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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관객은 예측 가능해지는가

해외 평론가의 눈- <박쥐> 같은 어둡고 어려운 이야기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나

한국영화산업과 관객은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연인 사이 같다. 여전히 서로를 좋아하고 싸우는 일도 거의 없지만 놀라우리만치 서로를 오해하곤 한다. 멀리서 지켜보건대 미국 영화산업과 관객의 관계는 훨씬 더 단순해 보인다. 할리우드는 잘나가는 스포츠 자동차를 타고 값비싼 선물과 전율로 연인을 유혹한다(물론 가까이에서 보면 이 관계 역시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충무로는 연인에게 무엇을 제공하면 좋을까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관객의 예측 불가능한 취향이 한국영화 전체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왔다. 몇년 전 홍콩 감독 진가신을 인터뷰할 때 그는 소양 높은 관객을 가진 한국영화가 부럽다고 했다. 관객이 한 종류의 영화만 좋아하면 감독들은 그 스타일로만 영화를 만들고 그 나라의 영화는 그만큼 일률적이 될 것이다. 반대로 관객의 취향이 예측 불가능하면 감독들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

<해운대> <국가대표> 성공, 놀랄 것 없어

지난 십년간 한국 관객은 한때 고예산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은 돈만 버리는 미친 짓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반대로 이것이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2002년 한국 관객은 흥미로운 주제의 하이 컨셉 코미디영화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2003년에는 갑자기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 등이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다.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실제로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한국 관객의 취향이 예측 불가능했을 뿐이다.

최근 몇년간 한국영화는 놀라운 영화를 내놓지 못했다. 슬프게도 요즘 한국영화들은 대개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흥행 성적을 놓고 보면 계속 기분 좋은 이변과 실망스러운 결과들이 나타났다. <워낭소리>는 극단적인 예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와 <과속스캔들>은 모두 그 흥행이 예측 불가능했다. 다른 한편으로 <고고70> <님은 먼곳에> <모던보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모두 성공 잠재력이 있었음에도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그렇다면 2009년은 어떠한가? 올여름 한국영화는 거대한 파도와 스키점프로 그 나름의 전율을 선사하면서 어느 정도 인기를 회복했다. <해운대>의 눈부신 성공은 사실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재난영화이며(<괴물>을 재난영화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재난영화에 관심이 없는 관객조차 한국의 가장 유명한 해변이 거대한 파도에 삼켜진다는 데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나쁜 입소문이 영화를 쉽게 가라앉힐 수도 있었겠지만, 윤제균 감독은 파도가 해변을 덮치기 전 영화의 초반 80% 동안 적당한 코미디와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을 잡아놓는 능력을 보여준다.

<국가대표> 역시 어째서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는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네이버에 올라온 천문학적으로 높은 관객 평점은 다소 의외이다. 이 영화는 너무 긴데다 너무 명백한 방식으로 관객을 이끌고 간다. 그러나 공중으로 점프하는 스키선수들의 모습에서 영화적인 매력을 부인할 수 없으며, 마지막 경쟁은 전율감이 넘친다. 스키선수들의 대조적인 개성도 잘 부각되었다. 그러니 이 두 영화의 성공은 그다지 놀라울 게 없다.

최고작이 받는 무관심과 적대감에 대한 우려

올해 초 <씨네21>이 나를 포함한 평자들에게 최고 흥행 예상 영화를 꼽아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 <마더>나 <박쥐>를 꼽았다. <마더>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박쥐>는 23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할리우드가 아닌 영화산업에서 만든 영화로 이 정도의 관객 동원은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 그러나 영화 투자자들은 더 큰 규모의 관객 동원을 예상했다. 한국 관객이 한국 최고 상업작가 감독들에게 등을 돌리고 만 것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이 영화들 자체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두 영화는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처럼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들은 더 어둡고, 영화적으로 사로잡는 힘이 다소 약하다.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의 어두운 순간들은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 속에 실려 짧고 강렬하게 지나가지만 <박쥐>와 <마더>의 어두운 기운은 영화 내내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다소 어두운 기운을 지닌 영화평론가로서 영화의 이런 면들이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어두움이 관객의 열기를 가라앉혔을 것이다.

<마더>

<박쥐>

어떤 면에서는, 다른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이 영화산업에 더 긍정적일 수도 있다.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만 성공한다면 영화투자자들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무시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강형철(<과속스캔들>) 또는 신태라(<7급 공무원>)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이 만든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은, 새로 경력을 시작하려는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영화비평가로서 한국영화의 최근 최고작들이 관객의 무관심과 적대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불신지옥>을 본 것은 행운이었다. 영화관에 있던 다른 다섯명의 관객도 나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훌륭한 데뷔작이다. 이용주 감독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이용해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뛰어났으며 배우들의 연기를 조율하는 데도 재능이 있는 듯했다. 상업영화계는 이처럼 재능있는 감독과 조우하게 되면 반드시 이런 감독을 붙들어두어야 한다. 행여나 이번 데뷔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그의 경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찬욱은 이제 한국을 떠나야 할까

인정하건대 나는 내가 <박쥐>의 팬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다만 한국에서 그 영화가 받은 적대적인 반응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관객이 왜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영화에 대한 편파적이고 지나치게 험악한 공격은 이해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도 <박쥐>는 엇갈린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인터넷 리뷰를 읽어보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 흥행 성적은 작은 규모의 배급치고는 나쁘지 않다. 내가 박찬욱이라면 다음 영화를 다른 나라에서 만들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다. <마더>는 이제 막 미국에 배급권이 팔렸으니 미국과 다른 외국 관객의 반응을 지켜 볼 일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흥행 성적이 나쁜 일이 새로울 것은 없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조금이라도 심각한 예술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를 만들려면 살아남기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표면적으로 올해 한국영화 흥행 성적을 놓고 영화평론가들이 염려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 아래에서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제 한국 관객은 예측 가능하게 되어가는가, 어둡고 어려운 이야기에는 모두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마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아직 어떤 답을 내기에도 너무 이르고,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