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어느 한적한 스페인의 시골길을 운전하던 킴(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은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없어 고민이다. 킴은 도로변 휴게소에서 만난 여자 베아(마리아 발베르드)를 만나 즉흥적인 사랑을 나누는데, 그때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베아가 떠난 뒤 지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갑자기 정체불명의 저격수들이 숲에서 총을 쏘기 시작한다. 킴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운전하다가 또다시 베아를 만나고, 이제 두 사람은 함께 도주길에 오른다. 게다가 도중에 만난 경찰들 역시 킴 일행과 함께 저격수의 총알을 피해 깊은 피레네 산맥 속을 질주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대체 저격수들은 누구일까. 무슨 이유로 그들은 킴 일행을 사살하려 드는 것일까.
‘촌놈에게 쫓기는 도시놈 스릴러’라는 서브 장르가 하나 있다. 대게 어리버리하고 순진한 도시놈들이 산촌이나 농촌에 여행왔다가 무식하게 무자비한 촌놈들에게 목숨을 위협받는다는 내용이다. 연약한 도시놈들의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편견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모두 한적한 시골길을 걷거나 숲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얼굴 시커먼 촌놈들의 곡괭이에 찍혀 아무도 모르게 거름으로 쓰일 거라는 공포를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외딴섬에 조난당한 남자가 인간 사냥꾼에게 쫓긴다는 1932년작 <위험한 게임>(The Most Dangerous Game) 이후 촌놈/도시놈 스릴러는 오랫동안 장르 애호가들의 총애를 받아왔다. 소름끼치는 걸작 몇편을 예로 들어보자.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래프팅 여행을 떠난 도시 남자들은 촌놈들에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강간당한다. 샘 페킨파의 <분노의 표적>에서 안경 낀 미국 학자 더스틴 호프먼은 들개처럼 달려드는 영국 시골마을 촌놈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장렬하게 곰덫을 든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너선 모스토의 역사적인 데뷔작 <결투>와 <브레이크다운>, 지지난해 개봉한 영국산 <세브란스>도 빼고 넘어갈 수 없다.
스페인영화 <킹 오브 더 힐> 역시 전형적인 촌놈/도시놈 스릴러다. 주인공들은 (영화의 후반부에나 온전한 정체가 드러나는) 촌놈 저격수들의 사냥감이다. 곤잘로 로페즈 갈레고는 이 장르를 어떻게 활용해야 효과가 커지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오로지 도망치는 주인공들의 긴박한 상황에만 간결하게 초점을 맞춘다. 액션의 리듬도 좋고 관객의 긴장감을 서서히 몰아가다가 몇번의 상황에 맞춰 점화시키는 솜씨도 좋다. 특히 거친 암벽으로 황량하게 둘러싸인 피레네 산맥의 지형지물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을 잘해낸다.
그런데 마지막 저격수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조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포일러를 까발릴 수는 없으니 힌트를 조금 남기자면, 감독은 언덕 위의 성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임무인 동명의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영화의 아이디어를 고안했단다. 저격수들의 시점숏을 (이미 할리우드영화 <둠>이 시도한 것처럼) 게임 화면처럼 보여주는 기법을 보노라면 감독이 매체 윤리학 강의 비슷한 걸 시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불필요한 설정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저격수들의 돌연한 정체가 안겨주는 쇼크효과는 꽤 매섭다. 그걸 한없는 짜증으로 느낄 관객도 분명 있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