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은 더이상 청춘영화의 주인공일 수 없지만, ‘정우성’이라는 청춘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데뷔 16년째인 지금까지 그는 영화 속에서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는 보통 남자였던 적이 없다. 대신 그는 질주하고 활강했다. 비상해서 산화했다. 그의 출세작 <비트>에는, 한때 유행과 꽃다운 배우의 마주침만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광채가 있다. 아련한 통증과도 같은 그 빛은, 스물네살 청년 정우성과 영화 속 민이가 이룬 희귀한 공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놀이터 정글짐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민이, 동갑내기 친구에게 “넌 아직 어려”라고 말하는 그 키 큰 청년은 정우성의 솔 메이트다. <비트>를 회상할 때 그 결말은 왠지 희미하다. 착지할 곳을 찾지 않고, 터널의 끝이 어디로 통하는지 묻지 않는 <비트>는 본질적으로 끝날 수 없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한강 다리 교각 밑에 쓰러진 민이를 남겨두고 정우성은 일어서서 끈질기게 걸어왔다. 민이의 불안과 고독을 서서히 지우고, 민이의 너그러운 미소는 간직한 채.
정우성은 넓은 의미의 ‘육체파’ 배우다. <본투킬>의 킬러, <태양은 없다>의 권투선수, <유령>의 장교, <무사>의 노비, 그리고 개싸움으로 마무리되는 <똥개>까지 20대 내내 정우성은 스크린 위에서 피 흘렸다. 아름다운 남성의 육체를 수난에 빠뜨리고 파괴함으로써 모종의 속죄와 정체성 회복을 꾀한 한국영화의 경향이 한몫했다. 영화 열여섯편을 완성하고 스타덤에 정착한 지금에 이르러 정우성이 발휘하는 대중적 매력의 요체는 유유자적한 힘과 아름다움이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육체적으로 유능하고, 애쓰지 않아도 멋있어 보이는 남자. 돈과 권력은 없지만 몸과 몸으로 겨루면 우월함을 감출 수 없는 정우성의 인물들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승부가 아니라 자세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정우성이 보유한 스타성을 건드리지 않은 채, 100% 활용하고 노골적으로 탐닉한 거의 유일한 영화다. “거기 다 있는데 보여주면 되지. 뭘 바꾸고 보탠단 말인가?” 반문하는 투로. 정우성이 분한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은 부드럽고 차가운 프로페셔널이다. <놈놈놈>의 오프닝 크레딧은 적절하게도 ‘박도원-정우성’을 독수리의 이미지에 실어 소개한다. 고공에서 목표물을 발견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단번의 활공으로 기품있게 낚아채는 맹금. 김지운 감독은 또한, 30대의 정우성에게 깃든 고독하지만 태평한 느낌을 캐릭터로 영리하게 포착했다. 우무질의 막처럼 정우성을 감싸고 있는 그 느긋한 기운을 본인은 ‘무던함’이라 부르고, 가까운 영화인들은 “절대 주위에 폐를 끼치며 자기 것을 챙기려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묘사한다.
정우성을 향한 호감의 속성은 남녀 불문하고 선망이다. 정우성이 등장한 한 카드 CF에서 남자 성우는 말했다. “참 멋진 녀석이죠?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나요?” 범속한 현실을 재현하길 원하는 감독들은 정우성의 이름 앞에서 간혹 망설이곤 한다. 그가 화면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깨어질 것 같아서다. 30대 회사원 박동하의 역할을 정우성에게 준 <호우시절>은 그를 다른 거리에서 바라보는 법 하나를 제안한다. 허진호의 연출은 분절되지 않은 정우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우성은 프레임 속에 동결되어 영원처럼 빛나는 게 아니라 타고난 느릿한 몸짓 그대로 일상의 시간에 실려 움직인다. 하릴없이 거리를 걷고 관광지를 기웃거리고 한 여자를 안고 싶어서 조급해 한다. <호우시절>은 불현듯 다시 방문한 청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은 마냥 붉고 우정은 매양 서슬 퍼렇던 계절은 가버렸다. 청춘을 체현했던 정우성이 바로 그 자리, 영화 속에서 청춘을 명상할 때 나는 기이한 감격을 느꼈다.
