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코미디의 내용이 다 똑같다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혹은 그 비스무리한 것)에 골인한다’는 이야기의 뼈대 자체가 똑같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연애담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듯이 로맨틱코미디의 세계도 여러 가지 서브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프로포즈>처럼 여러 유형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영화들도 있다.
1. 마님 개과천선형
<환상의 커플>(1987), <노팅힐>(1999), <프로포즈>(2009)
도도한 마님이 하찮은 남자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 유형. 여기서 마님은 영화배우(<노팅힐>), 갑부(<환상의 커플>), 여자 상사(<프로포즈>) 등 다양하다. 이 유형은 생각만큼 자주 영화화되지는 않는다. 도도한 마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관객이 적기 때문일까. <프로포즈>는 아래 설명할 ‘적과의 동침형’과 ‘귀향 온고지신형’을 모두 참고한 작품이다. 좀더 모던한 마님 개과천선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캔디 신분상승형
<귀여운 여인>(1990),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러브 인 맨하탄>(2002),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2004)
미천한 캔디형 주인공이 결국 신분이 높은 남자의 마음을 획득한다는 이야기. 로맨틱코미디계에서 가장 전통적인 이야기지만 21세기에 반복하기에는 지나치게 구식이라 <귀여운 여인> 이후 볼 만한 작품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제니퍼 로페즈같은 여배우를 호텔 직급이라고 우기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3. 적과의 동침형 <프렌치 키스>(1995),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유브 갓 메일>(1998), <투 윅스 노티스>(2002),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2007), <사고친 후에>(2007),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2008), <프로포즈>(2009), <어글리 트루스>(2009)
요즘 가장 인기있는 로맨틱코미디 유형. 성격도 성향도 판이하게 다른 남녀가 끝없이 툭탁거리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전통적인 스크루볼코미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발전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멕 라이언과 2000년대의 샌드라 불럭이 이 유형을 도맡아서 연기한 대표적인 여배우들이다. 로맨틱코미디 중에서도 비교적 덜 느끼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장점이다.
4. 고진감래 천생연분형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케이트와 레오폴드>(2001), <세렌디피티>(2001), <우리 사랑일까요?>(2005)
이 유형의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알고 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운명적으로 맺어지도록 하늘에서 점지한 사이라는 걸. 주인공들이 수많은 우연의 고난을 뚫고 결국 어떻게 사랑을 쟁취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 소개한 6가지 유형 중에서 ‘코미디’적인 요소가 가장 덜한 동시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5. 귀향 온고지신형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 <스위트 알라바마>(2002), <프로포즈>(2009)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차가운 도시 여자, 내 남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형. 성공적인 도시형 커리어우먼이던 여주인공이 여차저차해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서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따뜻한 시골형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가장 미국적인 로맨틱코미디의 형태지만 한국에서도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라는 성공적인 변용이 있다.
6. 판타지 권토중래형
<사랑의 블랙홀>(93), <왓 위민 원츠>(2000), <케이트와 레오폴드>(2001),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2004), <첫키스만 50번째>(2004)
종종 로맨틱코미디에도 판타지나 SF적인 설정이 양념으로 첨가된다. 주인공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케이트와 레오폴드>), 시간에 발이 묶이거나(<사랑의 블랙홀>),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거나(<왓 위민 원츠>), 말도 안되는 병을 얻는다(<키스만 50번째>). 물론 이 모든 건 주인공으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려는 시나리오 작가의 농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