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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합체! 액션+정치영화

본 시리즈의 2인조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만든 <그린존>

<그린존>은 액션명가를 이룬 본 시리즈의 2인조 폴 그린그래스맷 데이먼의 합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끌어왔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기다려왔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과연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날아간 그랜그래스-데이먼은 어떤 영화를 완성해낸 것일까. 마침내 개봉한 <그린존> 안으로 궁금증을 갖고 들어가보자.

두명의 폴 그린그래스가 있다. 먼저 <블러디 선데이>와 <플라이트93>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가 있다. 아직 <클로버필드>와 <허트 로커>가 나오기 이전에 마치 현장 검증자의 태도로 과거 그 현장 한쪽에 당도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시지각과 극화를 시도하였고 그로써 대중적으로 접근도가 높은 정치영화의 한 접경을 열었다는 예술적 평가를 얻어냈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다른 쪽에서 얻어냈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가령 ‘본 시리즈’의 향후를 궁금해할 때 사람들은 ‘(<본 아이덴티티>의 더그 라이먼이 아니라)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과연 재결합할까?’ 라고 묻는다. 액션영화라는 장르에 하나의 획을 그은 본 시리즈의 역량이 2편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뒤섞여 있긴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의 두개의 길은 대체로 이렇게 하나는 ‘정치영화’로 하나는 ‘액션영화’로 더 강조된다. 그런데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의 신작 <그린존>은 기이하게도 그 두개의 어떤 본격적인 변신합체물이다.

본 시리즈의 외전이냐고?

오면 좋겠지만, 본 시리즈 4편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린존>이 먼저 왔다. 그 때문에 그린그래스-데이먼 조의 새로운 신작 <그린존>은 혹시 본 시리즈의 외전쯤 되는 게 아니겠느냐는 기대로 주목을 모아왔다. 실제로 <그린존> 제작진의 고민도 그런 기대를 갖는 관객층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하는 것이었다. “미스터리가 가득하고 동시대의 스릴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본 시리즈를 보러 왔던 관객에게 폭넓은 호소를 할 수 있는 스릴러영화”가 애초 목표였다. 문제는 그런 영화가 생각만큼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감독이 눈을 돌린 것은 현실이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극단적인 장소는 어디일까?”라고 자문하자 답은 간단해졌다. “맷과 내가 <본 얼티메이텀>을 끝내고 다음 작품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바그다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장소를 배경으로 사실적이고 그럴듯한 스릴러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인 것도 틀림없었다.”

전직 <워싱턴 포스트> 바그다드 담당 기자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이 쓴 논픽션 <에메랄드 시의 제국주의 생활: 이라크의 그린존 내부>(국내에는 <그린존>으로 출간되었다)라는 책이 영화에 본격적인 영감을 주었다. 물론 영화 <그린존>의 주요 주인공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극화된 영화는 책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주요 구실이 되었던 대량살상무기 보유, 그것을 쫓는 한 병사라는 모티브를 주기에는 충분한 사실들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 <그린존>은 2003년 3월19일 미국의 첫 이라크 침공이 있는 날부터 시작한다. 이라크가 숨겨놓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미군 로이 밀러(맷 데이먼)가 이끄는 정찰대는 몇 차례의 수색에 나선다.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작전 수행 중 로이 밀러는 한 이라크인 정보원에게서 사담 후세인의 오른팔 격인 알 라위 장군의 회의 장소를 알아내고 침투한다. 로이 밀러는 장군을 잡는 데는 실패하지만 무언가 핵심에 접근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로이 밀러는 제보 과정에 허점이 있음을 간파하고 대량살상무기의 은신처를 알려주는 ‘마젤란’이라는 숨겨진 제보자의 행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즈음 CIA의 브라운 국장(브렌단 글리슨)에게서 마젤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한편, 국방부의 간부 클락 파운드스톤(그렉 키니어)은 마젤란에 관심을 갖는 로이 밀러의 행동에 의심스러울 정도로 제동을 걸어온다.

오로지 스릴러물 혹은 액션영화?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영락없이 그린그래스식의 액션영화다. 한마디로 쉴틈없이 숨가쁘게 진전한다. 로이 밀러는 실패와 재실패, 함정에 빠지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이 전쟁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전장을 헤맨다. 어쩌면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더 간명하겠다. <그린존>은 본 시리즈의 어느 액션 시퀀스 하나를 영화 한편으로 확장한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런 속도감으로 이라크 바그다드를 2시간 가까이 종횡무진한다. 카메라는 대원들 중 하나가 들고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따라붙어 그 대열 안에 같이 있으며 예의 그 빠른 편집감은 전시라는 아수라장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시각적 긴장감으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본 시리즈보다 한층 더 강화된 장면들의 연속이다. 이때 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하다. 감독은 <그린존>의 오락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말한다. “<그린존>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다.”

