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담배, 첫 키스, 첫 경험...
1954년 프랑스 디종의 봄.15살의 로랑은 ‘까뮈’를 잃고 자살을 논하고 ‘찰리 파커’의 신보에 열광하는 재즈광이다. 엄마인 클라라의 눈에는 여전히 예민하고 순수한 어린 아이일 뿐이지만 로랑은 변화의 길목에 서서 한껏 객기를 부리고 있다. 처음 맛 본 쌉싸릅한 담배의 맛, 갖고 싶은 물건을 살짝 가방에 넣는 손의 떨림, 대책 없이 무작정 훔쳐버린 여인의 입술 감촉, 이 모든 것이 로랑의 마음을 간질이며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 하고 싶은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는 로랑의 심장은 열로 달아오른다.
심장의 두근거림 속에 소년이 자란다
‘Heart Murmur’(류마티스 성 열병)라는 병에 걸린 로랑은 아빠와 두 형들과 떨어져 엄마와 단 둘이 요양을 가게 된다. 온천 치료로 유명한 리조트로 향한 둘은 모자(母子)사이가 아닌 친구사이처럼 스스럼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평소 엄격하고 차가운 아빠보다는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엄마와 각별한 관계이긴 했으나 로랑은 점점 더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리조트에서 축제가 벌어진 어느 날 둘 사이에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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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구덩이에서 서서히… 소년이 자란다.more
15세 로랑(브누와 페로, Benoît Ferreux)은 아직 남자로 완성되지 않은 그의 몸처럼 소년을 지나 이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그가 막 지나쳐 온 세계의 그림자를 아직 옷깃에 품고 있는 소년은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15세의 불꽃 같은 열정을 마지막으로 발산하고 있다. ‘Bird’라는 애칭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모던 재즈의 길을 제시한 위대한 연주자, ‘찰리 파커’(Charles Christopher Parker Jr.)의 ‘비 밥’(Be bob)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로랑은 정치 모금을 하고 있다. 로랑과 그의 친구는 일견 의식 있는 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곧 음반 가게로 향하여 음반을 훔치고 기부금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담배를 물고 어른 흉내도 내 보고, 술을 들이 붓고 미친 듯이 여자의 입술을 훔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소년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성욕’과 ‘엄마에 대한 사랑’이다. 엄격하고 늘 자식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아빠 대신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레아 마사리, Lea Massari)에게 유달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로랑은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증상을 보인다. 엄마와 유모가 있는 세계에서 그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꼬마에 불과하지만 한 편으로는 굵은 수염이 듬성거리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두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던 로랑은 열병에 시달리게 된다. 병명은 ‘Heart Murmur’. 심장에서 정상적으로 나는 소리 외의 잡음을 느끼게 되는 병에 걸린 로랑은 의사로부터 ‘요양’을 제안 받게 된다.
엄마와 함께 요양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로랑은 또래의 여자 친구들을 이리 저리 만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엄마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엄마가 외도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은근한 질투에 사로잡히게 되고 심지어 아빠와 장난 치는 모습에도 심기가 불편하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때론 부부처럼 갈피를 못 잡고 넘실거리는 로랑의 심리 상태를 유려하게 표현해 낸 루이 말의 연출 실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루이 말은 결국 엄마와 아들이 한 침대에 자게 되는 파격적인 장면을 인물의 심리를 따라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완성해 낸다.
소년이 드디어 남자가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굴레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상에 한 발을 내 딛게 된다.
루이 말 생애 최초의 영화
로랑은 ‘헨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를 읽고 ‘까뮈’(Albert Camus)를 논하며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John Birks Gillespie)의 재즈에 열광한다.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코로’(Camille Corot)의 그림이 걸려 있는 거실에서 자란 로랑은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민감한 소년이다. 머리가 좋아 클래스에서 늘 일등을 도맡아 하며 밝고 명랑하다. 루이 말은 실제 자신의 전체 연출 경력 중 중반부에 완성된 영화인 <마음의 속삭임>을 ‘내 생애 최초의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그가 주인공인 로랑에게 자전적 경험과 생각, 그리고 고민들을 투영하여 생기를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의 속삭임>의 다양한 연출적 시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루이 말 역시 프랑스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문화와 예술을 직접적으로 접하며 자란 말은 정치를 전공하기는 하였지만 영화 공부를 하며 바로 영화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 받게 되었다. 그의 첫 장편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흥행 면에서도 크게 성공했을 당시 말의 나이는 겨우 24세. 세간에서는 그가 천재가 분명하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더욱이 늘 남들과 다른 노선을 택하여 자신만의 주제로 색다른 스타일을 창조해 온 루이 말은 프랑스의 가장 창조적인 감독 중 하나 임에 분명하다. 또한 로랑과 비슷하게 말이 재즈에 특별한 조예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첫 연출작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재즈를 영화에 접목시킨 작품이었다. 이 때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영화음악을 맡겼는데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만해도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음악 실력을 알아본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지하철의 소녀>에는 프리 재즈를 <연인들>, <굿바이 칠드런>, <블랙 문> 등에서는 브람스, 슈베르트,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클래식을 영상에 맞게 녹여 내며 유려한 솜씨를 뽐냈다. 특히 <도깨비불>에서는 천재 음악가 에릭 사티의 음악을 사용해 주목 받기도 했다.
관객은 <마음의 속삭임>을 보며 달콤 쌉싸름한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루이 말의 소년기를 짐작하며, 프랑스 중산층의 생활과 문화를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954년 프랑스 부루주아지의 삶이 생생히 묘사된다.
영화의 공간이 되는 곳은 크게 두 곳. 첫 번째 공간은 로랑이 머무는 집이다. 부인과 의사인 아빠가 운영하는 병원과 한 건물에 있는 로랑의 집은 50년대 프랑스 부루주아지 가정을 그대로 재현한다. 아빠는 15살이 어린 이탈리아 여자를 아내로 삼아 결혼하여 세 명의 아들을 두었다. 로랑은 그 중 막내. 로랑의 두 형이 말썽쟁이에다 심한 장난꾸러기라서 엄마는 로랑을 특별히 편애한다. 엄마인 클라라는 아들들의 나이 차이가 크지 않기에 권위 있는 엄마이기 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자식들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간은 로랑이 요양을 가는 리조트로 온천 치료가 유명한 여유로운 공간이다. 사교 파티가 계속 이어지는 이 공간 역시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연출된다. <마음의 속삭임>에서는 시종 자유로운 재즈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프랑스 부루주아지들의 삶이 밝고 유쾌하게 묘사된다. 평소 인문, 철학에 조예가 깊은 로랑은 캠프에서 친구들과 괴테의 ‘마왕’을 연기한다. <마음의 속삭임>은 삶 속에 문화와 예술이 융화된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이국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로랑의 형이 코로의 그림을 모방작과 바꾸어 놓아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형이 그림을 칼로 찢어버리게 되는 장면은 그런 모든 문화 행위를 한 편으로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말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음의 속삭임>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대패한 프랑스가 ‘제노바 협정’을 맺고 그 곳에서 물러나는 시점과 일치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로랑은 인도차이나를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고 중간중간 전쟁을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들의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정부를 비판하고 사회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대화 장면이 당시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1971년 골든 팜 감독상
1973년 오스카 각본상 노미네이트
1973년 KCFCC 최우수 외국어영화상