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주 뒤면 2000년대가 막을 내린다. <포지티프>는 내게 2000년 이후에 나온 영화 가운데서 베스트10을 뽑아 달라고 한다. 아직 열 작품을 모두 선정하진 않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선정한 이름 중 다수가 1990년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전혀 몰랐던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내 나름대로 당시엔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가치 기준이 이제 더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도 놀랐다.
아시아계 영화에서 장이모나 차이밍량, 첸카이거나 기타노 다케시 등의 작품 중 어느 것도 나는 꼽지 않았다. 대신 봉준호나 이창동, 박찬욱이나 홍상수, 아니면 왕빙의 작품 중 몇편을 리스트에 넣을 생각이다. 미국영화쪽에선, 나의 젊은 시절을 달래줬던 팀 버튼, 짐 자무시, 아벨 페라라 감독의 작품 대신 제임스 그레이, 아니면 폴 토머스 앤더슨의 작품을 넣을까 한다. 프랑스에선 미셸 공드리, 라파엘 나자리, 아니면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어떨지? 여하튼 내 리스트엔 2000년 이전엔 아무도 몰랐던 이름이 수두룩하다.
이런 베스트10을 만드는 건 “한 영화인이 얼마 동안이나 정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평생 끊임없이 창조를 거듭해가는 피카소와 같은 행로를 영화인에게서도 고려해볼 수 있을까? 장 르누아르는 말년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의 천재성이 그야말로 돋보이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린다. 그의 <풀밭 위의 오찬>이나 <프렌치 캉캉>의 성공도 <위대한 환상>이나 <인간야수>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70년대 영화인 중 누가 실제로 계속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무리 ‘테트로’가 괜찮은 영화라 해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결코 <대부>나 <지옥의 묵시록>에 비교되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마틴 스코시즈도 마찬가지, 그가 최근 얻은 상업적 성공 역시 <택시 드라이버>나 <분노의 주먹>에서와 같은 예술적 위력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베니스영화제에 소개됐던 베르너 헤어초크의 최근 작품들도 <아귀레, 신의 분노> 혹은 <유리마음>이 가진 힘에 비하면 난쟁이 광대에 불과하다. 그리고 <파리 텍사스> 이후의 빔 벤더스 작품에 대해선 또 뭐라고 해야 하나?
오즈 야스지로, 앨프리드 히치콕, 존 포드, 빌리 와일더, 나루세 미키오, 에른스트 루비치, 프리츠 랑 등 데뷔 시절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정상을 계속 유지하며 존속했던 영화인이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든 할리우드에서든, 이들 거장들은 모두 스튜디오라는 틀 안에서 작업했다. 그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고(혹은 적어도 혼자서 쓰지는 않았고), 그들의 혁신이라는 것은 영화시스템이나 영화산업의 혁신을 아울러 의미하는 것이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의 예술 앞에 홀로 서서 자신의 창의성을 최상으로 유지하며 10년 이상 버티는 영화인이 드물다는 얘기다.
작가나 화가에 비해 영화인은 한 시대나 한 민족의 주요 관심사와 꼭 맞아들어가야만 최정상에서 존속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장 르누아르의 천재성, 그건 2차대전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그는 전후의 관객을 감동시키지 못했으니까. 신상옥이 미국에서 전후의 한국으로 돌아와 1960년대에 만들었던 대작들을 다시 만들 수 있었는가?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우라 역시 프랑코 독재주의의 종말에 적응하지 못했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 세계가 뜨고 있을 때 그는 <까마귀 기르기>의 위력을 되찾지 못했다.
영화인의 천재성이 유지되는 기간은 권투선수의 인생의 그것에 비할 만하다는 사실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2010년대 거장들이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화인일 거라는 생각은 어쩐지 꽤 고무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