<그린존>을 순수하게 스릴러물 혹은 액션영화로만 즐기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겠다. 그것이 정작 <그린존>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가 아니었나. 본 시리즈만큼이나 뛰어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액션영화! 그런데 감독의 말과는 또 다르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그린존>에는 정치영화로서의 노골적인 수읽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걸 보는 이라고 모를 리 없다. <빌리지 보이스>의 명망있는 평론가 짐 호버먼은 <그린존>에 관하여 쓰면서 이 영화가 “2008년 선거 시즌 동안 개봉되었더라면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엇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며 영화의 제목을 “그렇다고 말했잖아, 멍청아!”라고 붙일 수도 있었을 거라고 제안한다.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헤매는 이 영화의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호쾌한 비꼬기다. 하지만 호버먼이 주인공 로이 밀러를 가리켜 “그는 다시 한번 차이를 지닌 본이다”라고 말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 놀랍게도 <그린존>의 로이 밀러는 차이를 갖고 다시 돌아온 본이 아니라 본과는 정확히 상반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그린존>에서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로이 밀러를 이라크에 간 제이슨 본일 것이라고 믿고 기다린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무언가 다른 인상으로 긴장감을 불러온다.

로이 밀러는 이라크에 간 제이슨 본?

쫓는 자(로이 밀러)와 쫓기는 자(제이슨 본)라는 피상적인 차이만을 두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 둘은 쫓건 쫓기건, 국가에 속했건 그 반대이건, 결국 진실을 파헤치고자 할 때 국가가 은폐해둔 무언가로 추적해 들어가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보다는 그들이 그 숨겨진 실체를 놓고 쫓거나 쫓기며 혹은 대항하면서 그들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가, 라는 것이 두 영화의 차이이며 핵심이다. 제이슨 본이 국가의 위력적인 공권력에 맞서는 아날로그적이며 단독적인 위험인물에서 점점 더 활공하는 초영웅이 되어가는 것이라면, 같은 배우인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그래서 제이슨 본과 같을 것이라고 바랐던 <그린존>의 로이 밀러는 무언가 잘못된 사태에 휘말려 있는 꼭두각시였음을 깨닫고 영웅화되려는 순간 거대한 무력함에 봉착한다.

주어진 사태가 액션영웅의 능력과 행위 혹은 힘으로 맞서지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린존>은 액션영화치고는 기이한 라스트신에서 여실히 보여준다(<본 슈프리머시>나 <본 얼티메이텀>의 라스트신에서 제이슨 본이 보여주는 행동과 <그린존>의 로이 밀러가 라스트신에서 보여주는 행동을 비교해보기를). 주인공 로이 밀러는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그가 민첩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는 더 무능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아무리 기민해도 원래부터 없는 것까지 찾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없는 것이라는 진실을 확신했을 때에 그는 더이상 액션영웅으로서 할 일이 없어진다. <그린존>의 역설은 우리가 제이슨 본일 것이라 추정한 그 배우 맷 데이먼을 실은 정치적 희생양의 캐릭터로 귀환시켰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정치와 액션, 두마리 토끼잡이의 결과?

액션영화와 정치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손에 모두 잡으려 한 <그린존>. 이 영화는 과연 그 무엇을 온전히 성취한 것인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수긍하는 쪽이 있을 수 있다(<그린존>은 엔터테인먼트로서 본 시리즈의 스타일을 지녔으면서 시사적으로도 현재에까지 의미가 닿아 있는 영리한 영화가 아닌가?) 그러나 둘 다 놓쳤다고 보는 쪽도 가능하다(이미 사태의 진위가 종료된 이때에 그것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현실조차 먹어치우는 엔터테인먼트의 일환일 뿐이며 동시에 정치영화로서의 예봉도 무딘 것 아닌가?) 북미권 평론가들이 참여하는, 그러나 일반 대중과 변별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지 않은 평론가들까지 다수 끼어 있어서 오히려 대중적 총평으로 기준삼기에 적절한 로튼토마토의 별점에서 <그린존>이 싱싱지수 50%를 약간 상회하는 것은 이런 은연중의 평가들이 뒤섞여 도출해낸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액션장르의 쾌감을 수행하기를 원하고 동시에 정치영화의 은밀한 역설도 원한 <그린존>. 어느 쪽에서 그 어느 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접혀 들어간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이 영화가 폴 그린그래스-맷 데이먼조의, 액션-정치의, 영화적 트랜스포머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변신합체물에 어떤 감상을 더 갖게 될까.

믿거나 말거나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 vs <그린존>의 로이 밀러

성향 현상수배자. 철저한 위험인자(?). 정부의 골칫덩이 vs 처음에는 애국자. 우직하고 청렴한 공무원. 하지만 결국 정부의 골칫덩이.

친구관계 몇몇이 있지만 결국 왕따 vs 철저한 팀워크와 리더십으로 대원들과 함께 움직임.

연인관계 과거에는 확실히 있었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vs 미국에 두고 왔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라크에서는 한번도 연락하는 걸 본 적 없음.

상황 늘 쫓긴다. 가끔 잡는다. vs 항상 쫓는다. 어쩌다 잡힌다.

성격 불안초조. 오랜 도피생활 때문인지 때때로 신경질적. vs 용맹무쌍.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상명하복을 따르지 않음.

전투실력 몸 자체가 전천후 무기. 종이 한장만 말아쥐어도 살상이 가능. vs 봐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동료와의 싸움에서 몇대 맞는 걸로 봐서는 얼마나 뛰어난 격투 능력의 소유자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음.

외국어 실력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못하는 언어가 없어 보임. 아프리카 소수 부족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믿어야 할 지경. vs 적어도 아랍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건 확실함. 작전수행 중 늘 통역을 대동.

지능지수 매우 높음. vs 매우 높은 것 ‘같음’.

모르는 것 자기가 누구인지 모름. vs 자기가 쫓고 있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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