 이 길고 복잡하고 멕아리없는 속편의 약점은 잠시 잊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