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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내 속을 파내듯 장은의 속을 파보고 싶었다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0-02-01

<식객: 김치전쟁>의 김정은

“넌 나를 절대 못 이겨.” 한때 사람들의 섣부른 관심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딘 김정은이 <식객: 김치전쟁>을 통해 얻은 대사다. 솔직히 그녀가 지닌 대중적인 태도에 비춰보면 낯설다. 그녀가 내뱉기보다는 오히려 아프게 들어야 했던 말에 가깝지 않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김정은은 남자 앞에서 언제나 약자였고, 그 남자를 원하는 ‘더 잘난’ 여자 앞에서도 약자였고, 그 남자의 부모에게는 더더욱 약자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인관계는 아니지만) 관객이 응원하는 남자주인공과 대척점에 서서 대결하는 여자다. 게다가 자존심 자체를 원하는 그녀는 진심을 드러내거나 빈틈을 보이는 법도 없다. <사랑니>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통해 시도한 변화보다도 더 넓은 간극이다. 다음은 김정은과 나눈 그 간극에 대한 대화다.

-여기 오기 전 6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어요.(인터뷰는 밤 9시30분에 시작했다) =많이 피곤하지는 않아요. 지난주가 절정이었는데 잘 지나갔어요.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하죠. 신문사들도 일일이 다 찾아다니고 있어요. 홍보팀에 사정해서 <무릎팍도사>에 안 나가는 대신 인터뷰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거든요.(웃음) 그래도 괜찮은 거래 같지 않아요?

-그렇네요. 나갔다면, 정말 상당히…. =그죠? 저도 제가 거기 나간다고 생각하면… 어휴….

-<식객: 김치전쟁>(이하 <식객2>)에서 연기한 장은은 의외의 캐릭터였어요. 일단 빈틈이 없는 여자잖아요. 김정은이란 배우에게 이런 캐릭터를 대입시킨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그렇죠. 사실 제 특기가 원래 빈틈 흘리기잖아요. 그것 때문에 감독님을 정말 많이 괴롭혔어요. 카리스마가 있건 냉철하건 간에 이렇게 현실감없이 공중에 떠 있는 애를 어떻게 땅에 붙일 거냐고. 그런데 또 너무 과한 빈틈은 안될 것 같더라고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스스로 의아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사랑니> 때와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의아했죠. 그런데 옆에 ‘약간 좋아하면서’ 이런 지문이 붙을 거예요. (웃음) 음… 상당히 시기적절한 제의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제가 소리내어 깔깔 웃고 싶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도 않았던 때였거든요. “난 괜찮으니까요. 제발 더이상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런 모드였어요. 우울모드에 접어들면 아예 밝은 걸 하고 싶기도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들어선지 오히려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장은이 반가웠죠. 얘 속을 한번 파보고 싶었어요. 제 속을 파내듯.

-파보니까 어떻던가요. =더 파보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난 괜찮다고 그랬던 게 잘난 척을 한 거더라고요. 처음에는 상대가 걱정하는 게 싫은 마음에 나온 배려였는데, 사실 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거였죠. 약해지기 싫고, 싫은 소리하기도 싫고, 끙끙거리기도 싫었던 거예요. 오히려 연기할 때가 더 마음이 편했어요. 몸을 써서 하는 거니까 더 안심이 됐죠. 핸드볼을 하고 났더니 뭐든 자신감이 붙어서…. (웃음)

-멜로코드가 없는 작품도 처음인 것 같아요. 만약 있었다면 빈틈을 만드는 것도 더 쉬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저한테는 안 주더라고요. 진수와 성찬쪽에만 붙어 있죠.

-만약, 5년 전에 정은씨가 출연했다면 당연히 진수 역할을 맡았겠죠. =그렇죠. 진수는 제 거죠. 아주 잘했을 것 같지 않아요? (웃음) 모든 걸 해석하고, 정보를 주면서 분위기를 살렸겠죠. 생각해볼수록 그렇네요. 내가 5년 전만 해도 진수였겠네.

