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도 <박쥐>의 찬반은 계속된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14일 오후 4시30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칸영화제에서 기자 시사를 가졌다. 격정적인 호평은 드문 편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박찬욱 영화라는 평가와 실망스러운 작품이라는 평가가 확연하게 나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매일매일 국제 기자단의 평점을 공개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의 평균 점수는 2.4점. 지금까지 공개된 네 작품 중에서는 제인 캠피온의 <브라이트 스타>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순위다. 별 4개 만점에 영국의 <사이트 앤 사운드>는 별 둘. 프랑스의 <포지티프>는 별 세개를 줬다. 프랑스권 데일리지인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 순위는 그보다 조금 박한 편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별 두개, <르몽드>는 최저 점수인 폭탄을 내렸다. 먼저 호의적인 평가를 살펴보면, <할리우드 리포터>는 "채워지지 않는 포식욕의 정열적인 표현"이라고 평했다. <르 파리지엥>은 "웃기지만 거칠고,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생경하고 얽매인데 없는 UFO같은 작품"이라고 호평을 내렸다. <리베라시옹>은 "박찬욱 영화는 우리를 언제나 기대치 않은 장소로 이끌고 간다. <박쥐>는 종종 관객을 길가에 버리고 갈 듯 위협하다가도 개그의 형태를 띈 가짜 단서로 우회했다가, 결국 다시 관객을 잡아채온다"고 평가했다. 반면 박한 평가도 많다. <르몽드>는 "방자하고 멍청하며 우스꽝스러운 괴기주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악평을 쏟아부었고 <레 인록>(Les Inrocks)은 "아주 빨리, 너무 빨리 모든게 망쳐지고 만다. 그리고는, 이 비천함에 대한 자기만족적인 묘사에서, 갑자기 튀어 보이려는 양식과 과시적인 거창함, 그리고 불변의 거만함이 다시 표면위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버라이어티>는 "진정한 영감의 수혈이 심각하게 필요한, 지나치게 길고 음침한 코미디"라며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같은 클래시한 영화를 만든 감독의, 놀랍도록 뉘앙스가 부족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박쥐> 공식 기자회견 전문
-영화가 뱀파이어와 기독교를 결합시키고 있는데, 기독교 미사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나눠마시는 의식을 한다. 그렇다면 모든 기독교인은 일종의 뱀파이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가? =박찬욱/ 그래서 그런건가. 프랑스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여기 개봉제목이 그냥 <Thirst>가 아니라 뒤에 ‘이것이 나의 피다’가 더해져있더라. 그런 뉘앙스가 프랑스에서는 연상이 되는 모양인데 굳이 그런 생각으로 연결시킨 것은 아니다. 물론 그같은 연상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미사 집전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농담같은 커멘트에 불과하다. 이 작품의 본질은 아니다. -주인공의 직업을 신부로 설정하였는데, 이 신부가 뱀파이어이기도 하고 신부의 섹스 장면도 많이 나온다. 최근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에 대해서도 바티칸은 항의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는 바티칸의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가? =톰 행크스 영화만큼이나 관심을 가져주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신부인 이유는, 신부에 대해 조롱하거나 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내가 가장 존경심을 가진 직업이기 때문이다. 가장 휴머니스트적인 인물을 찾다보니 신부를 택하게 되었다. 결국 좋은 일을 하려다가 남을 도우려다가 남의 희생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뱀파이어가 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겪게 될 고통과 도덕적 딜레마는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 이런 세팅을 위한 것이다. 영화를 진지하게 봐주신다면 그런 부분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배우 두 분에게 질문을 드린다. 영화에서는 잔혹한 장면들과 많은 피가 등장한다. 영화 촬영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송강호/ 나는 끔찍하게 누굴 죽이는 장면이 없으므로 후유증이 올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이 질문은 김옥빈 씨가 우선 답변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옥빈/ 그런 장면들 때문에 딱히 연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던 건 아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다른 영화에서 피가 나올 때마다 왠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에서는 매우 흥미로와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어떤 관객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인가? =박찬욱/ 가장 감각적인 작품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래서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스토리 진행은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했다. 대신 눈, 귀 때로는 냄새나 촉감까지도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으로 하나하나 느껴지는 영화를 기대했었다. 영화를 보시면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의 묘사에서 그가 소리, 냄새, 눈으로 보는 모든 감각들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순간의 몽타쥬 씬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보통 인간을 한참 뛰어 넘는 감각들이 홍수처럼 주인공에게 몰려오고, 그때문에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의 그런 감각. 그 장면이야말로 내가 관객에게 느끼도록 하고팠던 것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의 정사는 단지 그냥 소란스러울 뿐이 아니라 아주 서툰, 이상한 자세들이 나온다. 이유는 뭔가? 그리고 뱀파이어의 송곳니가 없다. =박찬욱/ 그렇게나 이상한 자세였나? 남자는 성경험이 전혀 없고 여자는 자기 말에 의하면 거의 처녀나 다름없다고 한다. 섹스에 능숙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평범한 자세로 만들려 했다. 어쩌면 두 주인공이 서로의 손과 발가락을 애무하는 장면에서 그런 인상을 가졌을 것도 같다. 매일밤 지옥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 달리는, 그래서 거칠고 갈라진 발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가진 남자 주인공은 여자의 발 앞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애무를 한다. 