-키가 큰 스타들은 얼굴을 가려도 사람 많은 곳에 가기 어려울 거라는 짐작이 들어요. =쉽지 않죠. 큰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들어서면 더 시선을 끌잖아요? 또 이미지의 각인이라는 게 무서워서 TV에서 자주 본 사람의 움직임과 실루엣은 기억 속에 새겨지는지 금세 알아봐요. 그래서 늘 가는 곳, 연예인을 보더라도 접근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동네만 다니게 되죠.
-외국 촬영을 갔을 때 느끼는 해방감이 있겠습니다. =<호우시절>을 중국 청두에서 촬영하면서 콴자이상즈(청두의 관광가)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까지 한 시간 동안 밤길을 걸어 돌아간 적이 있어요. 길거리 콘돔 자판기를 보면서 “역시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됐다”고 농담도 하고. (웃음) 오랜만이었죠.
-<호우시절>을 제외하고 허진호 감독님의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든 영화는 무엇인가요? =(생각)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마음에 남고, <봄날은 간다>는 갈대밭에서 소리를 채집하는 장면 같은 비주얼이 남아요. <외출>은 국어선생님이 갑자기 성교육시키려는 것처럼 어색했어요. (웃음)
-공격적이진 않으면서도, 대상을 살짝 무안하게 하는 선을 넘나드는 말투를 갖고 계세요. (웃음) <호우시절>은 정우성씨 영화로서 가장 컷 수가 적은 영화였을 것 같습니다. 2900컷의 <무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멜로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조차 1700여컷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반대로 허진호 감독 영화로서 <호우시절>은 컷 수가 많은 편이고요. =감독님 본인이 “내 영화 중에선 컷이 제일 많을 거야” 해놓고는 서둘러 찍어야 하는 상황에 사색에 잠겨 있더라고요. 하하. 촬영은 한달 안에 끝내야 하는데! 막 조바심이 나서 생각에 빠진 감독님을 다그쳤죠. “형, 뭐, 뭐! 얘길 해! 우리가 여기서 필요한 게 뭘까?” “음, 동하(정우성)가 좀….” “아, 동하가 이러저러했음 좋겠어?” “음….” “그럼 일단 찍고 보자.” 뭐 이런 식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보니 허진호 감독이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 캐릭터와 상황에 내포돼 있고 따라서 보는 사람들도 함께 답을 찾기 위해 영화 안쪽으로 끌려 들어오는 느낌이 있어요.
-그건 테이크가 긴 영화에 대해 이번에 정우성씨가 얻은 생각이기도 하겠네요. =아무래도 컷이 많은 영화는 이걸 보고 다음엔 저걸 봐라 강요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컷이 적고 긴 영화는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예컨대 나뭇잎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지나가는지 같이 한번 느껴보자고 관객에게 청하는 거니까. 촬영장에서는 무척 힘들고 답답했거든요. 감독님이 면벽수행자처럼 대화할 때도 내 얼굴 보면서 자문자답하는 것 같고. (웃음) 그런데 끝나고 나니 상상도 못했던 큰 희열과 엄청난 흥미가 생겼어요. 편집을 마치니 감정의 흐름과 융합이 비로소 드러나고 두 남녀의 화학작용에 관객의 감정이 더해지면서 제2의 화학작용이 일어나요. 돌아보니 촬영과정의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은 이런 드라마가 지켜야 할 철칙인 것 같아요. 원래 감독님들한테 다음 작품 있으면 또 같이 하자는 말 안 하는 편인데, 하마터면 진호 형한테 할 뻔했어요. 아냐, 그래도 시나리오는 보고 해야지 하면서 간신히 억눌렀죠. (웃음)
-지금까지 경험한 바와 다른 촬영방식이 연기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훨씬 라이브하죠. 그게 더 길어지면 연극에 가까워지겠죠? 긴 호흡의 연기는 배우를 연기적 계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컷을 많이 나눠 찍다보면 매 컷에 집중하게 되고 때로는 그것이 필요 이상이 될 때가 있어요. 컷에 감독과 배우가 갇히는 경우죠. 계속 한번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보면 본래 원했던 걸 까먹거든요. 그리곤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를 쓰죠.
