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다양한 조폭코미디, 그러나 공식은 있다. <친구>부터 <가문의 영광> 시리즈, <두사부일체> 시리즈, <유감스러운 도시>까지 조폭코미디들은 발전없는 재생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을 관통하는 몇 가지 법칙을 한데 모았다. 사투리 애호,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 전형적인 여성캐릭터 등 조폭코미디의 다섯 가지 클리셰를 소개한다.
1. 경상도와 전라도는 조폭의 산실?
조폭도 날 자리 가려 가면서 난다? 자고로 조폭을 유난히 많이 배출하는 지역이 있었으니 바로 경상도와 전라도. 조폭코미디의 세계에서 충청도나 강원도 사투리는 제아무리 귀를 열어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소외된 방언이다. 경상도 조폭을 앞세운 대표작으로는 역시 부산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을 그린 <친구>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출신 곽경택 감독이 개인사를 토대로 스케치한 이 조폭영화는 “마이 무따 아이가” 등 귀에 착착 달라붙는 사투리 대사를 선보여 전국 각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전라도 조폭들이 힘쓰는 영화는 더 많다. <목포는 항구다>는 제목부터 지방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조폭코미디. 의외로 경상도 출신인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으로 서울 형사가 목포의 한 조직에 잠입한다는 내용이다.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 <가문의 부활: 가문의 영광3>는 1편에서 닦아놓은 조폭 캐릭터를 확장해 이후 전라도 조폭의 명가 백호파 식구들을 내세웠고,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전라도 출신의 조폭이자 절친한 두 남자를 그려 ‘전라도판 친구’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거 혹시 사투리 혹은 지방색에 대한 일종의 편견 아닐까. 경상도 사람들은 단순무식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능청스럽다는 선입견.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지방 출신들은 조폭의 길로 빠져들기 쉬우리라는 선입견. 혹은 얼핏 세련되지 못한 사투리가 조폭들에게 각진 검은 양복 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액세사리가 되리라는 선입견. 어쩐지 <보스상륙작전>에서 비속어를 알아듣지 못해 형님들에게 두들겨 맞던 불운한 옌볜 출신 막내 조폭의 심정이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상상해본 적 없나. 먼 옛날 목포가 수도가 됐다면 전라도 사투리가 표준어가 됐을 거고 그럼 서울말은 외려 촌스러운 게 됐을 거고 조폭들도 모조리 서울말을 썼을 거고….
2. 다음 카페가 우리 구역이더냐
<유감스러운 도시>의 한 장면. “시크릿이 뭐고.” “비밀입니다, 형님.” “이 새끼가.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딨냐. 빨리 말 안 해!” 시크릿폰이 고유명사로 쓰이는 이 마당에 시크릿이 뭐냐니, 대략 난감이지만 대개 이런 식이다. 바텐더에게 ‘파킹’해놓은 술을 가져오라거나 스테이크를 ‘미디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익혀달라고 동문서답하기도 일쑤다. ‘조폭은 무식해, 무식하니 영어를 몰라’라는 공식은 조폭코미디들이 대대손손 즐겨 답습한 것이다.
“이메일 주소가 뭐냐”니 “110-211 서울시 중구 명동 844번지 이코빌라”라고 답하고, “다음 카페가 뭔지 아냐”는 질문엔 “우리 구역이냐”고 되묻던, 그러다 고졸은 돼야 한다는 명에 기구한 학교생활을 시작한 <두사부일체>의 원조 조폭 계두식이 기억나지 않는가. <투사부일체>에서 사범대, 그것도 윤리학과에 입학한 계두식은, 심지어 <상사부일체>에서 4년제 졸업자로 인정받아 기업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대학물 먹은 조폭은 희귀종, 하다못해 <유감스러운 도시>의 이중대 역시 대학을 다녔다는 이유로 명석한 친구라고 불렸으니 어깨라도 으쓱해야 할 판이다. 여기서 질문. 이런 농담, 아직도 재미있습니까. 전세계가 눈 돌아갈 만큼 가열차게 변하는 지금, 1990년대 초부터 같은 농담질이라니 대단한 배짱이다. 덧붙여 상식과 지성과 대학 진학은 엄연히 다른 영역. 안 그래도 영어 단어 외우느라 괴로운 학생들에게 대학으로 스트레스 주지 말고, 독창적인 유머를 개발하시라.
3. 장충동, 이중대, 계두식, 백상어, 독사…
장충동, 이중대, 계두식. 가명 아니다. 진짜 이름들이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조폭코미디가 이상한 이름 짓길 꺼릴 이유가 있겠는가. <유감스러운 도시>는 이름으로 캐릭터의 성향을 대신 설명하는 경제적인 면모까지 갖췄다. 장충동은 지극히 ‘충동’적인 반면, 이중대는 조폭 출신 경찰로 자기가 몸 담았던 조직을 소탕하는 데 일조하니 확대해석하자면 일종의 ‘이중’스파이인 셈이다.
