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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인들의 어두운 자화상 <제로 포커스>
이화정 2010-03-24

synopsis 데이코(히로스에 료코)는 맞선남 겐이치(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침착한 모습을 높이 사 결혼을 한다. 그러나 신혼생활을 맞보기도 전에 겐이치는 이전 근무지인 가나자와로 출장을 가고 그 뒤 실종된다. 데이코는 무작정 그를 찾아 가나자와로 떠나지만,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그즈음 가나자와에선 연이은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데이코는 희생자들이 모두 남편과 관련된 인물임을 알고 진실에 접근한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이누도 잇신의 선택은 남달라 보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황색눈물> <구구는 고양이다> 등을 통해 그간 이누도 잇신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사건의 전말을 캐내는 장르적인 접근보다 대부분 인물들의 심리에 다가가려는 섬세한 시도였다.

역시 이누도 잇신은 장르의 뼈대만을 유지한 채 그 위에 본인 특유의 인간 관찰을 포개놓는다. 1950년대 전후 일본사회, 표면적으론 사라진 남자와 그를 찾는 여자, 남자 곁을 맴도는 미스터리한 여인의 구도는 얼핏 세 남녀의 애정관계로 비쳐진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려는 진실은 단순히 세 남녀의 관계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끔찍한 살인사건은 전후 일본, 변화의 소용돌이 속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문도 모르고 피해자가 된 데이코가 이 영화의 화자임에도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청산해야 할 과거가 전제되지 않은 오점없는 새 시대의 여성이고, 영화에서는 주변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영화의 주체는 참전으로 인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데이코의 남편 겐이치, 그리고 궁핍했던 시절 생계를 위한 선택을 감추려는 여자 사치코(나카타니 미키)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다. 물론 영화 속 이들의 욕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누도 잇신은 시대의 흐름에 자신들의 과오를 무마하려는 인물들을 통해 전후 일본인들의 어두운 자화상을 세심하게 짚어낸다. 장장 6개월간의 촬영, 오픈세트 제작 등 <제로 포커스>는 소규모 제작이 대부분이었던 일본영화계에서 만나는 오랜만의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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