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리문학의 대부로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1909~92)의 소설 <제로의 초점>이 영화 <제로 포커스>로 재탄생했다. 감독은 이누도 잇신이다. 1950년대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실종된 남편의 자취를 따라 진실에 접근해가는 한 여인의 추리극을 이누도 잇신은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황색눈물> <구구는 고양이다>까지 어느 작품을 떠올려도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이누도 잇신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한 여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제로 포커스>에서도 이누도의 섬세함은 유효하다.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기무라 다에 등 일본의 인기 여배우들은 이누도 잇신의 지휘 아래 자신들의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나 <제로 포커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헤어스타일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랬다. (웃음)
-원작자 마쓰모토 세이초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소설을 영화화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영화화할지는 고민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의외로 이 작품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일본은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마침표를 찍고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역사적으로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 <제로의 초점> 역시 희망을 품고 새 시대로 나아가는 시기가 배경이다. 1950년대의 소설을 지금 이 시대에 영화로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의미있을 것 같았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와 이누도 잇신이란 이름은 언뜻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글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지금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왔고, <제로 포커스> 역시 그 다양한 작품 중 하나라고 본다.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범죄스릴러영화 <더티 하리>(1971)다. 평소 서스펜스, 공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긴다. 이번엔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새 장르에 도전했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사치코(나카타니 미키)의 비중을 원작보다 늘렸다. 사치코는 죄를 반복해가면서 괴물이 되어가고 결국 정신적으로 붕괴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구체적으로 또 파격적으로 표현해내는 데 공을 들였다. 사치코와 히사코(기무라 다에)가 절벽에서 대치하는 장면, 사치코가 첫 여성시장 후보를 후원하는 설정은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것들이다.
-히로스에 료코를 캐스팅하기 위해 구애작전을 펼쳤다고 들었다. =캐스팅 자체가 힘들었던 건 아니다. 히로스에 료코의 드라마 스케줄과 영화 스케줄이 겹쳐서 그걸 조정하느라 힘들었다. 히로스에 료코와는 예전에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2006)라는 드라마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과거의 여인들이 가진 정숙한 느낌을 참 잘 표현하더라. 다른 배우들 같았으면 아주 힘들게 연기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데이코 역에 히로스에 료코를 캐스팅했다.
-규모가 큰 영화를 만들어보니 어땠나. =스케일이 크건 작건 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조제…>는 9천만엔으로 20일 동안 찍었다. 젊은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만 있으면 가능한 영화였다. <제로 포커스>는 <조제…>보다 제작비가 10배는 더 들었다. 그런데도 시간과 돈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후반 일본의 모습, 눈이 많이 오는 일본 북쪽 지방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아니, <조제…> 찍을 때가 더 여유로웠던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 이야기이고,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