성경에도 나오는,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송곳니에 대해서는, 10년전 구상 자체부터 그랬었는데, 영화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단지 또 하나의 뱀파이어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뱀파이어라는 아주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상을 좀 더 현실적이고, 거의 의학적으로 보일만큼 일상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 보다는 전통과 역사 속의 클리셰를 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뱀파이어 영화하면 떠오르는 긴 망토, 고성, 십자가, 마늘, 송곳니 등등을 빼고 만들고 싶었다. -송강호씨가 한국에서 한 인터뷰에서 <박쥐>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의 영속성>이라는 작품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고 말했고, 그래서 박찬욱 감독님을 박달리라고 불렀다던데, 감독은 달리의 작품에서 특별히 영감을 받은 측면이 있는가? 그리고 이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의 블로그를 보면 신발에 대해 중요성을 부여하고 이런 저런 의미를 찾더라. 신발의 어떤 신화적 의미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는가? =박찬욱/ 특별히 그 작품에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초현실주의 예술에 매료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면, 스토리 등을 만들 때도 초현실주의적인 부조리함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말을 안해도 아는구나. 뭔가 통하는 게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신발에 대해서 신화적,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지만 그건 비평가나 관객의 몫일 것이다. 특별한 해석을 제안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그저 극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의미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신발은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제공하는 안식과 배려이기도 하고, 신발을 통해서 죽는 순간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신발은 이동수단인데 둘이 죽은 후 남은 신발은 이후 어디로 갈까, 아니면 그냥 그자리에 남아있을까 같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인상과 상상해 볼 수 있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뱀파이어에 대해 가지는 당신의 매혹은 왜 인가. 뱀파이어가 상당히 인기있는 소재가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찬욱/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조금 다른 포인트다. 그 동안 뱀파이어가 인기있는 소재였다면, 그건 뱀파이어가 갖는 어떤 성적인 뉘앙스도 있을 것이다. 위험을 알면서도 목을 맡기는 여자 희생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죽음을 향한 어두운 정열 같은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의 희생으로만 생존이 가능한 것이 뱀파이어인데, 인육을 먹는다든가 하는 것이 직접적이라면 피를 빠는건 보다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느낌을 준다. 숭고한 인류애를 가진 남자가 이런 상황에서 겪게되는, 냉정한 현실 속의 고통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왜 뱀파이어가 되었는지 이유도 알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죄를 통해서만 자신의 삶이 유지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 보면 실존주의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나의 관심의 계기이다. 인터뷰가 마치 학술 세미나 같이 되어 버렸는데 이는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 질문을 한 기자의 책임이다(웃음). -송강호씨는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되었나. 영화를 위해 20파운드 정도 몸무게를 감량했다고 했는데다시 예전 몸무게를 되찾았는가. =송강호/ 가방은 다음날 극적으로 찾아서 지금은 멀쩡히 잘 지내고 있다. 유럽 쪽은 환승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일이 있는 것 같다. 감량은 했는데 완전히 전처럼 되지는 않았다. 2-3킬로 정도 늘었다. =박찬욱/ 에어 프랑스를 타고 오다 짐을 잃어버려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많은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나는 브리티쉬 에어라인을 타고도 겪었고 이탈리아 항공을 타고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자주 있는 일이다. -<쓰리 몬스터>에서도 뱀파이어를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과 연관이 있나. =박찬욱/ 당시에는 <박쥐>를 만들 생각이 구체화되기 이전이다. <쓰리 몬스터>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피를 먹고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의 앵글은 <박쥐>에서 김옥빈이 피를 토하는 장면과 동일하다. 적어도 하나는 연결시키고 싶었다. -몇해 전 깐느에 온 이창동 감독의 <밀양>도 크리스차니즘을 다루고 있다. 한국 영화에서 크리스차니즘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인가? =(편집자/ 질문의 ‘크리스차니즘’을 한국어 통역자가 ‘천주교’로 통역하는 바람에 약간의 혼동이 왔음) 박찬욱/ <밀양>은 천주교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이야기이다. 그런데 <밀양>하고 <박쥐>는 최근 만들어진 백수십편의 한국영화들 중 단 두 편일 뿐이다.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왜 서양 종교를 다룬 영화가 많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에는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신자들의 수가 엄청 많고, 엄청난 영향력으로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와 인간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에서 기독교를 다루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에밀 졸라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테레즈 라켕>을 각색하게 된 이유는? =박찬욱/ 반가운 질문이다. 프랑스에 오면 그런 질문이 굉장히 많이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도 묻지 않더라. 에밀 졸라를 좋아해서 이 작품이 번역된 직후 읽어보았다. 도저히 26세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본성과 세상에 대한 잔혹한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능력이 되어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면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작품에 뱀파이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섞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하다보니 뱀파이어 영화 치고는 사실주의적이고, 졸라 작품의 각색 치고는 판타지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뱀파이어가 있다면. =박찬욱/ <노스페라투>. 왠지 시적인, 불분명하고, 몽롱한 분위기. 헤어조크가 리메이크한 <노스페라투>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