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AF가 건방을 떨기로 했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의 김성주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SICAF 2009의 변화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성주 프로그래머가 이렇게까지 얘기한 데는 그만큼 올해 프로그램에 ‘자신’있기 때문이다. 또 공중파나 투니버스 등 만화채널이 하는 일 말고, ‘영화제’가 할 일을 제 몫 다해 하겠다는 다짐에서다. 얼마나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는지, 그 세계는 얼마나 드넓은지 제대로 보여줄 참이다. 구호는 ‘다양성’이다. 일본과 유럽 애니메이션을 넘어 이제껏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남미와 중동의 애니메이션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만남 등 표현의 다양성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아시아 최대 애니메이션 축제답게 작품 편수도 역대 최다인 1600여편. ‘아시아 최대’라는 수식어에 안주하기 싫은 열세 번째 SICAF는 7월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다(만화 전시 행사는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개최).
영화제는 개막작, 공식경쟁프로그램, 특별초청프로그램으로 나뉜다. 개막작은 온 가족이 유쾌하게 웃으며 볼 만한 <월레스와 그로밋: 빵과 죽음의 문제>로 선정됐다. 순수하지만 멍청한 월레스와 영리한 그의 애완견 그로밋이 이번엔 ‘최고의 빵집’을 연다. 영국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아드만의 신작으로 전편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공식경쟁프로그램 장편 경쟁부문에선 5편의 영화가 경합을 벌인다.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를 아름답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2008년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5인의 감독이 가수 이적의 단편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제불찰씨 이야기>, 아빠를 찾아 신비의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소녀 미아의 모험기 <미아와 미고>,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소년 브랜든이 펼쳐나가는 신비로운 이야기 <켈스의 비밀>, 체코 최초의 3D장편애니메이션으로 중세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는 <염소 이야기-오래된 프라하의 전설> 이상 5편이다.
아무래도 SICAF 2009의 야심을 읽히는 부문은 특별초청프로그램이다. SICAF 초이스의 ‘하이브리드’ 섹션이나 SICAF 인물포커스의 ‘조안나 퀸 특별전’, ‘프리츠 판 특별전’, SICAF 패밀리의 ‘마이클 스폰의 가족극장’, SICAF 시선의 ‘로봇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초청전’ 등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다. <머털도사와 108요괴> <똘이장군> 등 한국의 고전애니메이션도 상영된다. 특히 하이브리드 섹션에선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가 결합돼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발산하는 작품들을 만난다. 영국의 젊은 감독 매튜 워커의 <작은 얼굴>이 좋은 예다. 일본의 로봇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SICAF가 주목하는 스튜디오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가토 구니오 감독의 <작은 벽돌로 쌓은 집>이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로봇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상큐 마이 펜슬”이라는 귀여운 수상 소감을 남긴 가토 구니오 감독은 이번 영화제 기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또한 이와이 순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해 화제가 된 <바통>의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 <블리치: Fade to black-너의 이름을 부른다>의 제작자 하기노 겐도 방한한다. 이 밖에 주말 저녁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야외상영회가 열린다.
웃고, 놀라고, 감탄하고… 강추작 빅 4
이와이 순지표 애니메이션? <바통>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 감독과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영화 <바통>이 국내 첫 상영된다. 이와이 순지가 각본과 제작에 이름을 올렸고, 기타무라 류헤이가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214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SF판타지다. 행성 ‘아벨’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계다. 어느 날 승객 한명이 행성 침입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우연히 그 조각난 시체를 발견한 아폴로는 그의 몸속에 내장된 메모리-사이퍼 OS를 빼내 자신의 몸에 이식한다. 그 순간 아폴로의 몸속 회로도 끊긴다. <바통>은 유기적으로 얽힌 캐릭터들의 관계가 플롯을 만드는 작품이다. 실사 촬영을 바탕으로 한 로토스코핑 기법이 사용됐다. 비주얼이 심심할 수 있지만 오히려 리얼한 판타지의 느낌이 신선하다.
<블리치> 시리즈 팬이라면 <블리치: Fade to black-너의 이름을 부른다>
<블리치>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리즈의 극장판 3기 <블리치: Fade to black-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극장판 1기, 2기에 다소 실망한 사람들을 돌려세우기에 충분하다. 소울 소사이어티의 중심, 정령정이 붕괴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소식을 들은 이치고는 소울 소사이어티로 향하지만 렌지를 비롯해 호정13대 전원은 오히려 이치고를 공격한다. 렌지 일행에 쫓기는 몸이 된 이치고는 필사적으로 루키아를 찾아 나선다.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심오하고 독특한 세계관, 사신들의 현란한 무술, 폭력의 세계는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블리치> 시리즈는 어느덧 <나루토> <원피스>와 더불어 현재 일본의 3대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밋, 빵집을 열다 <월레스와 그로밋: 빵과 죽음의 문제>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도둑>에 이은 <월레스와 그로밋> 중편 네 번째 작품이 상륙한다. SICAF 2009 개막작으로 선정된 <월레스와 그로밋: 빵과 죽음의 문제>는 전작의 유머와 풍자를 그대로 떠안았다. 웃음에는 더욱 힘을 실었다. ‘최고의 빵집’이라는 가게 문을 연 월레스와 그로밋. 되는 일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그 시점 마을에선 빵집 주인만을 노린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빵집 주인 월레스는 빵 광고 모델에만 푹 빠져 있다. 우리의 영리한 그로밋은 자신의 주인이자 영원한 파트너 월레스를 쉽게 연쇄살인범의 손에 내어줄 리 없다. 2008년 크리스마스에 영국 <BBC>를 통해 첫 방영돼 1400여만명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빵과 죽음의 문제>가 이번엔 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조용하게 정말 웃긴 코미디 <작은 얼굴>
영화제 김성주 프로그래머는 “상영작을 통틀어 최고는 매튜 워커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1983년생의 영국 감독 매튜 워커는 전작 <존과 카렌> <우주비행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애니메이션계의 떠오르는 샛별. 단순한 캐릭터, 조용조용한 대사, 그 상황 속에서 키득거리게 되는 웃음. 이것이 매튜 워커표 애니메이션이다. 김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조용하게 정말 웃긴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고 싶다면 <작은 얼굴>을 강추한다. <우주비행사>의 두명의 우주비행사, <존과 카렌>의 펭귄과 북극곰에 이어 <작은 얼굴>에선 기차를 놓친 나단과 둥근 얼굴에 기다란 팔과 다리를 가진 노란 생명체가 짝을 이뤄 나온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합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