-<호우시절>에서 박동하 팀장이 영수증을 체크하면서 출장비를 속이는 장면을 관객이 재밌어 한다고 들었어요. 다시 말해 정우성씨는 킬러나 무사로 분하면 심상해 보이고, 보통 회사원 연기가 희한하고 신선해 보이는 거죠. =사람들이 “정우성이 저런 걸 한다!” 그러면서 쾌감을 느꼈나봐요. (웃음) 사실 촬영할 때는 감독님한테 “형, 이거 동하가 너무 쪼잔해 보이잖아요. 그리고 누가 세상에 이래? 출장비를 누가 속여?”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진호 형이 “아, 웃기잖아. 그리고 다들 그래” 그러시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똥개>의 실험이 <호우시절>에서 성공했다고 본다”라는 얘기까지 하셨는데요. 돌아보면 이미 <러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무비>에서도 생활 속 사랑 연기를 했습니다. 그 영화들과 다르게 <똥개>와 <호우시절>이 유독 ‘실험’, 나아가 성공한 실험으로 생각되는 건 영화 전체의 양식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일까요? =이번에는 허진호의 양식이 뜻밖에 정우성의 연기를 받쳐주고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똥개>가 실험이었다는 생각은 안 해요. 다만 (대중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청춘의 아이콘’이나 ‘터프가이의 대명사’, ‘최민수를 잇다’같은 수식어와 기사들에 날 가두기 싫어서 반항했던 때였어요. 난 나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똥개>의 철민이를 연기하는 한편 반대급부로 CF에서는 반대 이미지를 부각시켰어요. 광고 이미지와 전작 <무사>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이 대화를 하러 갔는데 정우성은 스크린에서 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니까 알아들을 수 없었던 거죠.
-거기엔 시기적인 문제도 있었던 같습니다. <똥개>가 개봉한 해에 최고의 남성 CF모델로 선정됐던 기록이 있더라고요. 스타가 하는 모든 일은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 같아요. 뭐든 하면 메시지로 대중에게 전달이 되는 거죠.
나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습관
-<비트>의 민이가 갖고 있던 그 표정은 이제 나오지 않겠죠? 불안의 기운이 얼굴에서 많이 사라졌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영화 속에서 민이는 죽었지만 저는 민이를 죽일 수가 없었어요. 배우 정우성이 나이 먹어가며 잘 성장하고 성공하는 일은, 제게 있어서 <비트>의 민이를 죽이지 않고 성장시키는 것과 연관돼 있어요.
-민이에 대한 사랑이 담긴 표현이군요. 김성수 감독님이 <비트>의 오프닝 내레이션을 7, 8줄로 길게 써놓았는데 그걸 읽어본 정우성씨가 “나에겐 꿈이 없었다”로 함축해버리고 “결국 이 말을 하려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들었습니다. =포용력있는 성수 형이 받아주신 거죠. 중학교 3학년 무렵 제겐 바라보면서 가야 할 뭔가가 굉장히 절실했어요. 그게 뭔지 몰라도 너무나 갖고 싶었죠. 순식간에 변하고 허물어지는 집들, 이사해서 동네를 옮기면 또 허물어지고 내가 붙들 뭔가가 필요한데 어찌됐든 부모님에게선 받을 수 없을 거라는 게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외부에선 내가 뭘 해볼 여지가 없으니 자아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주변 애들한테 물어보면 꿈의 필요조차 못 느끼거나 아니면 공부 좀 하는 애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대답을 했고 개념없는 애들은 초등학교 때처럼 장군되겠다고 하고. (좌중 웃음)
-출연할 영화의 시나리오에 대해 느낌을 써보고 뒷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습관이 있죠? <비트> 당시 이미 대학노트에 펜으로 쓴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이야기를 상상하는 버릇은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예를 들어 외국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이미지를 보면 그 무렵 세 남매가 살았고 그들 각자는 어떤 인물이었다고 정해요. 그리고 처음과 중간, 끝을 만들고 각 부분에 에피소드를 하나씩 넣어가며 연결했어요. 시나리오의 형태를 갖춰서 쓴 건 <비트> 때가 처음이에요. 왜 <태양은 없다> 도입부를 보면 도철과 홍기를 소개하는 부분이 끝나면 화면이 정지되면서 캐릭터의 이름이 박히잖아요? 제가 써서 성수 형에게 보여주었던 시나리오에 그렇게 돼 있었어요. 괜찮았나봐. (웃음) 막연히 여기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는 나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든 건 진짜 어릴 적부터였죠. 부모님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어두운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밖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려요. 그걸 들으면서 나를 집 밖 멀리로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혹시 나는 다른 집 자식인데, 병원에서 요람이 바뀌어서 여기 와 있다는 공상은? =(미소) 그건 현실과 가정에 불만을 지닌 아이들이 하는 상상의 기본 옵션이죠. (좌중 웃음)
-지금도 연출할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면 본인을 주인공 자리에 넣어놓고 구상하실 텐데, 그렇다면 오랫동안 같은 작업을 하고 계신 셈입니다. =요즘은 오히려 펜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지금도 손으로 써요. 타자 배우는 것도 귀찮은 거지. (웃음) 연필로 써서 주면 조감독이 타자를 쳐요. 예전엔 매니저에게 “자, 시나리오 쓰러 가자” 하고는 춘추관(남양주종합촬영소 인근의 영화인 숙박시설)에 들어가서 제가 쓰면 매니저가 타자를 치곤 했어요.
