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늦여름·초가을 시즌이 온다. 이번주 개봉영화들의 국적을 한번 살펴보자. <코코 샤넬>은 전설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젊은 날을 그리는 프랑스영화다. <블랙>은 핼렌 켈러 이야기를 재해석한 인도영화다. <조용한 혼돈>은 난니 모레티가 각본·연기를 맡은 이탈리아 드라마다. 로맨틱코미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니아 바르달로스가 출연하는 할리우드영화 <나의 로맨틱 가이드>도 있다.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은 이미 해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입소문이 자자했던 걸작이다. 이번주는 다양한 국적의 수작들을 골라먹는 재미가 좋다.

물론 언제나 폭탄은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그루지3> 말이다. 제작자 샘 레이미는 왜 시효 지난 일본 호러영화의 판권을 계속해서 우려먹는 걸까. 할리우드만 욕할 것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달 전에 개봉한 졸작 <주온: 원혼의 부활>도 있었다. 가야코를 둘러싼 삽질은 할리우드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진짜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원한다면 개봉관에서 내리기 전에 <불신지옥>이나 보러 가시라. 간만에 등장한 고품격 한국 호러영화 돕는다고 생각하시고.

이주의 대사

에띠엔느 발장/ “(비꼬듯이) 코코는 심-플한 걸 좋아하지.” 보이 카펠/ “저도 심플한 게 좋습니다. 세련되다고 생각합니다.” -<코코 샤넬>에서 샤넬을 사랑하는 연적 발장과 카펠의 대화-

남자들은 샤넬을 싫어한다. 샤넬을 좋아하는 여자도 싫어한다. 옷을 사느니 DVD를 한장 더 사겠다는 영화잡지 독자라면 샤넬 매장에만 들어가도 경기를 일으킬 거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샤넬은 여성을 코르셋과 질질 끌리는 드레스에서 해방시켰고, 값비싼 진짜 보석 대신 인조 보석을 달게 만들었으며, 화려한 색채의 고급 드레스가 아니라 값싼 저지로 만든 검은색 원피스를 입게 만들었다. 만약 샤넬이 없었더라면? 남자들은 핸드백 정도가 아니라 코르셋과 깃털 모자와 진짜 보석이 달린 육중한 드레스를 계절마다 여자친구에게 선물해야 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