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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진의 영화 판.판.판] 능력인거야, 소극적인거야?
강병진 2009-03-30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이하 <슬픈 이야기>)가 개봉했을 때, 몇몇 온라인 기사들은 이 영화가 개봉 첫주에 손익분기점을 넘을지 모른다고 점쳤다. 언뜻 가능한 일로 보이기도 했다. 주연배우 대부분이 출연료를 투자하는 인센티브 계약을 하는 등 제작비 절감에 공을 들인 이 영화의 제작비는 마케팅비를 포함해 약 25억원이다. 제작사인 코어컨텐츠미디어의 김광수 제작이사는 해외판매를 감안할 때 65만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개봉 첫주에 약 70만명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로 나타난 개봉 첫주 기록은 약 34만명이다. 김광수 이사는 아쉬워했지만, 사실 3월 비수기에 개봉한 영화로서는 나름 선전한 수치였다. <슬픈 이야기>보다 한주 먼저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왓치맨>의 첫주 관객은 약 32만명이었고, 올해 들어 첫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 세운 기록은 약 53만명이었다. 꼭 비수기 탓을 하지 않아도 개봉 첫주 70만명은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슬픈 이야기>는 개봉 2주차를 맞아 박스오피스 4위로 내려왔는데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비슷한 사례는 이미 지난해에도 있었다. 김광수 이사가 처음으로 제작한 <고死: 피의 중간고사>는 제작비 13억원을 들여 약 18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소지섭과 강지환이 주연한 <영화는 영화다>도 6억5천만원으로 제작해 132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 개봉작인 김성홍 감독의 <실종> 또한 10억원 미만의 예산으로 만들어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1억원의 제작비로 약 280만명을 동원한 <워낭소리>를 함께 비교하긴 힘들 것 같지만) 일련의 사례들을 볼 때,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전략이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올해 1/4분기의 극장가에서 100만명 이상을 동원한 다른 한국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이들의 전략은 더욱 눈에 띈다. <과속스캔들>이 휩쓸고, <워낭소리>가 울려퍼진 가운데 <유감스러운 도시>는 155만명을 넘겼고 <워낭소리>에 밀려 빛을 바랬던 <작전>도 지난 3월22일, 개봉 6주차에 와서 15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진 못했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180만명, <작전>은 16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례를 흥행사례로 봐야 할지, 아니면 저비용 전략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로 봐야 할지는 헷갈린다. 다시 말하자면 똑같은 완성도의 영화도 남들보다 적게 들여 만들 수 있는 능력 때문인지,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태도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또한 능력과 태도를 구분지을 때, 각각의 영화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봉시기가 다르고, 배우의 스타성이 다르고, 장르가 다르고, 완성도가 다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것에 의의를 찾게 될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정말 신화적인 흥행으로 평가받을 작품도 있다. 출연료를 놓고 한류스타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위치이거나, 시나리오와 연출자에 대한 믿음만으로 톱스타인 배우가 출연료를 자진반납하게 만들 수 있거나,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해 틈새시장을 노릴 만한 심미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제작비 절감이 무조건적인 전략이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할 때도 첫 번째 수칙은 ‘자신의 체질에 맞는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것과 ‘무리한 다이어트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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