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옵바(뭔 호칭이 이렇게 자주 바뀌냐)가 내게 말했다. 2주 전쯤이었나, 3주 전쯤이었나. “<더 레슬러>는 내 거다. 건드리지 마라.” 난 건드리지 않았다. ‘호오, 미키 루크와 레슬링이라니, 절묘하군’ 싶었지만 건드리지 않았다. 연수 옵바가 미키 루크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회에 밝혔듯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미키 루크가 등장했던 영화 장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냉장고 얼음 신공이나 꿀 발라 먹기 신공이라니, 그런 장면을 나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인생이 억울하다. 액션영화의 팬인지라 나도 <더 레슬러>를 보았다. 문제의 그 장면도 보고야 말았다. 스테이플러(아, 이때야말로 스테이플러라고 부르기보다 호치키스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기관총을 발명한 호치키스 아저씨도 울고 갈) 장면은 정말, 짜릿했다.
실제 레슬링 경기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도 자주 일어나지만 영화에서 보니 새로웠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은유적인 고통인가. 영화 전체를 링 위에서 찍었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까. 그랬다면 신파가 끼어들 틈도 없었을 텐데. 스테이플러로 깊게 박고, 숟가락으로 후벼 파고, 의자로 내리찍은 다음 (너무 잔인하게 들리나) 사다리 꼭대기에서 철조망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들로만 영화를 찍었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까. 이동진씨의 20자평을 응용하자면 <더 레슬러>는 ‘자꾸만 뒤를 돌아봐서 못 울리는 스포츠 신파’(나는 별 두개 반)였다.
왜 자꾸 뒤돌아보는 거야?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랜디가 딸이 사는 집을 찾아갔을 때다. <더 레슬러>에는 음악영화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곳곳에 아티스트의 이름이 등장한다. (연수 옵바가 지난주 칼럼에 썼듯) 랜디는 데프 레파드, 머틀리 크루, 건스 앤드 로지스를 무척 좋아하며 1980년대를 그리워하는 헤비메탈 스타일의 남자인데, 그가 생각하기에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시대를 망쳐버린, 가랑이를 찢어죽일 놈이다. 그런 그가 오래간만에 딸을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금은 1980년대도, 199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란 말이다. 딸이 살고 있는 집의 거실에는 머틀리 크루도 너바나도 아닌 (최신식 밴드)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 포스터가 붙어 있다.
세월은 너무 빠르고, 세상은 너무나 간사해서 순식간에 모든 걸 잊어버리는데, (커트 코베인한테도 뭐라 그럴 수 있어요? 누~ 구? 커트 코베인. 누~ 구? 커, 트, 코, 베, 인. 아 아 아, 그 한꺼번에 불타올랐던 왼손잡이 가수?) 랜디 아저씨만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아저씨, 그러니까 딸이 싫어하고, 그러니, 자꾸 슬픈 거예요. 남 얘기 같지 않아 덩달아 나도 슬프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는 “따끈따끈한 최신 꼴통 제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때, 옛것이 새것보다 더 좋을 때, 그건 바로 철들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읽다가 무릎을 쳤다. 철이 든 게 아니라 철들 때가 된 거다. 그때가 됐는데도 정신 못 차리면 평생 철들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왜 남자들은 늦게 철이 들거나 아예 철이 들지 않는 걸까.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인생에 대해 얘기하지만 왜 결국엔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걸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나도 남자인데.
<킬러들의 도시>(In Bruges)에도 철들지 않은 남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한글 제목은 한참 잘못됐다. 킬러들의 도시, 는 개뿔, 말이 킬러지, 하는 짓은 그냥 애들이다. 시놉시스만 읽으면 대단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 같다.
“대주교를 암살하고 영국에서 도망친 킬러 레이(콜린 파렐)와 켄(브렌단 글리슨)에게 보스(레이프 파인즈)는 2주 동안 벨기에의 브리주로 피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보스는 켄에게 또 다른 지령을 내리는데…”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만 실은 ‘찌질한 투덜이’ 레이와 ‘품위없고 짜증 만땅인’ 보스의 한판 대결이다. 킬러가 등장하는 기존의 액션물을 생각했다면, 글쎄, 달라도 많이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킬러들은 말 많고 짜증 많고 신경질은 기본인데다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새롭고 독특하다. 특히 레이. 입만 열면 욕이고, 비방이고, 빈정거림이다. 게다가 머리도 나쁜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멍청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다. (아래 대사들은 정확하지 않음) 레이: 내가 그 애를 죽였다고요. 나 같은 놈은 죽어버려야 해요. 켄: 괜찮아. 기회가 있을 거야. 다음엔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잖아. 레이: 의사가 되라고요? 시험 쳐야 하는데? 이런 식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 레이와 켄은 계속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과 삶과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이야기한다.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직업은 킬러다. 사람을 죽이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되나? 쉽게 사람을 죽이면서 사람들의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도 되나? 그렇지만 또 그게 남자들이 늘 하는 일이다.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도, 세상을 구원할 철학을 찾아내는 척하는 일도, 모두 남자들이 한다. 그러니 만날 바쁘다. 집안을 돌볼 시간도, 딸을 챙길 시간도, 없다.
왜 닥치는 대로 부수는 거야?
철들지 않는 남자, 하면 잭 블랙이 떠오른다. 잭 블랙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철들지 않은 남자였다. <스쿨 오브 락>에서도 그랬고, <나쵸 리브레> <트로픽 썬더>에서도 그랬고 최근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도 그렇다. 어떤 집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집념 때문에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혹은 못하는) 남자다. 철들지 않았지만 그는 사랑스럽다. 주위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민폐도 자주 끼치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잭 블랙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 레슬러>에서 가장 싫었던 장면은 슈퍼마켓에서 샐러드를 팔던 랜디가 신경질 내며 밖으로 뛰어나갈 때였다. 왕년에 잘나가던 레슬러가 샐러드나 팔고 있으니 정말 ‘쪽팔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슈퍼마켓 진열대를 부서뜨리고, 각종 집기류를 파손하는 행위는 뭔가(돈도 없는 분이 배상은 어떻게 하려고!). 아, 정말 철이 없다. 잭 블랙 같은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들에게 인기없는 샐러드를 최고의 샐러드로 속여 팔거나 ‘슈퍼마켓 샐러드 송’ 같은 노래를 만들어 유명한 연예인이 되거나 자신만의 ‘스웨덴식’(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 참조) 수제 샐러드를 만들어 초대박 히트상품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랜디와 잭 블랙 캐릭터의 차이는 뭘까. 랜디는 레슬링에 자신의 모든 것, 100퍼센트를 걸었다. 레슬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어도 좋아, 라는 심정으로 레슬링을 한다. 하지만 잭 블랙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건다(완전 ‘자뻑’이다). 믿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어떤 대상이나 어떤 일에 100퍼센트를 거는 건 위험한 짓이다. 일이 망가지거나 실패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레슬링에 모든 것을 건 랜디는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고 말한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얘기인지 몰라도 나는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링도 나의 세계”라거나 “링은 나의 직장”이라거나 했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니. 레이가 랜디의 대사를 들었다면 이렇게 빈정거리지 않았을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염병할 링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말이나 돼? 내가 브리주를 도망쳤듯 어서 빨리 그 빌어먹을 링에서 벗어나라고.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난 정말 살고 싶다고.” 레이의 말이 백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