학창 시절, 막연한 아쉬움은 있어요
-‘영화’가 성장기에 깊이 새겨진 단어라고 했는데, 극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봤나요? TV영화를 혼자 봤나요? =중학교 앞 만화방에서 500원인가 300원을 내면 미개봉 영화들을 비디오로 틀어줬어요. 손글씨로 빽빽이 영화제목과 출연자가 쓰여진 ‘메뉴책’을 주면 고르는 거죠. 그곳에서 <터미네이터>도 봤고 무수한 홍콩영화를 봤어요.
-부모님이 생활에 바쁘셨을 텐데, 가족 중에 누구와 가까웠어요? =아무래도 엄마랑은 정신적 고리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예뻐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밖으로 돌아다녔죠. (웃음) 상상으로 다른 공간을 돌아다니더니 급기야 진짜 몸을 집 밖으로 빼더라고요. (웃음) 사당동과 방배동 중간쯤 여중·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어느 날 누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여학교 앞이라 남자를 찾는다고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딘지 물어서 찾아갔어요. 중3이었는데 재수생이라고 뻔뻔하게 말했어요. 세상 좀 고민하는 애들은 세상도 자기를 성숙하게 본다고 착각한다니까요? 하하.
-제 생각엔 나이를 알아차리고도 가게의 번영을 위해서 고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랬을 거예요. 나중에는 사실을 알고도 보너스 10만원을 주고 그랬어요. 시급이 600~800원 할 때예요. 처음 내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하교 시간이 되면 주인 누나들이 손님 많은 큰 길가 경쟁 햄버거 가게를 기웃거리다 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전세가 역전돼 경쟁 가게의 주인과 점원이 우리 가게에 와서 두리번거리고 있더라고요. (웃음) 꽤 오래 일했어요. 아르바이트보다 고등학교를 먼저 그만뒀죠.
-고등학교도 인근이었나요? =아뇨. 경기상고는 효자동에 있었죠. “그 학교 가면 괜찮을 것 같아” 하면서 친한 친구 중 한명을 설득해서 같이 진학했어요. 선배들이 임시소집일날 와서 자기 서클로 끌어갈 신입생을 찍는데 난 눈에 띄니까 당연히 찍혔죠. 점심시간에 밴드부 선배들이 끌고 가더니 줄 세워 몽둥이로 때리더라고요. 그러다 제 순서 전에 수업종이 치니까 방과 뒤에 나오래요. 그래서 종례할 때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저랑 같이 가실 데가 있습니다. 밴드부 선배들이 저랑 할 얘기가 있다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좌중 웃음) 기다리던 선배들이 담치기해서 도망갔죠. 뒷일 걱정요? 그냥 “저 녀석 또라이다”라고 받아들이게 만든 거죠. 학기 초에 담배 피우는 애들 손들라고 할 때도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을 속이는 것도 싫고 해서요. “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랬어요. ROTC 출신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도와주겠다면서 임시반장도 시켰어요. (웃음)
-선생님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군요. 정우성씨는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공부 자체가 싫어서 중퇴한 건 아닐 거라고 짐작했는데요. =아까 말했던 같이 고교에 진학한 친한 친구가 학교에 전혀 적응을 못했어요. 선배들과 싸우고 찍혀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면서 그 친구가 학교를 결국 그만뒀어요. 그리고 저도 그 애 없이 혼자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외로웠고 한편으로는 학교에 있는다고 뭐가 될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여름방학 끝나고 엄마를 모시고 학교에 갔어요. 도저히 못 다니겠으니 다른 걸 선택하겠다고 엄마를 설득했어요. 며칠 안 걸렸어요. 거짓말하는 건 어려서부터 싫어했으니까.
