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지윤은 지난해 연말에 컴백했다. 배우 박지윤까지 컴백할 줄은 몰랐다. 아니, 배우 박지윤을 아예 잊고 있었다.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고, <고스트> <2004 인간시장> <비천무> 등에도 출연했지만, 여전히 가수 박지윤은 배우 박지윤을 압도하고 있다. 배우 박지윤을 갑자기 떠올리게 된 건 <서울>이란 영화 때문이었다. 배우 박지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수, 작곡가, 사진가, 그리고 서른살 박지윤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연말에 공연도 했고, <회복>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은근히 바빴을 것 같더라. =사실 언니가 있는 외국에 한달 반 정도 있다가 온 지 얼마 안됐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갔는데, 공연 전에 참여한 <회복>이 흥행을 하고 있더라. (웃음) 그분들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내가 목소리 정도 입힌 건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큰 작품이라 흥행이 기뻤다.
-그 와중에 <서울>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제의를 받았을 때 그냥 호감이 생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주로 저예산 인디영화나 일본영화를 자주 본다. <서울>이 그런 색깔을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실 영화에 출연한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내용도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남녀가 하루 동안 같이 돌아다니면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예전에 제의를 받았던 역할과 달리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 주로 제의받은 캐릭터는 어떤 거였기에. =아무래도 댄스가수 활동을 하면서 생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주로 섹시하거나 도도한 여자였다. 아, 액션영화도 한두개 있었다. 섹시코미디영화도 있었고. (웃음) 그런데 난 정말 잘할 자신이 없었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도 연기했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을 것 같은데. =클레오파트라도 섹시한 캐릭터지만, 그래도 섹시한 것만을 드러내는 여성은 아니었으니까. 꼭 그런 섹시한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다기보다는 항상 캐릭터의 매력을 봤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도시적인 여성을 그리는 방향이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다. 재미는 없는데, 못됐기만 하고. (웃음) 클레오파트라는 그런 전형적인 여성이 아니라 그 안에 여러 우여곡절을 가진 여자였기 때문에 선택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출연 거절은 정말 아까워
-<서울>에서 연기한 지혜는 담담한 분위기라 연기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박지윤스러웠던 것 같다. (웃음) 감독님도 “지혜는 나보다 지윤씨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촬영 공간도 평소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곳이라 친숙했다. 처음 가본 곳은 남산 케이블카 정도였다. (웃음) 의상도 내 옷을 입었고,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도 내가 항상 갖고 다니는 거였다.
-과거에 연기를 할 때는 어떤 생각이 있었나.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본격적인 연예계 생활은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시작했는데.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웃음) 꿈이 연기자였던 것도 아니다. 그때는 모델을 하다가 소개를 받아서 연기를 하고, 그러다 기획사가 생기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고스트>는 열정을 다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외에는 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하기 싫은데 한 것도 더러 있었다.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너무 못하는 편이라, 연기했던 작품마다 편차가 심하다. (웃음)
-외모상으로는 공포영화쪽 제의가 많았을 것 같다. =좀 있었다. (웃음) 공포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찍는 학원공포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제의를 받았던 역할이 주로 귀신이거나 비명만 지르는 여자였다. (웃음) 음… 뱀파이어 캐릭터에는 매력을 느낀다. 제대로 짜인 뱀파이어 캐릭터가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연기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는데, 가수 활동을 할 때는 아예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지우려는 걸까 싶을 정도로 연기 활동이 뜸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획사에서는 아무래도 가수 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가서 아쉬운 게 많았다. 난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제의가 있었더라. 나도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그 이후로는 가수 이미지로 확 가버리니까, 그런 캐릭터는 제의가 뜸하더라.
-6년의 공백이 있었다. 기획사를 나오면서 그런 제약에서는 벗어났지만, 한편으로는 화려했던 시절이 그립지 않았나. =한참 그랬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2003년 6집 앨범을 낸 뒤 너무 소진된 상태였다. 가수 활동에 많은 회의가 들었다. 다시는 가수를 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실제의 나와 가수 박지윤을 너무 다르게 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 나로서는 배우들이 변신을 하듯, 새로운 시도를 한 것뿐이었다. 내가 섹시한 이미지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게 박지윤의 모든 것이 될 줄 몰랐던 거다. 댄스가수 시절이 아쉬웠다기보다는 일단 그 이미지를 빨리 벗고 싶었다.
이제 서른, <성인식>의 그녀는 없다
-<성인식> 때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다. 심지어 지금도 걸그룹 멤버들이 종종 당시의 무대를 따라하고 있다. 보고 있을 때 기분이 어떤가. =그냥 뭐… 하하하. 그게 참…. 10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성인식>을 부를 때도 몰랐다. 사람들이 내 기분은 정말 모를 거다. 그저 나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오늘은 몇시에 잘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
-7집을 만들 때는 어땠나. 듣고 싶은 사람만 들어달라는 태도가 집요하게 보였다.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 <돌아오면 돼>가 가장 대중에게 친숙하게 들릴 곡인데도, <바래진 기억에>를 타이틀곡으로 정했다. =정말 그런 태도였다. (웃음) 사실 <돌아오면 돼>는 마지막까지 이 앨범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곡이다. 내가 구상했던 것에서 약간 떨어진 느낌이었으니까. 방금 말한 것처럼 모니터링을 할 때마다 그 곡을 타이틀곡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그래야 대중에게도 “이런 것도 있으니까 들으려면 듣고…” 할 수 있었겠지. (웃음) 원래 발랄한 댄스곡이었는데, 밴드 형태의 음악으로 편곡을 해서 넣었다. 물론 7집을 만들면서 불안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박을 원하고 만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앨범 재킷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담고 싶었고, 분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6년 전의 자신과 비교할 때, 달라진 게 많을 것 같다. =너무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진짜 까칠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지금은 말이 정말 많아진 거다.(웃음) 옛날에는 인터뷰하는 분들이 정말 힘들어했다. 그때는 어리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막 대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더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가뜩이나 차가운 인상인데,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였겠나. 나를 정말 많이 무서워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6년 동안 따뜻한 사람들도 만났고, 관계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이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가수로서나, 배우로서나, 그냥 박지윤으로서나 여러 목표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과 영상쪽으로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고 한다. 영화 연출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관심이 많다. (웃음) 배우는 글쎄… 다 힘들겠지만, 배우는 정말 힘든 것 같다. 음악으로는 내가 모든 걸 다 만들어서 나를 표현할 수 있지만, 배우는 그런 상황을 만나기가 힘들다.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게 아니니까. 나도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버리고 그 역할에 확 박혀야 하는데, 서른인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7집 앨범 이후 사람들이 나의 다른 모습을 봐주고 있다.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좀더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