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역사적인 과오에 바치는 절절한 애도 <굿바이 칠드런>
김용언 2008-12-24

명불허전 지수 ★★★★★ 라스트신 감동 지수 ★★★★★ 슈베르트와 생상스의 선율 지수 ★★★★

“40년이 흘렀지만 난 그 1월의 아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감독 루이 말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마음의 속삭임> <프리티 베이비> <라콤 루시앙>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오십줄에 접어들 무렵 ‘40년 전에 일어났던 그 일’, 그러니까 소년 시절 기숙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위의 문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것을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할 것을,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할 것을 다짐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파리 근교에 위치한 가톨릭 기숙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된다. 똑똑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줄리앙(가스파르 마네스)은 전학생 보네와 침대를 나란히 쓰게 된다. 보네(라파엘 페이토)는 수학과 작문,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만 뭔가 비밀을 감추는 듯 어두운 구석 때문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질투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보네를 관찰하던 줄리앙은, 보네와 함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경험 이후로 절친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보네가 감춰왔던 비밀이 밝혀진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게슈타포에 쫓겨 이름까지 바꾼 채 이 학교에 숨어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기억의 힘은 그렇게 오래간다. 침략국 독일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프랑스 비시 정부가 저질렀던 배반의 역사와 유대인 색출 사건이라는 공적인 기억, 아직 전쟁의 의미와 유대인 차별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어린 소년들의 사적인 기억이 맞물려 들어간다. 전쟁이라는 집단적인 대규모 경험을 겪고난 뒤, 사람들은 공적인 기억과 사적인 기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영화는 종종 사적인 기억의 유령을 불러옴으로써 공적 기억의 푸닥거리를 수행한다. 과거와 미래가 영화 속 공간에서 마주치고,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을 미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서 과거(이자 영화에선 현재형의 시간)는 새롭게 재구축된다. 그때 흘려보냈던 작은 암시, 중얼거림, 몸짓들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면서 이미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증언을 시작한다. <굿바이 칠드런>은 그것의 빼어난 예시다. 이 작품은 노년기에 다다른 감독이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죽어야 했던 친구에게 바치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인 과오에 바치는 절절한 애도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Au Revoir Les Enfants>이다. ‘오 흐브아’는 간결한 이별의 말 ‘아듀’와 다르다. 그건 ‘또 만나자’라는 말이다. 또 만나요, 신부님. 또 만나자, 얘들아. 모두가 그 이별이 영원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 말을 되뇌던 줄리앙/루이 말은 <굿바이 칠드런>을 만들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40년 동안 잊을 수 없던 슬픔의 기억을 애도하고 기념하는 작업을 드디어 마무리했다. 그 결과물은 단순하고 정직하며 놀랄 만큼 파워풀하고 아름답다.

tip/ 소년들의 피아노 선생으로 등장하는 이렌느 야곱의 앳된 모습도 놓치지 말자.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