-<태양은 없다>에서도 빚 받아오는 회사의 사장이 홍기(이정재)보고 나가라고 하니까 도철이가 “저도 그만둘래요”하고 나와버리잖아요. (웃음) =음,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둬서는 안될 것 같아요. 하하.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학창 시절과 그걸 함께한 친구를 잃잖아요. 그러고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배워야 할 일, 해야 할 일을 통해서만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그렇다고 필요로 인간관계를 만들진 않지만요. 내가 갖지 못한 시간 속에 있을 뻔했던 아름다운 인연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이 있어요.
-영화 동료들, 스탭들한테 ‘좋은 친구’로 여겨지는 지금 모습은 그런 결핍감 때문에 나온 것일까요? =어렵게 영화배우가 됐으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고 그들의 노고를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영화를 좀더 빨리 배웠죠.
-힘들었던 10대에 누구를 좋아하는 경험이 위로가 된 쪽인가요? 아니면 더 힘들게 했나요? =어느 순간까진 좋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짐이 됐던 것 같아요. 데이트를 하려면 끊임없이 돈이 필요하잖아요. 돈이 떨어지면 만나지 못하거나 여자친구 돈을 써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눈치가 보였어요. 첫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옆집, 아니 옆방에 사는 공장 다니는 누나였어요. 누나가 퇴근할 때까지 담에 매달려 밤늦게까지 기다렸어요. 그 다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한 가게에 오던 고3 여학생 중 한명과 친해졌어요. 좋은 감정이 싹터 사귈 수 있었을 때는 제가 용기를 못 냈어요.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대학도 갈 텐데, 나는 사회생활을 해야 했으니까요. 19살 때야 모델 아르바이트하면서 세살 위의 여자와 처음으로 데이트라는 걸 했죠.
간절히 구하고 꽉 잡은 배우의 길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몇 가지 출구 중 하나였나요? 유일한 선택이었나요? =유일한 길이었어요. 배우가 될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뭔가를 간절히 잡고 싶은 상태에서 하나를 잡으니까 그걸 아주 꽉 잡았던 거죠. 하하.
-여의도 연기학원을 찾아갔다가 대기자 줄이 길어서 그냥 돌아왔다는 일화가 있잖아요? 그건 꼭 학원에서 연기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있어서 아니었나요? =절대적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어요. 그 줄에는 회사에 다닐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몹시 특이한 차림새를 한 분들이 섞여 있었는데 보기에 그다지 믿음이 느껴지지 않기도 했고. (웃음) 그러다 모델생활하면서 SBS 1기 탤런트 공채에 응시했지만 중퇴 학력이니 떨어졌고 MBC도 떨어졌어요. KBS는 응시 안 했어요. 드라마는 MBC가 세다, KBS는 어른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쥐뿔도 없는 게 따지긴 엄청 따졌어요. 하하. 그러다가 일이 주어지면 굉장히 열심히 했고요.
-마음은 이미 스타였던 게 아닐까요? (웃음) 데뷔작 <구미호>를 이번에 다시 봤습니다. (정우성, 웃는다) 그 영화에서 정우성씨는 연기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처럼 보였어요. =내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창피하고 미안해서 쫑파티 때 스탭들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죠.
-<구미호>에서 보여준 모습과 그 다음 영화 <본투킬>의 연기 사이에는 단계의 비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경멸이 있었죠. 그래서 <구미호> 찍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가졌던 감정을 다 버리려고 했어요. 표현해야 할 감정 한 덩어리를 뇌에다 꽉 채워놓고 거기 휩싸이고 짓눌려서 영화를 찍었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작품인 <아스팔트 사나이>를 하면서 드라마니까 등장하는 가벼운 진행들, 강동석이란 지르는 캐릭터를 경험하면서 트레이닝도 됐고요.
-<본투킬>의 킬러 길은 극단적으로 대사가 없는데요. 정우성씨가 캐스팅되기 전부터 그런 캐릭터였나요? =연기 못하는 신인한테 대사를 적게 주는 것처럼 해선 안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말없이 감정을 다스리다가 한마디 툭 뱉는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연기를 못하는 신인이니 그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지겠어요? 그래서 그 한마디에 모든 힘을 다 주려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본투킬>이 아쉽고 심은하씨와 다시 한번 연기해보고 싶어요. 어찌 보면 괜찮은 그 시대의 커플인데 두 캐릭터를 다루는 감성이 너무 성인 버전이었던 것 같고 밸런스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사회의 바닥이나 아예 외곽에 독존하는 캐릭터가 단골이에요. 하다못해 재벌집 비뚤어진 아들로도 안 나오고 양복 입은 갱도 연기한 적이 없어요. =드라마는 안 한다고 알려져서 대본이 안 왔고, 영화하는 사람들은 비주류 정서가 있어서, 마이너적 캐릭터를 집어넣어 소영웅화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조직폭력배 역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을 대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반감이 좀 있고요.