<두사부일체>의 계두식 역시 ‘개두식’으로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 희귀한 이름. 나아가 영화 속 조폭들은 흔히 본명 말고 별명으로 불리곤 하는데 그게 또 가관이다. <조폭마누라>의 빠다, 빤스, 백상어, 마징가, <보스상륙작전>의 독사, 새끼, <달마야 놀자>의 불곰, 날치, 왕구라, <역전의 명수>의 똘빵, 넙치, <어깨동무>의 쌍칼, 꼴통 등. 하나같이 동물적이거나 질기고 독한 놈들만 골라 붙였다.
이름이 뭔 죄가 있겠냐마는 독하기만 하니 재미없다.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가오리, 쭈꾸미, 꼴뚜기 등 바다생물을 가져온 <목포는 항구다>의 작명법이나 연예인 이름부터 무생물까지 용감하게 빨아들이는 일부 야간업소 전단지의 충격적인 네이밍을 참고하셔도 좋지 아니할는지.
4. 뒤통수와 거시기를 조심하라
조폭 혹은 조직폭력배.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쌈박질에 능한 이들이 위계질서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폭력은 기본. 말 안 들으면 굴리고 때리고 걷어차기까지 한다. 문제는 형님들이 무자비하게 가격하는 아우의 기구한 신체 부위가 대체 어디냐는 것.
가장 흔한 과녁이 첫 번째, 아무 죄 없는 뒤통수다. 뒤통수 맞기의 일인자는 이름부터 의미심장한 대가리. <보스상륙작전>에서 검사로 출연해 제 한몸 제대로 건사했던 정운택은 <두사부일체> <투사부일체>에서 무식이 컨셉인 대가리 역을 맡아 무섭게 얻어터졌다. ‘엎드려 뻗쳐’는 기본에 따귀에서 불이 나고 구둣발에 짓밟히는 것도 서럽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끔찍한 건 때린 데 또 때리기, 그러니까 뒤통수 연타 공격 아닐는지. <달마야 놀자>는 스님들과의 동거로 막무가내 폭력은 피했고,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성 탐구에 열중하느라 막내들의 뒤통수는 멀쩡했는데 이거 참. <유감스러운 도시>에서 한양식구파 행동대장 문동식 역을 맡은 정운택은 다시 한번 뒤통수를 희생했는데, 문동식의 별명 역시 대가리라는 게 우연이라기엔 너무 수상쩍은 우연이다.
두 번째, 남성들이여 심호흡하시라, 바로 거시기다. “너 거기가 얼마나 아픈 줄 아니? 남자들의 인생이야.” <보스상륙작전>에서 막내의 그곳을 구타하는 똘마니에게 독사가 지엄하게 건넨 말이다. 사실 남자들의 성기는 조폭코미디의 오랜 농담거리였다. <두사부일체>에선 고등학생들을 모조리 비뇨기과로 데려가 포경수술을 시켰고, <유감스러운 도시>에선 (아마도 확대 수술을 받은) 남자의 거기에서 쇠구슬(!?)이 튀어나오게 만들지 않았던가. 심지어 보스의 사모님이 종이를 성기 모양으로 오려낸 다음 싹뚝 잘라버리기까지 하니, <조폭마누라>의 ‘가위 든 여자’ 차은진보다 더하면 더했다. 그래도 모멸감에 분노하게 했던 최악의 폭력신은 정작 따로 있다. <두사부일체>에서 선생이 여학생에게 주먹을 날리는 그 문제적 장면. 의도가 불분명한 폭력신은 맞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해악이라고요.
5. 비운의 여성 캐릭터 꼭 나온다
여성 캐릭터 자체가 드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조폭코미디의 주인공은 조폭들, 간만에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폭마누라> 역시 차은진을 제외하면 남자들만 득실대는 영화였다.
머릿수가 적어서일까. 조폭코미디에서 남자주인공에게 사랑받는 여성 캐릭터는 일정한 전형을 따르게 마련이다. 정신적으론 순진하고, 육체적으론 순결하다. 부당한 외압에 고통받는다. <유감스러운 도시>에서 이중대와 사랑에 빠졌던 차세린, <투사부일체>에서 계두식을 행동하게 만든 유미정이 대표적인 예. 가끔은 한 가지 특징을 강조하는 일도 있다. <가문의 영광>에서 구설에 오르는 건 장진경의 처녀성, 그러니까 순결 모티브가 중요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박대서가 사랑, 믿음, 소망보다 더 중요한 처녀성을 빼앗은 죄로 조폭 가문에 들어가길 강요받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반대로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의 김진경은 그녀 자신이 엘리트이기에 ‘가문의 영광’이다. 그리고 ‘조폭마누라’로 대변되는 강한 여자들과 술집 종업원들이 있다. 특히, 세상에 닳고닳은 작부들은 조폭코미디의 시선 아래 운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유감스러운 도시>에서 극 초반 이중대의 연인처럼 보였던 여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속셈이었는지, 조폭코미디의 여자주인공 중에는 의외의 얼굴도 눈에 띈다. <유감스러운 도시>의 한고은이나 <친구>의 김보경, <투사부일체>의 박효주, <상사부일체>의 서지혜 등이 그렇다. 새로운 배우를 새로운 역할에 캐스팅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때론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은가. 지겹고 보수적인 스테레오타입 좀 박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