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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학교가 무서울 수조차 없다니…

시대착오적인 ‘10주년 기념작’ <여고괴담5: 동반자살>에 대한 한숨

‘10주년 기념작’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워 제작된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은 시대착오적이다. 단지 전작의 답습이라든지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라든지 그런 이유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 공포영화사의 새로운 혈맥을 찾아낸 <여고괴담>(1998)에서 학교는 무서운 곳이었다. ‘늙은 여우’와 ‘미친개’가 학생들을 닦달하는 학교는 서울대만이 목표가 될 수 있고 2등은 필요없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폭력과 성희롱이 자행되고 차별도 공공연히 표출되었다. 서열화된 학생들은 같은 레벨끼리 어울려야 했고 교사는 이를 부추겼다. 즉, <여고괴담>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와 속편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의 문제의식을 10년 세월 끝에 공포라는 장르의 문법으로 전유한 영화였다.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의 학력 격차가 심화되고 8학군이 교육특구로 공고화된 90년대 한국 교육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이 영화에서 공포는 거스를 수 없이 꽉 짜인 구조 안에 들어앉은 개인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90년대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학벌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구조가 외부자의 틈입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폐쇄회로의 출입구를 봉쇄하는 때였다. 학교라는 폐쇄회로 속에서 희생당한 존재는 여학생-귀신이 되어 복수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아직 학교는 애증의 대상이다. 여학생-귀신 진주가 9년이나 학교를 맴도는 건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련은 교사가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온 옛 친구의 입을 통해 실낱같은 희망의 목소리로 화답받는다. “너도 이제 늙은 여우가 되어갈 거야”라는 진주의 말에 옛 친구는 자신은 다르다고 노력할 테니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미련과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공포가 호소력을 갖게 한다. 타자의 존재에 의해 발생되는 공포에서 타자성에 대한 인식은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타자성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는 봉쇄의 징후들이 속출하지만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 학교는 공포의 공간일 수 있는가?

시리즈 정체성 갈수록 흔들흔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이하 <여고괴담2>)에서 학교는 폐쇄회로의 성격을 띤다. 80년대 분위기를 간직했던 1편의 학교는 1년 만에 세련된 공간으로 탈바꿈되는데 이는 <여고괴담2>에 그려진 학교가 80, 90년대를 표상하는 게 아니라 다가올 세기를 예시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2편에서는 시리즈의 첫편에서 첨예한 이슈로 제시된 교육현실은 뒤로 물러나고 동성애라는 사회적 금기가 과잉 억압된 주요 문제로 떠오른다. 학교는 금기를 어긴 여학생이 타자화되고 스스로 존재를 지워버리는 공간이 된다. 밀폐된 공간으로서 학교는 손쉽게 타자를 추방하기도 하지만, 귀신으로 귀환한 타자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조정당할 수 있는 취약한 공간이기도 하다. 귀신이 된 효신이 유리로 된 돔 천장을 통해 봉쇄된 학교 안을 혼비백산 몰려다니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장면은 닫힌 사회가 초래할 공포의 극단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다.

흥행에서는 전작에 훨씬 못 미쳤지만, 이런 면에서 <여고괴담2>는 강한 사회적 비판의식을 탑재한 작가적 공포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여고괴담> 3, 4편은 공포영화의 장르 관습적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새로운 관습의 창출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는 브랜드화된 시리즈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 두편에서 학교는 욕망이 억압되고 분출되는 장소로 차용되었을 뿐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지점에 다다르진 못했다. 이 두편이 비평 혹은 흥행에서 전작보다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교육현실이라는 씨줄과 영화적 설정이라는 날줄이 구조적으로 촘촘하게 묶여서 공포를 유발케 하는 브랜드다. 따라서 교육현실이 희석되고 장르관습이 강해질수록 브랜드의 정체성은 흔들리게 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아킬레스건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입시지옥과 학벌사회라는 소재를 매번 되풀이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현실이 영화의 표류를 부추기고

이 시리즈가 아니라도 학교의 비리는 조폭코미디 <투사부일체>(2006)나 저예산 공포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사>, 2008) 같은 영화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전시되었다. 물론 여기에 여고생-귀신 같은 건 없다. 특히 <쏘우>식 퍼즐게임을 벌인 <고사>의 흥행성공은 <여고괴담5>의 부진과 비교해 생각해볼 만하다. 성매매, 뒷돈 거래, 성적 조작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 까발린 <고사>의 예상외의 성공은 학교를 바라보는 이 시대의 태도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제 귀신 같은 존재가 출몰할 수도 없는 허깨비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고사>가 보여주는 학교는 믿음직한 교사가 바로 비리의 주범으로 돌변하고, 귀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사람이 현실적인 보복을 감행하는 곳이다. 돌아보면, 여고생-귀신이 9년씩이나 머물렀던 학교야말로 추억의 공간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여고괴담>의 절정은 여선생의 목을 매달고 흰 커튼에 휘감긴 남선생을 칼로 난자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학생들이 느꼈을 죄책감 섞인 카타르시스는 이제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는 성적표를 받는 곳에 불과하고 정작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현실에서 교사에 대한 복수는 무의미기 때문이다. 실수가 등수를 판가름하는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귀신이 될 여력도 없어 보인다. 억압된 것의 귀환인 귀신은 자신을 억압한 대상에 대한 복수심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이 경쟁체제를 내면화하여 적극 동참하거나 귀신으로 귀환할 에너지조차 없이 낙오되어버린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거대한 사회는 여학생-귀신이 대적하기에 너무 크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고괴담5>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리즈 전작들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버지와 남자친구를 등장시킨다. 거기에 성당(학교 안에 있는 것으로 나오긴 하지만), 수영장, 클럽, 학원이라는 학교 밖 공간을 끌어들이고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이라는 사연도 첨가했다. 철저히 학교라는 공간의 중심을 향해 작동하던 구심력을 학교 밖과 가정이라는 또 다른 공간을 향한 원심력으로 전환시킨 이 모든 설정은 시리즈 정체성을 해체할 뿐 시리즈를 갱신할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폐막식 같은 <여고괴담5>가 전해주는 진짜 공포는, 학교가 억압된 것들이 귀환하는 장소조차 될 수 없는 이 사회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엄습한다. 학교가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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