-<비트> 즈음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 말끝을 흐리지 않고 단정히 맺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연예인뿐 아니라 전문방송인이 아닌 게스트들이 그런 경우가 드물거든요. 내성적이면서도 주술 호응을 분명히 하고 정리해서 말하는 습벽이 있는 것 같은데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랑 토론식의 대화를 많이 했어요. 토론한다는 것 자체가 기승전결이 명확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일이잖아요. 돌아보면 저는 ‘잘 논’ 케이스 같아요. 담배를 피운다든지 친구랑 술을 마신다든지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일은 했지만 정말 해서는 안될 나쁜 일은 한 적이 없어요. 덩치 작은 친구들의 돈을 뺏는다거나 유흥비 마련을 위해 나쁜 짓을 한다거나, 지나치게 자기 컨트롤을 잃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주변 친구들도 비슷해서 각자의 생각부터 정치문제까지 얘기하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 친구관계에서 마음이 중요하냐 표현이 중요하냐는 화제가 나왔는데, 저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친구가 표현은 늘 말로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 친구 말에 설득됐고 바른말, 예쁜 말을 쓰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말처럼 중요하고 무기가 되는 게 없잖아요. 상대를 한없이 존중할 수도 있고 깔아뭉개는 데에도 쓰이고. 특히 우리나라에는 존댓말과 반말의 계층이 존재하니까.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말투를 통해 상대 인격을 느끼는 경험을 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말하는 습관을 형성한 것 같아요.
-<비트>로 두각을 드러내고 돈을 번 다음 자기를 위해 큰 돈을 쓴 첫 번째 케이스가 뭔가요? =차를 산 거죠. 돌아다녀야 되니까 차가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빨리 스타가 됐잖아요? 모아놓은 돈에 비해 빨리 스타가 되니 씀씀이를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그럼 나는 나답게 보여야지 하고 차를 먼저 샀어요. 제일 먼저 부모님 집을 방 하나짜리에서 몇개짜리 전세로 옮겨드렸고 그 다음엔 차, 그 다음에는 제가 생활할 집을 구했어요.
-말 나온 김에 여쭤보자면 차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있죠? 속도에 대한 매혹인가요? =남자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멋진 총잡이와 멋진 장수에게 멋진 말 한필이 있어야 하듯 현대 남자에겐 차가 그런 존재겠죠. 어렸을 때는 스피드도 즐겨서 저녁때 혼자 달려나가기도 했고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어릴 적처럼 차에 매력을 느끼진 않아요. 면허는 열아홉살 되자마자 바로 땄어요. 그러고도 남의 차를 몰 때는 불안했는데 내 차라고 딱 생기니 마음이 편해서인지 언제부터 했다고 운전을 제가 어쩜 그리 잘하던지.
나로 인해 나눔이 또 생겨야죠
-2001년작 <무사>까지는 우노필름과 그 후신인 싸이더스 영화에 독점적으로 나오다시피 했어요. 그런 활동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외부에 정우성은 다른 영화 안 한다고 알려져서 시나리오가 더 안 들어왔다는 말도 나중에 들었어요. 근데 그건 용기 내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죠. 제가 귀가 열려 있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또 작업이 중단없이 이어졌어요. <비트> 끝날 무렵 <태양은 없다> 얘기가 나왔고 그 영화가 끝날 무렵 <무사> 기획이 나왔고요. <모텔 선인장>은, <비트> 후반에 허리디스크가 터졌는데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작업한다는 말을 듣고 궁금함을 누를 수 없어서 수술날짜를 잡아놓고 개런티 없이 잠깐 찍은 거죠.
-곽경택 감독의 <똥개>를 선택한 데에는 장동건씨에게 <친구>가 해준 것 같은 일을 <똥개>가 정우성에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솔직히 있었던 건가요? =아뇨. 시나리오 자체가 <친구>와는 너무 달랐어요. 물론 초기 시나리오는 철민이가 똥개를 죽인 진묵에게 복수를 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지역에서 건달이 되는 일종의 조폭 이야기였지만. 조폭 코드가 빠지면서 철 안 드는 아들과 아버지 이야기가 됐는데, 내가 아버지에게 어리광 피운 경험이 없어서 대리만족이 가장 컸던 영화였어요.