-성찬이 모든 관객이 응원하는 주인공이라면 극중 장은은 거칠게 표현해서 악역이에요. 좀더 생각해보면 김정은이라는 배우의 입지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같기도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의 취향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타잖아요. 제가 처음에 <해바라기>에서 삭발까지 하고 엽기적인 캐릭터로 등장했을 때는, 그 시대가 사랑을 해준 거였죠. 평소 인터뷰 때마다 제가 시대를 잘 만난 배우라고 이야기하는데, 확실히 이제는 사람들이 다른 걸 원하는 거 같아요. 저부터가 다른 것에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요. 거슬러 올라가면 <파리의 연인>이 끝났을 때였죠. 정점을 찍고서는 어디로 갈지를 몰랐던 거예요. <사랑니>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선택했던 작품이고요. 계속 귀여운 걸로 승부를 보는 건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고, 저 역시 변화를 겪으면서 점점 그런 캐릭터가 가짜란 느낌이 있었어요.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바가 컸을 거예요.

-그래도 본인이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는 기뻤겠죠. =사실요 제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부분을 타고났거나,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어요. (웃음) 위장으로 빈틈을 보인다고 할까? <초콜릿>을 진행할 때도, 제가 먼저 망가지면서 게스트를 무장해제시키려 하거든요. 유재석씨의 진행방식인데, 사실 원래 제 거예요. (웃음) 위장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진 걸 보면 관객이 원하는 것과 잘 맞아떨어지기는 했나봐요. 그게 또 꽤 오래갔죠.

-그것이 처음부터 꿈꾸던 배우로서의 모습이었나요. =아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영리하게 찾아간 거였죠.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가문의 영광>을 끝낸 뒤에는 제 앞에 누가 꽃길을 깔아준 것 같았거든요. 어딜 가나 칭찬을 받았고, 그러면서 저도 뭐든 잘할 수 있다고 했었어요. 그래도 <해바라기>에서 했던 연기를 후회하지는 않아요. 이미지 변신이 힘들기는 했지만, 나름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안 그런가요? (웃음) 전 지금도 가끔 보면 너무 귀여운데…. 또 그 나이 때 해볼 만한 캐릭터 같기도 해요. 만약 지금 하려 했다면 “김정은 왜 저래?” 그러겠지만….

-코미디영화나 트렌디드라마는 요즘도 제의를 많이 받는 편인가요. =제 나이 때의 여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받는 편이에요. 특히 밝은 분위기의 드라마는 거쳐가는 것 같아요. 아, 코미디영화도 있었구나. (왜 안 했어요?) 그때가 <식객: 김치전쟁>을 제안받았던 시기예요. 지난해 3, 4월이요. 관객에게 친절하고 싶지가 않았던 때니까.

-지금은 어떤가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기분이에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범법행위만 아니면 배우가 사고도 좀 치면서 사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웃음) 항상 난 왜 이렇게 굴곡없는 삶을 살았을까, 투덜거리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호되게 겪은 거잖아요. 기자들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가기도 했고, 촬영장에 기습도 당해봤고. 이제는 우리 집에서 가장 굴곡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 돼버린 거죠. (웃음) 사고는 치되, 법은 어기지 말고, 기자한테도 들키지만 않고 살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특히 우리나라 배우들한테는 말이에요.

-최근 기자들에게 들킨 분들을 볼 때는 어땠어요. =아,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랑이니까. (웃음) 혜수 언니가 그런 챙의 모자를 쓰면 안되는 거였어요. 남들이 쓰는 편한 야구모자를 썼어야 했는데… 패셔니스타답게 챙인데도 시크한 챙에 선글라스까지 쓰는 바람에 기자들이 더 쉽게 알아본 것 같아요. (웃음)

-이제는 좀 더 많은 작품을 찾을 계획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몸을 쓰고, 안 해본 걸 하고, 그러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스스로 얻는 건 그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예요. 유일한 위안인 거죠. 배우가 자신을 괴롭힐수록 관객은 즐거워하잖아요. 또 나름 오래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작품 선택해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위험하거나, 우울한 일을 자주 겪을 여배우들에게는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일하는 것만큼 강한 무기도 없고, 편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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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이보람·헤어 박지영(라륀느)·메이크업 김수영(김청경 헤어페이스)·의상협찬 오브제, 블루걸, 사바띠에, 김연주·액세서리 협찬 샤틀리트, 마코스 아다마스, 액세서라이즈·슈즈 협찬 지니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