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장르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영화는 다른 장르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왔던 미덕을 허겁지겁 섭취했지만 선배들이라고 그 성장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술은 영화를 통해 운동과 시간을 꿈꾸었고, 문학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시선을 모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장르인 무용은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아이공에서 3월23일부터 한달 동안 준비한 <댄스필름의 창시자 마야 데렌과 오마주展>을 찾아보면 된다. 1940년대 무용, 영화, 영화 이론 등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쳤던 마야 데렌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16mm 카메라를 들고 1943년 <오후의 올가미>(Meshes of the Afternoon)를 시작으로 실험영화의 문을 두드렸다. 전위적인 화법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데만 집중했던 기존의 실험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여성의 내면을 탐색하기 위한 장치로 카메라의 시선을 빌려온다. 이 작품으로 그는 칸영화제에서 독립영화 대상(Grand Prix for Amateur Film, 1947)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든 존재가 자유로운 분자 상태로 출렁거리는 물속에서, 모든 사물이 고형으로 굳어버린 땅 위로 올라온 여성을 초현실주의적인 방식으로 따라가는 <뭍에서>(At Land)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무대를 벗어난 무용을 담은 ‘댄스필름’
무용을 무대라는 한정된 시공간에서 해방시키고 더 많은 관객과 호흡하게 만든 ‘댄스필름’의 창시자인 마야 데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카메라를 위한 안무연구>(A Study in Choreography for Camera, 1945), <변형시간의 의례>(Ritual in Transfigured Time, 1946), <밤의 눈>(The Very Eye of Night, 1952~55) 등을 거쳐야만 한다. 카메라 앞에서 그가 펼쳐놓는 무용은 고급스럽게 포장된 무대나 의상에 갇혀 격식을 갖춘 동작들을 조합해 보여주는 고상한 것들과는 완벽하게 결별한다. 육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건강성과 카메라와 편집이 주는 새로운 운동성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움직임에 한계를 부여하던 중력의 법칙은 사라지고 어둠과 빛이 역전되고 정지된 시간 속에서 포착된 토르소들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특히 <밤의 눈>이 보여주는 몽환적인 화면들은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학적인 황홀감을 선사한다. 자신의 종교였던 부두교의 성지인 아이티를 방문해 부두교 주술사들의 모습을 담은 <디바인 호스맨: 아이티의 살아 있는 신들>(Divine Horsemen: The Living Gods of Haiti) 역시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리듬과 춤이 주는 원초적 신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할리우드가 배우의 립스틱에 쓰는 비용’으로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의 자유를 한껏 향유했던 마야 데렌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 의해 스크린 위에서 끊임없이 부활했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필름과 정신을 되살리고 있는 오마주 작품들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춤의 스텝들이 어떻게 음악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메저>, 고딕풍의 기괴한 코스튬 드라마를 춤을 통해 재현한 <공작 부인>, 한국 즉흥 춤의 현재를 보여주며 그 의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곁들인 <나의 카메라와 춤을> 등이 눈에 띈다. 영화를 보다가 몸이 근질근질해진 관객은 회고전 중간 중간 마련된 퍼포먼스와 즉흥 춤 워크숍 등을 기웃거려보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