-꼭 외형에 변화를 일으켜야 캐릭터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드물게 만나는 캐릭터인 만큼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다는 의미에서 살을 찌워볼 생각은 전혀 없었나요? =처음 제의받은 원안대로라면 체중을 불려야 했고, 찌우기로 약속도 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바뀌면서 필요성이 없어진 것뿐이죠. 몸을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웃옷 주머니에 무조건 손을 찔러넣고 달릴 때도 빼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었죠.
-<비트> <태양은 없다> <유령> <똥개> <데이지>, 모두 정우성씨의 내레이션이 들어간 영화입니다. 편집본을 보면서 내레이션을 할 때 무엇에 유의하나요? =지나치게 감정에 빠져선 안되는 것 같아요. 어떤 독백도 스스로 감정에 휩싸여서 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내레이션을 듣는 관객에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줘야지 스스로 빠져서 시 낭송하듯 하면 안되는 거죠.
-<중천> 때 인터뷰를 읽다 든 궁금증입니다. 본인의 역할과 경력의 안배에 대한 고려에 앞서, 이런 기획은 한국영화에 필요하다 싶어서 캐스팅으로 힘을 보태려고 출연하는 경우가 있나요? =현실화 가능성이 보이는 시도일 때는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물론 우리 영화산업의 규모가 작아 한번의 선택이 1년 이상을 소모하고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죠. 하지만 나 정도 경력의 배우는 한국영화로부터 받은 것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죠. 최소한 내 캐릭터만 보장된다면 나로 인해 나눔이 또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요? 용기있는 친구들은 제안하기도 해요. 내 팬 중 영화를 하는 한명이 단편영화에 나를 정우성 역으로 캐스팅하기도 했어요.
-싸이더스와 오랜 인연을 끝내고 2007년 토러스 필름을 차렸습니다. 배우로서 경력과 힘을 영화연출과 사업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장기적인 그림이 있겠죠? =토러스는 싸이더스와 헤어지기 전에 만들었어요. 소속사와 별개로 제작프로덕션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저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후배들에게 본보기로 남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있고요. 배우로서 활동은 가장 큰 본분이고요. 제가 출연하는 작품에 토러스 공동제작을 옵션으로 거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배우로서 나를 과도하게 이용하는 거죠. 토러스 필름은 내가 연출할 영화를 제작하는 한편 다른 작가, 감독을 고용해 개발한 작품을 제작하게 될 거예요. 작품 개발에 상당히 투자했고 아깝다고 생각지 않아요. 제 첫 번째 연출작은 생각 중인 멜로드라마가 있어요. 액션영화도 한편 써놓았고 다른 작가에게 맡겨서 쓴 재밌는 구조의 누아르가 한편 있고요. 이르면 11월 초에 들어갈 다음 출연작은 <검우강호>라는 무협물이 될 것 같아요. 투자가 다 이뤄져서 한국에서 투자할 여지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몸으로, 눈으로 소통하는 방법
-연기의 한 분과로서 액션 연기에 있어서 정우성씨는 한국 최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액션연기만큼은 지기 싫어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아 자연히 부상도 잦다는 평이 있는데요. =액션에 욕심이 많다고 보는데, 실은 아니에요. <구미호>를 할 때 저를 대신해 스턴트맨이 차에 치이는 장면을 처음 봤어요. 아무리 직업이지만 내 옷을 대신 입고 직접 맨땅에 내리꽂히는 연기를 한 거잖아요. 너무 미안하고 너무나 안쓰럽고 챙겨주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스턴트맨이 몸을 아끼지 않고 전부를 걸고 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대역이 있다는 이유로 대충해선 안돼요.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들도 흥이 나서 더 열심히 해줘요. 몸의 대화죠. 배우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대신 와이어줄 한번이라도 더 당길 때 그저 각자의 일이 아닌 공동작업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도 높아져서 안전해져요.
-액션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불어넣는 아드레날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배우가 육체적 한계를 순간적으로 뛰어넘는 마법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캐릭터를 빌려 스스로 세뇌를 해요. 나는 이런 능력이 있다, 할 수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어버리죠. 그 순간 의심하면 위험해져요. 달리는 말에서 총을 돌리다 낙마하면 건물 12층에서 추락한 충격이 오는데 그럼 죽는 거잖아요? 어떤 의심도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일상이 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호우시절> 촬영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 있지 않는 동안 이러저런 일상적 행동을 할 때도 정우성씨 모습은 완성된 포즈처럼 보였어요. 왜 웃으세요? (웃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싶어서요. (웃음) 모델 생활을 하면서 워킹과 포즈 취하는 법을 배워서 사진을 많이 찍히기도 했고 배우하면서 광고 촬영을 많이 한 편이라 직업병적으로 몸에 밴 게 있는 것 같아요. 멋진 포즈를 정해놓고 필요할 때 이용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단점은 있어요. 일본의 한 사진작가가 배우로서 정우성을 찍고자 했는데 빈틈을 찾을 수 없어서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작가에 따라서는 소통문제도 있죠. “자연스럽게 팔을 올려주세요” 이러면 저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그의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거든요.
-중국어는 얼마나 구사하나요? =베이징어를 생존 언어 정도 해요. 우리가 한자어를 사용하니까 비슷한 단어가 많아요. 중국어를 익히게 된 것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려는 습관에서 온 걸 수 있어요. 중국 배우, 스탭들과 일하면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으려고 애쓰다보니 <무사> 끝나고 나서는 중국어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던 제가 말을 제일 많이 배웠어요. 어찌보면 중국어 대사가 스트레스였던 다른 분과 달리 여유가 있었던 덕분일 수도 있죠.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인터뷰 말미에 리포터가 가벼운 포옹을 부탁하자 “전 이렇게 안는 게 좋아요” 하면서 뒤에서 안는 걸 보았어요. 그 자세가 주는 편안함이 있나요? =등 뒤에서 안으면 상대를 더 깊이 받아 안는 느낌이죠. 신체 구조상으로도 그렇잖아요.
-곽경택 감독님이 정우성씨를 처음 만났을 때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고 회고하신 적이 있어요. 자기 눈빛을 모르지 않을 텐데 대화할 때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어요. =바라봄으로써 눈으로도 듣고 귀로도 듣고, 상대가 이야기할 때 표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남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특히 외국 나가서 통역이 낀 인터뷰를 할 때 유용해요. 통역이 전해주는 질문을 귀로 들으면서 그 질문을 던진 기자의 눈을 바라보면 소통에 큰 도움이 돼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DVD에서, 말이 정우성씨를 따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말이라는 동물과 특별한 교감의 경험이 있나요? =말은 사람의 심장 박동에서 나오는 주파수를 바로 간파해요. 자기를 무서워하는지, 해치려는지 알죠. 그리고 말은 무엇보다 나의 의지대로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수 있는 동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나의 운동신경과 그의 운동능력을 일치해서 움직이는 건데 그건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느낌이에요. 내 몸과 능력의 연장인 거죠. 그리고 말의 턱밑살을 만져보면 엄청 부드러워요. 찹쌀떡처럼 보송보송하면서 찰랑찰랑하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찍을 때는 도원(정우성)의 말을 한번 타보고 그 속도에 깜짝 놀랐어요. 무리지어 달리는 장면인데 이 녀석이 너무 빠르다보니 모든 말을 추월하고 그가 일으키는 먼지가 내 시야를 가렸죠. 다시 테이크가 들어가, 내가 흥분할 대로 흥분한 채 다가가니까 말이 내 심장 박동을 느끼고 깜짝 놀라 뒷걸음치더라고요. 그래서 내 심장도 다스리고 말을 다독였어요. 폭파신에서는 말이 극도로 불안해하는데, 들릴지 안 들리지 몰라도 마음으로 손끝으로 끝없이 말에게 이야기해요. 괜찮아, 괜찮아, 난 널 해치지 않아.
追伸 스물네살의 <비트>, 스물다섯살의 <태양은 없다>, 스물아홉살의 <무사>. 정우성의 전작들을 복습하다가 자문했다. 만약 김성수 감독이 정우성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한 배우의 유년부터 중년까지를 담아낸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앙트완 드와넬 시리즈’ 같은 흥미로운 연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성수 감독은 나의 공상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평생 변화해가는 모습을 찍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정우성씨는 분명 그중 한 사람입니다.” 아마 그 영화들은 의지할 곳 없는 소년이 배우로 성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주인공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김성수 감독이 당연한 사실 하나를 환기시켜주었다. “고독을 경험하고 행복해진 사람의 모습은, 원래 행복한 사람이 더 행복해진 것과는 다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